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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셉 목사의 새벽묵상

​새벽묵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을 주께서 살리신다." 예레미야 49,7-22 | 12-05-2025

12/5/2025

 
모압과 암몬의 심판에 이어 오늘 말씀은 에돔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 열방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주고 계시는 것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모든 열방과 만방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에돔 백성은 잘 아시지만 야곱의 형 에서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니까 야곱과 형제의 자손이니 모압이나 암몬과 마찬가지로 형제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가까이에 있는 형제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사이가 좋지 않고, 어렵게 하고 괴롭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왜 에돔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세 가지로 정리하며 이것을 우리의 마음에 비춰보면 좋겠습니다. 왜 형제의 나라였던 에돔이 결국 그렇게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는가? 그 첫번째 이유는 바로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에돔에 대해서 지혜란 말이 반복해서 나오냐 하면 그들은 스스로 대단히 지혜롭다고 생각했던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그 지혜는 내 머리에서 나오는 지혜이며 내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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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고 살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지혜를 거절하게 되는 것이죠. 내가 스스로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하나님의 지혜를 붙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롭다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면서 내가 지혜롭다고 생각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인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스스로 지혜롭다 생각하는 자들은 결국 스스로를 속이는 자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인생을 어둠 가운데 끝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지 않는 비결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잊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나를 비춰보면 내가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없이는 나는 스스로 깨달을 수도 알 수도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며 주님의 지혜만을 구하며 붙들며 살아가는 삶이 나를 생명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고 그 착각이 허물어지는 역사가 있을 때 우리 삶에 삶의 빛이 임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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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에돔이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고아와 과부를 버리고 함부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엔 약한 자들, 소위 말하면 안 중요한 사람들,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는 자들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들을 성경은 고아와 과부들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고아와 과부같이 약한 사람들에 대해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조롱하거나 무관하거나 그들의 등을 처먹는 경우가 많은데, 에돔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고아들과 과부들을 버려도 상관없는 사람들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돌보니라고 주변에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지 않았고 그들을 버려도 상관 없는 존재 정도로 여긴 겁니다. 고아와 과부가 죽어도 상관 없고 버려도 상관 없는, 이웃과 무관한 존재로 살아간 백성이 바로 에돔이었습니다. 그게 하나님 앞에 에돔이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을 우리가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돔은 심판하시는데 고아들과 과부들을 주님이 살리신다는 거예요. 에돔을 심판하시면서 에돔이 버렸던 고아들은 내가 살린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과부들은 나를 의지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데, 우리가 사는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데 있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고 착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모릅니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껍데기를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거죠. 스스로 지혜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에 결국 심판을 당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살리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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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번째로 에돔이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교만한 겁니다. 내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다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사실 이 세가지가 다 연결되어 있죠.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뭐를 의지하는 겁니까? 산꼭대기에 성을 지어놓고 나는 스스로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그걸 의지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기에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그 산꼭대기를 의지하고 거기에 지은 성을 의지하며 스스로 나는 엄청 대단한 것처럼 마음에 교만이 찾아와 우리를 속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게 하나님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공통 분모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에 결국 세상을 의지하게 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에 눈에 보이는 껍데기를 의지하며 교만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속이게 되는 것이죠. 그런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하신다는 겁니까? 너희를 끌어내린다는 거예요. 그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평안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에서 우리를 끌어내리신다는 것이죠. 이 에돔의 세 가지 심판 받는 이유는 우리를 향해서도 엄중히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잊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착각하고 약자를 버리고 함부로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교만한 이런 인생을 버리고 벗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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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가지의 심판 받는 이유와 함께 우리 마음에 새기는 결론과 같은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의도와 결심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나를 향한, 우리 공동체를 향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 주의 결심하신 계획 이것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진짜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이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끊임없이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구하는 건 결국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결심하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이기 때문임을 분명히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돌아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붙들기 원합니다. 내 주변에 나를 돌보느라고 버려도 될 사람은 없습니다. 내 주변 이웃에 대해 무관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에게도 무관한 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 주변의 약한 이웃들에 대해 관심 가지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결국 나를 살리는 길임을 잊지 않는 것이 에돔의 심판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야 될 중요한 삶의 지혜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의도와 결심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만이 우리를 살리는 참 지혜임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 아는 지식에 열망하며 하나님의 의도와 결심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아 그 계획과 의도대로 조율되어 주님의 길을 뒤따라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내 인생을 내가 지킨다고 착각하지 말라." 예레미야 49,1-6 | 12-04-2025

12/4/202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만 관심이 있으실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하나님은 온 백성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방 나라들도 주의 관심 가운데 있으며 신자들만이 아니라 불신자들도 하나님의 관심 가운데 있음을 알려 주시는 놀라운 말씀이 여러 주변 나라들에 대한 예언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모압의 심판 이후에 등장하는 암몬에 대한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암몬 자손은 아브라함의 후손들, 즉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예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과 형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알기도 하고 하나님의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도 있었던 형제의 나라가 바로 암몬 족속입니다. 그런 암몬 족속이 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직면하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 암몬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직면할 수 밖에 없었던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향하여 중보 기도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압 자손을 통해서도 배웠지만 주변 사람들이 힘들 때 많은 사람들은 조롱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아이고 저 샘통이다. 저럴 줄 알았다… 그러면서 조롱하는 자들,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있냐 하면 아예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을 나와 상관없이 무관한 자들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힘들던 어렵던, 고통 당하면서 끌려가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생각하며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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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부류의 사람들보다 더 최악인 사람들이 있는데, 힘든 이웃의 등을 쳐먹는 사람들입니다. 안 그래도 힘들어서 버티기 어려운데 그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기름 부으며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암몬 자손이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너무나 어려운 상황 가운데,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때에 암몬 자손들은 그 이스라엘의 등을 쳐서 땅을 불법 점령하는 그런 악한 일을 범했습니다. 1절에서 증언하는 게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들고 어려웠을 때 했던 암몬의 악행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공격을 당해 어려울 때, 암몬이 갓지파가 분배받았던 땅을 불법으로 점령하여 땅을 차지한 겁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을 그들이 몰래 가로채는 일을 했던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해 대적하고 등쳐 먹는 일을 했던 것이 역사적으로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길을 비켜주지 않았던 민족이 바로 암몬 족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벨론 포로에 끌려간 다음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할 때도 남유다 백성들을 방해하는 자들이 바로 암몬 자손들이었습니다. 이 압몬 자손은 형제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대적하는 악한 자들이며, 특별히 약하고 어려울 때 등쳐먹는 인생,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암몬 자손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렇게 대적하는 세력이 된 것에 대해 하나님은 엄중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그게 바로 암몬 자손이 하나님의 심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이유라는 것을 선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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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암몬 자손이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기들의 난공불락의 성벽과 재력을 자랑하며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암몬 지역은 굉장히 산세가 험해 공격하기 어려운 지형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성을 구축하고 있으니까 방어하기 쉬운 곳이죠. 난공블락의 성을 만들면서 이렇게 어려운 험한 지형에 누가 와서 우리를 공격할 거야? 우리는 누구도 공격할 수 없어…이 성이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 줄 거라고 착각했습니다. 난공불락의 성을 바라보며 자신감이 생겼고 우리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겁니다. 동시에 그들은 가진 돈과 재물을 의뢰하는 겁니다. 우리는 돈도 많고 힘도 많고 우리가 지은 성은 난공블락이야….교만함으로 자랑하고 결국 난공 불락의 성과 돈을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흔드시면 그 난공불락의 성이 속절 없이 무너질텐데, 재물도 한번 거두어 가시면 끝인데 거기에 나의 인생을 걸고 그게 안전할 거라고 착각하며 그것이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는 가짜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다 허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치시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두려움을 내 사방에서 너에게 오게 한다는 겁니다. 안전하다고 붙들고 있던 것들,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을 싹 흔드시면서 두려움이 사방으로부터 오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것들을 허무시면서 너희가 의지하고 붙들었던 재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너희가 안전하다 여기는 난공불락의 성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게 하겠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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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끊임없이 교만에 대해서 지적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교만한 태도는 결국 하나님 아닌 것을 자랑하고 의지하며 사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세상이 주는 것을 자랑하면서 하나님 아닌 것을 의지하면서 그게 나를 지키고 나를 안전하게 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이 좀 많게 되면 돈이 좀 많다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늘 말씀 같이 돈과 재물을 의지하게 되는 것이죠. 돈이 많으면 나는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돈이 나를 지켜 줄 거라고 착각합니다. 탄탄하고 큰 건물을 지어 놓으면 저 건물이 저 성이 나를 지켜 줄 거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 돈을 자랑하고 돈을 의지하며, 하나님 대신 난공블락의 성을 의지하고 성을 자랑하며 살아가게 되는게 교만의 폐혜입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암몬 자손은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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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가 암몬 자손을 향한 심판의 경고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라고 믿습니다. 주변 이웃들의 어려움에 등쳐먹는 인생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피눈물 흘리고 있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거나 부당이득을 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임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절대 관망하지 아니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 아닌 세상 것을 자랑하고 의지하며,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고 착각하는 그 삶의 태도가 하나님 앞에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의지하는 대신 내가 가진 돈을 자랑하고 내가 세운 난공블락의 성을 자랑하며 그걸 의지하는 삶이 결국 교만으로 패망하는 지름길임을 말씀을 통해 깊이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 돈이나 내가 지은 성벽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안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주 안에서 참된 안식과 안전을 누리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깨뜨려 버리신다." 예레미야 48,36-47 | 12-03-2025

12/3/2025

 
어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왜 모압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두 가지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하고 거만했으며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에 대해서 조롱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모압의 하나님을 향한 교만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조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으로 다스리시는가를 ​ 보여주고 계십니다. 결론을 먼저 나눈다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깨뜨려 버리심으로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교만과 거만, 하나님 백성들을 향한 조롱을 그냥 놔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다 깨뜨려 버리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깨뜨리는 여러 모습들이 등장하는데 소위 그 강도가 점점 세지는 모습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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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그릇같이 그들을 깨는 첫 번째 심판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이 사라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교만을 깨시는 가장 강도가 약하게 치시는 방법이 모아둔 재물이 없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 점점 깨닫는 게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가장 쉬운 문제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모압을 심판으로 치실 때 제일 쉬운, 제일 가벼운 모습으로 깨뜨리시는 게 모아놓은 재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모압 백성들을 향하여 첫번째로 가장 가볍게 깨뜨리신 게 그들이 모은 재물을 깨시고 허무시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교만함과 거만함으로 곁길로 나아갈 때 차곡차곡 쌓아둔 그들의 재물을 허무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모았던 재물이 사라지고 없어질 때 아 이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내 교만함과 거만함을 허무시고 계시는구나… 주의 손길을 깨닫고 돌아오면 소망이 있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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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모압 백성을 향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깨뜨리는 무엇입니까?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애지중지 여기는 것이 깨지고 사라지게 만드시는 겁니다. 머리와 수염을 밀고, 손에 칼자국이 있고 허리에 굵은 베를 두르는 이 모든 게 다 뭐냐 하면 내가 생각하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사라진 것에 대한 곡소리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애지 중지하는 게 깨지고 허물어지면 내 마음이 찢어지듯이 아파 애곡하며 통곡하는 겁니다. 없으면 큰일난다 생각하는 것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사라지고 허물어지게 하심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그들을 깨신다는 겁니다. 그게 없어지면 내 인생은 망하는 거 같고 큰일 날 것 같은 것들을 허무시고 사라지게 하심으로 그들의 교만과 거만을 허무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깨신 결과, 모압이 그 사방 모든 사람의 조롱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모압의 교만과 거만을 깨시는구나… 그들의 조롱하는 마음을 깨시는구나…라는 것을 사람들을 향하여 선명히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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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들이 한 순간에 일어나는 게 바로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몽둥이로 쓰시기로 결정한 바벨론이 독수리 같이 날아와 그 먹이를 채 가듯이 모압 위에 날개를 딱 펴는 겁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죠. 모압이 벌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을 선언하십니다. 그냥 어쩌다가 정치력과 군사력이 약해서 바벨론에게 침략당해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날, 벌받는 때가 차매, 바벨론이 독수리 같이 날아와 날개를 피며 먹이를 잡듯 모압을 하나같이 다 남기지 않고 무너뜨리고 망하게 되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라는 겁니다.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압은 이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선언합니다. 모압이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깨지고 무너진 이유, 독수리가 날아와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듯이 망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여호와를 거스르며 하나님 앞에 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압에 대한 심판을 이렇게 길게 증언하는 이유는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경고의 말씀이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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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한 첫 단추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아니다…라는 선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을 통하여 하나님은 창조주고 나는 피조물이라는 이 분명한 영적 질서에 순종하는 겁니다. 내가 창조주가 되려 하고, 내가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려 하는 것이 본질적 인간의 반역이자 교만이고, 그것 때문에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을 성경은 엄중히 증언합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 앞에 교만하고 거만한 인간들을 향하여 때가 되면 벌받는 해가 임하게 하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인간의 교만과 거만을 깨뜨리시고 허무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걸 통하여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시고 너희는 ​ 아니다. 하나님만이 창조주이고 너희는 아니다. 하나님만이 중심이시고 너희는 아니다…라는 것을 선명히 고백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같이 깨뜨리는 심판 예고를 통해 내 마음을 다시 한번 조이고 정신 차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나의 교만과 거만을 허무시고 사람들을 향한 조롱하는 마음을 깨뜨리시는 주의 손길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모압의 심판을 통하여 우리가 배워 될 중요한 영적 진리라고 믿습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것이 사는 길임을 믿고, 나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주의 은혜를 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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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 "나를 과대평가하면 하나님을 과소평가한다." 예레미야 48,26-35 | 12-02-2025

12/2/2025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 예고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데 오늘은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모압의 심판의 이유가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너무나 중요한 적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압을 여러 이방 나라들의 공통적인 심판의 이유는 타락과 우상숭배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영적 타락과 우상숭배였고요. 오늘 말씀에는 모압이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를 두 가지 더 증언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교만과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를 향한 조롱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압이 심판을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며 또한,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경고이자 적용점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모압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교만입니다. 그들이 교만한데 누구에 대해서 교만한가 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교만한 자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에 대하여 교만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유입니다. 그런데 모압 백성이 하나님에 대하여 교만했다는 겁니다.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교만했으면 모압의 심한 교만을 네 가지 다른 단어들을 통하여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심한 교만이 무엇입니까?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마음의 거만이라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단어를 마음에 깊이 새기며 묵상해보면 결국 교만이란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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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에게 양립할 수 없는 것들, 동시에 붙들 수 없는 것들을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과대 평가하면서 동시에 하나님도 과대평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과소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만을 과대 평가하든지 나를 과대 평가하든지 둘 중에 하나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세상을 사랑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든지 둘 중에 하나밖에 안 된다는데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붙들고 세상도 붙들려 하는 겁니다. 세상에 민감하면서 영적으로 민감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 대해 둔감하면 둔감할수록 영적으로 민감해지는 것입니다. 부풀려진 풍선 같은 모습을 자기 자신이라 착각하고 과대 평가된 내가 진짜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러 나오는데도 부풀려진 나, 과대 평가된 자아를 들고 나오는 것, 이게 바로 교만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과대 평가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과소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이게 바로 교만의 치명적인 문제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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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만이라는 단어는 잘난 체하고 건방진 태도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건방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잘난 체 하고 건방진 태도로 나오는 자들은 은혜를 구하는 겸손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는 겸손함이 없는 자들 바로 그들이 모압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압의 이 교만함과 거만함으로 인해 직면하게 될 현실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그렇게 자랑하고 그렇게 대단하다고 과대 평가한 모든 것들이 바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빈수레가 될 거라는 거예요. 자랑과 거만으로부터 나온 그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될 거라는 것이죠. 처음에는 대단해 보이는데 나중에 보니까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 되게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도 그들은 자랑하고 건방진 태도로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이런 사람들 결국 그 인생에 남은 것은 심판밖에 없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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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모압이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를 향해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도 교만한 사람들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조롱하며 살아갑니다. 손가락질하고 고개를 흔들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모압은 힘이 약해 보이고 어려움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를 향해 모압은 어땠다는 겁니까? 손가락질하고 조롱하고 머리를 흔들었다는 거예요. 남유다가 바벨론에 침략 당하여 어려움을 겪고 멸망할 때 모압은 남유다를 향해 조롱했습니다. 아이고 꼴 좋다…너네 그러니까 멸망했지. 그러면서 고개를 흔들고 조롱하며 비웃었다는 것입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 힘이 있을 때 힘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이 꼬이고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우리가 불쌍한 마음과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모압과 같이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들은 조롱하고 비웃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이죠. 너희가 그렇게 조롱한 대로 너희도 조롱거리가 될 거라는 겁니다. 누군가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너희도 조롱 받게 되고 손가락질 당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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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본질은 하나님 앞에 내가 겸손히 있는 모습 그대로 서는 것입니다. 그러지 아니하고 모압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도 교만하여 나를 부풀리고 과대 평가하며, 하나님 앞에서도 거만하여 잘난 체하고 건방진 태도로 서 있다면 남은 것은 심판밖에 없음을 경고와 같이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거만하면 결국 넘어지고 자빠지고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로 엎드리며 주의 은혜를 구하는 백성 되기를 원합니다. 동시에 내 주변에 이웃들이 당하는 불행 어려움을 바라보며 어떤 태도를 갖는가가 나의 영적 현주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이 다른 사람을 향하여 조롱하거나 손가락질하는 삶이 되면 모압과 같이 결국 넘어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변에 힘이 없거나 인생이 잘 안 되고 꼬이거나 어려운 일이 당하는 사람들에게 수근수근 거리지 않고 조롱하지 않고 손가락질 안 하는 것이 영적 생활입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긍휼히 여기며 주의 은혜 의지하여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는 삶이 영적 생활입니다. 모압의 교만함과 거만함으로 심판을 당하는 그 모습을 반면 교사와 거울로 삼아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사람들에게 긍휼함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내 인생도 온 세상의 역사도 주어는 하나님이다." 예레미야 47,1-7 | 11-21-2025

11/21/2025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을 계속 말씀하시는 큰 그림 아래 블레셋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블레셋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듣는 대상이 누군가를 아는 게 참 중요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남유다 백성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방 나라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듣는 대상은 블레셋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남 유다 백성들에게 블레셋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너희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 만물과 모든 열방을 다스리는 얼마나 큰 하나님인지 너희가 아느냐는 것이죠. 하나님이 이렇게 크고 놀라우신 분인데 너희는 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느냐는 엄중한 책망이 담긴 말씀임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변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예고 말씀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가 기어이 불순종하고 돌아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하나님의 본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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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블레셋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 블레셋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가를 함께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블레셋이라는 단어는 영으로는 Philistine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지금 잘 쓰는 단어인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바로 성경에 등장하는 블레셋 백성들입니다. 이 블레셋이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괴롭게 했으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멸절하라고 말씀하신 백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블레셋 족속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하고 결국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역사 내내 가장 이스라엘 백성들을 힘들게 하고 끈질기게 괴롭혔던 민족이 바로 블레셋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의 사건이죠. 골리앗이라는 거인이 바로 블레셋 출신이었습니다.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기도 하고 계속적인 어려움과 침공을 당하며 고통을 당하게 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서를 보면 블레셋의 악행에 대해서 끊임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25장, 이사야 14장, 스바냐 2장을 보게 되면 반복적으로 블레셋에 대한 죄악을 고발하고 있는데 크게는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악행과 우상숭배입니다. 지속적인 죄악과 우상숭배가 결국 블레셋을 심판 외에는 남은 게 없는 백성이 되게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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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블레셋에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임하게 됩니까? 북쪽에서 쓰나미의 파도가 몰려 오듯 갑자기 물이 그 성읍과 거기에 있는 자들을 휩쓸 것임을 예고하셨습니다. 블레셋에게 임하는 심판의 모습은 전혀 예상치 못한 때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라는 말을 통하여 블레셋 나라의 모든 군사력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었냐 하면 남쪽에 애굽을 방어하는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이 보기에 그 당시에 가장 강한 나라는 남쪽에 있는 애굽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은 그 당시에 너무나 작고 우스워 보이는 나라여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나라였습니다. 애굽이 있는 남쪽만 잘 막으면 우리나라는 안전에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뭐냐면 블레셋에게 남쪽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가 문제라는 겁니까? 북쪽이 문제라는 거예요. 북쪽에서 쓰나미의 파도가 오듯 물이 모든 곳을 다 휩쓸듯이 그 심판의 날이 임하게 될 거라는 것을 예언으로 주시는 것이죠. 이 말씀을 전할 때 눈에 보이는 현실로는 바벨론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블레셋을 멸망시킬 정도로 그런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은 너무 작은 나라였고 그냥 눈에 보이는 상황과 현실로 봤을 때는 주변 정세를 봤을 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그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게 될 거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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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예상하지 않게 홀연히 북쪽으로부터 찾아오는 블레셋을 향한 심판의 모습은 3가지의 모습으로 증언되고 있습니다. 2절 뒷부분에 보면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모든 땅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3절에 보면 자기 자녀를 돌아보지 못하리니… 4절을 보면 도와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이라. 다시 말하면 백성들이 부르짖으며 울부짖는 끔찍한 현장, 자녀를 부모가 돌볼 여력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나가는 상태, 모든 도움이 다 끊어지는 절망이 임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런 심각하고도 끔찍한 심판이 블레셋에게 임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보이지 않는 손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선언입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여호와의 칼이 정하셨다…즉 블레셋을 치시고 심판하시는 주어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블레셋의 악함을 결국 하나님이 심판하시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남유다 백성들은 내 인생의 주어도 나라고 착각하고, 온 나라와 열방의 큰 흐름도 눈에 보이는 정치력이나 군사력으로 왔다 갔다 한다로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을 향하여 찔러 주시는 말씀으로 알려 주시는 엄중한 진리가 바로 내 인생에 주어도 온 나라와 열방의 큰 흐름의 주권도 오직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이라는 나라가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이렇게 말도 안 되게 쓰나미의 파도가 오듯 심판을 당할 텐데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산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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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인생의 주어가 나라고 착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흐름은 결국 정치력과 군사력으로 눈에 보이는 권력과 돈의 힘으로 움직이는 것 같이 착각하며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런 착각을 깨기 위해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엄중한 경고로 말씀하십니다. 제대로 보라고… 우리 인생에도 우리는 남쪽만 잘 막으면 되고 어느 한 부분만 잘 막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데 인생의 문제는 전혀 예상하지 않은 다른 쪽에서 뻥뻥 터지게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믿고 의지하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눈으로는 믿어지지 않고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통하여 이 모든 역사의 큰 흐름들이 하나님의 주도 아래 이끌어가고 있음을 너희가 분명히 믿고 고백하느냐고 엄중히 물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게 산다는 것, 말씀의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결국 내 인생의 주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철저히 믿고 고백하는 순종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나라들의 흐름들도 정치력과 군사력이 아닌 결국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움직이고 있음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어 되시는 인생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온 세상을 향한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숨겨주심, 인도하심을 고백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참 안전과 평안은 오직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뿐이다." 예레미야 46,13-28 | 11-20-2025

11/20/2025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이방 나라의 심판 중에 첫 번째로 애굽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13절 이후의 뒷부분에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애굽을 쳐들어와서 애굽을 멸망시키는 참담한 모습을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 세상을 대표하는 애굽을 의지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 기어이 불순종하며 애굽으로 내려간 남유다의 남은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이 땅 가운데 어떤 것에도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애굽의 심판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성경 전체에서 출애굽, 애굽에서 빠져나오고 애굽에서 벗어나는 게 구원의 본질입니다. 애굽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이며 세상을 대표하는 나라입니다. 애굽에서 세상에서 벗어나 빠져나오는 게 구원인 출애굽인데,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고백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대신에 눈에 보이는 것에 매몰되어 눈에 보이기에 좋아 보이고 안전해 보이는 세상을 붙들고 쫓아가는 그런 악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도 예루살렘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처절하게 망하는 것을 보고서도 하나님 말씀에 또 다시 불순종하여 기어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애굽은 내 눈에 보기에는 심히 아름다운 암송아지같이 안전함과 평안함과 풍요함을 주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순종을 각오하고 서라도 기어이 애굽으로 내려가서 자신들의 안전과 평화를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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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더 강한 어조로 경고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안전을 평화를 풍족함을 줄 거라고 착각하며 찾아간 애굽은 결국 더 처절하게 박살나고 멸망할 것임을 선명히 보여주시는 겁니다. 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이처럼 수치를 당하며 애굽이 멸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무너뜨리고 몰아내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애굽이 철저하게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면서 이곳 저곳에서 탄식 소리가 들리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북으로부터 쇠파리 떼가 오고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고 재난의 날이 이르렀고 벌받는 때가 왔음이라….이게 애굽이 처하게 되는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애굽이 이렇게 철저하게 바벨론에게 패하고 무너지게 되는 모습을 이처럼 소상이 기록하는 이유는 남유다 백성들이 애굽에 대한 기대가 그렇게 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세상과 애굽을 의지하는 마음이 그렇게 컸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기대와 소망을 끊어버리려고 하신 겁니다. 세상을 향하여 눈에 보이는 것을 향하여 기대와 소망을 갖는 모든 것들을 끊어 내시며 무너지게 하시는 것이 결국 출애굽으로 이끄는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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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애굽의 멸망과 심판만을 말씀하시지 않고 애굽과 애굽의 신들을 의지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명시하고 계십니다. 애굽의 멸망은 바로와 애굽 신들을 의지하는 자들을 벌하심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단순히 애굽으로 안전과 평안을 위해 내려간 것만이 아니라 애굽의 바로 왕을 의지하고 애굽의 신들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그들이 애굽을 동경하며 세상을 동경하며 불순종을 하며 기어이 애굽으로 내려와 한 일이 뭐라는 거예요? 바로 왕을 의지하고 바로 왕과 함께 애굽의 신들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고집과 불순종으로 애굽으로 내려온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애굽으로 내려와 하나님 대신 바로 왕을 섬기며 우상들을 의지한 불신앙이 더 본질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심판은 바로를 의지하는 자들, 애굽 신들을 의지하는 자들을 벌하시게 되는 엄중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 대신 의지하고 기댈 언덕을 갖는 모든 것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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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되며 하나님을 왕으로 내 삶의 넘버원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남유다의 남은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며 눈에 보이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며 애굽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세상이 안전과 평안을 줄 것처럼 착각하며 오늘도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자꾸 눈과 마음이 쏠리는게 위험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유다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대신 눈에 세상에 마음이 쏠리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 대신에 세상을 왕으로 그리고 세상 신들을 의지하며 섬기고 살아가게 되는데 본질적 문제가 있는 겁니다. 돈신, 명예신, 세상이 주인 것들을 신으로 여기며 그것을 의지하고 붙들고 하나님을 버리고 살게 되는 것이 본질적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대신 의지하고 기댈 언덕을 갖는 모든 것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결국 이 모든 것들을 다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무너뜨리고 망하게 하시면서라도 우리를 끄집어내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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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세상과 애굽이 안전과 평안을 줄 것 처럼 생각하는 착각에서 깨어나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애굽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애굽의 신을 섬기고 의지하는 것이며 하나님 대신 바로왕을 섬기고 의지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애굽이 수치를 당하며 재난을 당하며 이렇게 무너지고 망하게 되는 것이 곧 눈앞에 보여질 현실, 곧 다가오게 될 현실인데 기어이 애굽을 향하여 안전과 평안을 찾겠다고 가고 있는 남유다의 남은 백성들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도 불순종과 고집으로 꽉 찬 답답한 백성일 수밖에 없음을 말씀을 통해 깨닫기 원합니다.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모든 대상들이 무너지게 하시며 하나님 대신 붙든 소망을 둔 모든 것들이 무너지게 하시는 엄중한 심판의 말씀을 우리는 마음 깊이 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으로부터 건짐을 받고 부르심을 받고 불러냄을 받은 성도입니다. 출애굽이란 결국 세상과 애굽으로부터 도망쳐 나오고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이고 구원이자 나를 살리는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안전과 평안은 오직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마음 두지 말고, 이 세상에 소망 두지 말고, 하나님 대신 의지하고 소망을 두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우리가 의지해야 될 대상은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임을 철저히 고백하며 그 사랑 안에 거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애굽에 대한 기대를 끊어야 은혜를 경험한다." 예레미야 46,1-12 | 11-19-2025

11/19/2025

 
오늘 말씀 46장부터 51장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넘어 주변의 이방 나라들을 향하여도 확장되고 있음을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로 선언하면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은 이스라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인지 하나님은 얼마나 넓고 광대하게 통치하시는지를 증언하면서, 단순히 이스라엘과 유다의 하나님 이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철저하게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이 놀라운 선포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 남유다에게 앞 날을 대비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고 있고 하나님 말씀을 떠나 살고 있는데 너희 하나님이 이런 분이야. 그러니까 너희가 빨리 돌아오라…강력하게 손을 내밀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죽 답답하시면 내가 너희들 뿐만이 아니라 애굽도 블레셋도 모압도 모두 내 손 안에 있어..라고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누구신지 아느냐는 것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세계와 온 우주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다. 너희도 내 손 안에 있지만 온 세상도 내 손 안에 있고 온 우주도 내 손 안에 있다는 것을 것을 선언하시며 하나님에게 돌아오는 것만이,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오는 것만 것 살 길임을 잊지 말라 손을 내미시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오는 거 외에는 살 길이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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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 나라들의 여러 심판들을 예고하시면서, 그 여러 이방 나라들 가운데 애굽이라는 나라의 심판을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데에는 매우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왜 수많은 이방 나라들의 심판을 선언하시면서 첫 번째로 애굽이라는 나라를 하나님께서는 콕 집어 말씀하시는가? 왜 애굽의 심판에 대한 명령을 제일 먼저 말씀하시는가? 남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말씀에 불순종하고 기어이 내려갔던 곳이 바로 애굽이었기 때문이죠.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애굽에 소망을 두고 애굽이 우리를 안전하게 해주며 애굽으로 피하면 살 거 같다는 착각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렇게 의지하고 너희가 그렇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애굽이 어떻게 하나님 손에 심판을 당하게 되는지를 분명히 알라고 선언하시기 위해서 여러 이방 나라들 중에 제일 먼저 애굽에 대한 심판을 말씀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애굽의 상태를 나일강이 불어나 강물이 출렁이는 것 같다는 겁니다. 강물이 출렁이고 강이 불어나는 것은 큰 위기 직전의 상황이라는 겁니다. 강이 불어나면 그 주변 도시들이 다 침수되죠. 강물이 출렁인다는 것은 안정감 없이 사정 없이 흔들리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풍전 등화라는 표현을 애굽적으로 표현하면 강이 불어나고 강물이 출렁인다는 것입니다. 황급히 도망치고 물러가고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는 위기 상황이 지금 애굽이 처한 상황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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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볼 때는, 멀리서 볼 때는 애굽이 평안해 보이고 우리에게 평화와 안전을 줄 곳이라고 착각했는데 실체는 막막함과 두려움 덩어리였던 겁니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인 곳이 애굽이었던 것입니다. 애굽이 얼마나 다급한 위기 상황이었는가 하면 오늘 말씀 뒷부분에 보게 되면 애굽이 용병을 불렀던 세 지역이 등장합니다. 애굽이 스스로는 안 되니까 주변 나라들에게 용병들을 함께 데리고 와서라도 처한 위기 상황을 타개하고 전쟁에서 이기려고 그렇게 발버둥 쳤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만군의 주 여호와의 손 아래 애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주 만군 여호와께서 그의 대적에게 원수 갚는 보복이라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선 이미 애굽을 심판하시기로 마음에 작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소용 없음을, 아무리 큰 투구를 쓰고 창을 갈고 갑옷을 입어도 출렁이는 바다와 같이 곧 쓸려 내려갈 수 밖에 없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하나님은 애굽이 망하고 심판을 당할 것을 엄중히 선언하셨기 때문에 그 일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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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들의 심판 중에 특별히 첫 번째로 애굽의 심판을 말씀으로 주신 이유는 애굽에 대한 기대를 끊고자 하는 게 목적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애굽은 바로 눈에 보이는 세상이죠. 세상에 대한 기대를 끊게 하시는 게 하나님의 이방 나라의 심판 특별히 애굽에 대한 심판의 목적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꾸 세상이 뭘 해 줄 것처럼 기대하고, 자꾸 애굽이 뭘 해 줄 것처럼 기대고 의지하며, 세상이 안전하고 평화를 줄 것 처럼 착각하며 마음이 쏠리는 것 자체가 결국 불신앙과 불순종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남은 백성들에게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보여 주시는 영적 진리는 분명합니다. 하나님 대신 의지하여 안전할 거라고, 우리를 지켜줄 거라고 여긴 애굽은 이렇게 철저하게 다 무너지고 망할 수밖에 없었던 아주 허망한 나라라는 겁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며 강물이 넘치고 흔들거리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라인데 그런 나라에 기대 거기 가면 안전하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을 너희가 발견해야 한다는 겁니다. 내 눈에 보기 좋은 대로 가는 인생은 망하는 인생임을 잊지 말고 내 눈에 보기에 좋고 안정과 평안을 줄 것처럼 착각하는 이 모든 기대를 끊어버리는 것이 살 길임을 잊지 말라는 겁니다. 온 세상과 만물, 우주 전체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을 믿고 그 앞에 엎드리는 것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 길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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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우리도 남유다 백성들과 마찬가지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며 기어이 눈에 보이는 애굽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계속 나아가는 어리석은 백성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처한 상황과 처지에 매몰되어 우리 눈이 고정되기 쉬운데 상황과 환경을 넘어 하나님은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믿고 고백하기 원하십니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안타깝게 선언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너희들도 내 손안에 있고 애굽도 세상도 다 내 손안에 있다. 내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인지 너희는 진정 아느냐? 애굽과 세상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끊고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나오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기 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보기 좋은 대로 가는 인생 되기를 소망하기 원합니다.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기대를 끊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그의 뜻 가운데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며 사는 삶이 신앙 생활입니다. 애굽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만이,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만이 진정한 안전이며 안식임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안전과 평안과 오직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뿐임을 분명히 믿으며, 주님 앞에 두 손 들고 돌아오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이 알아주신다." ​ 예레미야 45,1-5 | 11-18-2025

11/18/2025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37장에서 44장까지 예루살렘의 함락과 남유다의 멸망, 그 멸망 이후에 3차 바벨론 포로됨의 사건들을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45장에서는 시간이 되돌아가 예전의 말씀입니다. 바벨론에게 멸망하기 전 요시아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로 갑자기 시간이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예레미야서의 모든 순서가 소위 말하는 연대기로 쓰이지 않은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만 특별히 오늘 말씀은 단순히 연대기대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의미를 넘어 굉장히 큰 구조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6장과 45장이 바로 예루살렘과 남유다가 멸망한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고 그 사이 37장부터 44장까지가 그 안에 내용입니다. 즉 앞과 뒤의 수미상관의 형태로 심판에 대한 계시의 말씀을 주시고, 그 사이에 남유다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다 무너지고 3차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는 그 모든 심판의 결과들이 증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바로 그 예전의 상황인 여호야김왕 넷째해, 즉 예레미야 선지자가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계시의 말씀으로 심판을 경고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바룩을 통하여 말씀을 기록하게 하는 그 사건을 다시 한번 가지고 오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36장의 말씀과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는데 바로 말씀의 초점입니다. 오늘 말씀은 누구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하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필하고 있는 바룩입니다. 그동안 모든 시선은 예레미야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충돌하고 부딪히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면 45장 말씀은 이 짧은 다섯절을 통하여 그 말씀을 마음을 다해 주신 그대로 기록했던 바룩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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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 보면 바룩이 자신의 처한 상황을 뭐라고 고백합니까? 화와 고통이라고, 슬픔이자 탄식이라고…하나도 긍정적인 말은 없습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대필하고 적어가는 사명에 나는 기쁨과 감사 충만합니다…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삶이 화이고 고통에 슬픔이 더하고 탄식으로 피곤하다…는 겁니다. 마치 큰 승리 이후에 이세벨의 협박으로 마음이 무너져 도망가고 우울증에 걸려 죽겠다고 했던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한 영적 탈진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바룩의 개인적 영적 탈진 상태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씀을 기록하며 전하면서,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남유다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영적 탈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두루마리에 기록하는 거룩한 사명을 받은 바룩, 그런데 그는 이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것 때문에 꽃길을 걸은 게 아니라 가시밭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남유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돌하고 부딪히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도, 그 말씀을 기록한 바룩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려움과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예레미야와 함께 바룩을 하나님께서 숨겨 주시고 겨우 하나님에 의해 목숨을 건짐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기록하는 자들을 향해 그렇게 죽이려고 달려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들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느끼는 심정은 뭡니까? 정말 화와 고통과 슬픔과 탄식과 피곤함이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주신 사명대로 살아갈 때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과 충돌하고 부딪히며 말씀을 죽이려 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바룩이 마음에 큰 낙심을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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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이런 바룩의 탄식은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선지자를 보내 진리의 말씀을 전해줘도, 아무리 바룩과 같은 자를 통해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해서 전해줘도 전혀 변하지 않은 백성들을 바라보며, 복과 생명의 길 대신 심판과 멸망의 길을 향하여 질주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남유다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한 것이고 마음이 무너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화와 고통과 슬픔을 더하며 탄식과 피곤함으로 힘들어하는 그 바룩의 모습은 탄식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겁니다. 이 짧은 다섯 절의 말씀을 통해 마음에 있는 고통과 슬픔, 탄식으로 피곤한 이 바룩의 마음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보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주목하셨고 영적 탈진에 빠지듯 무너진 그 마음을 위로하시고 만져 주셨습니다. 그렇게 바룩의 마음을 아시고, 그의 바라보시고 만져 주시면서 하나님이 바룩에게 하신 두 가지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 두 가지의 말씀이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도전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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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하나님이 세운 것을 헐기도 하시고 뽑기도 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세우신 게 누굽니까?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이죠. 하나님이 심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 스스로 허무시고 스스로 뽑으신다는 거죠. 그게 바로 남유다가 직면하게 되는 심판과 멸망입니다. 이걸 통하여 너는 나의 마음을 알겠느냐고 바룩에게 물어보시는 겁니다. 오죽 답답하고 오죽 안타까우면 그것을 세우신 분이 허물어 버리고 심으신 분이 뽑아버리겠냐는 것이죠. 오죽하면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 스스로 심고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과 그의 나라를 이렇게 헐어 버리시고 뽑아 버리시겠는가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룩이 느끼고 그의 마음에 담는 것이 제일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겁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큰 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생명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큰 일, 대단한 일을 찾지 말고 내가 너를 통하여 생명을 노략물 주듯이 하겠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으로 사로잡힌 바룩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위로가 무엇입니까? 너에게 크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너를 통하여 일하는 생명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시선에는 큰 것이냐 작은 것이냐, 대단한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생명이 전파되고 전해지는가 아닌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작고 보잘 것 없는 하나님의 맡기신 사명을 통하여 생명을 주신다는 그 은혜를 분명히 붙들고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 끝까지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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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룩을 위로하시는 그 하나님의 마음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마음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당하는 어려움, 내가 사명 때문에 당하는 고통과 슬픔과 탄식과 피곤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아시기만 하는 게 아니라 바라보시고 만져주시며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내 마음에 담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믿기 원합니다. 우리에게도 그 사명의 길을 가며 이 땅에서 진리의 길을 걸어갈 때, 이 세상에서 충돌하고 부딪히며 오해와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에 슬픔을 더하거나, 변하지 않는 세상을 바라보며 탄식으로 피곤한 답답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심을, 바라보고 만져 주시며 위로해 주심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망을 갖는 이유입니다. 결국 우리 삶의 가장 큰 위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과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는 분명한 믿음, 동시에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질 때 우리에게 가장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해도 하나님이 알아주시기 때문에, 내 마음을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을 아시기에, 주님 바라보고 붙들고 오늘도 이 세상에서 소망을 갖고 믿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입니다. 크고 대단한 일이 아니라 놀라운 일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그 일이 중요함을 잊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 아래 쓰임 받는 것, 이것이 사명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며 바룩에게 주신이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가 저와 여러분들을 회복하고 세우는 메시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대가는 처절하다."예레미야 44,22-30 | 11-14-2025

11/14/2025

 
기가 차다, 기가 막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말은 언제 쓰는가 하면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화를 낸다거나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올 때 우리는 보통 기가 찬다, 기가 막히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남아 있는 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도 응답에 대해 반응하는 대답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바로 기가 막히고 기가 찬 백성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만을 예배하도록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남 유다 백성들이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땅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익숙해지며 살아가는 기준과 가치를 눈에 보는 보이는 세상에만 두고 살아가니까 하나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며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붙들고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큰 어려움과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예루살렘이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무너지고 망하게 됐습니다. 그 재난과 심판 앞에서 해석했던 방식은 기가 차게도 하나님이 바벨론보다 힘이 약해서라고 그들이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불신앙과 불순종 때문에 이런 심판과 재앙이 왔다고 회개하는 대신에 여호와 하나님이 약해서 바벨론보다 약해서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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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더니 유다 땅에 머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기어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애굽으로 내려왔습니다. 내 눈에 보기 좋고 안전해 보이는 애굽으로 내려왔습니다. 애굽으로 내려와서도 인생이 안 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들이 했던 해석의 틀은 조상 탓, 하늘 여왕 제사 안 드린 탓, 하나님 탓을 하고 있었습니다. 애굽의 하늘 여왕에게 제사와 분향을 잘 안 드려서 이런 일들이 생긴다고 해석하며 산 것입니다. 자복하고 회개하는 대신, 자신들의 고집과 어리석은 판단이 삶에 일어나는 모든 해석의 틀을 외부로 돌리며 살게 만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힌 하나님의 백성 남 유다의 삶의 현주소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기억하고 마음에 떠올라 더 이상 참으실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불순종,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불신앙을 망각한 채 계속 핑계 대고 남 탓하고 하나님 탓하며, 하늘 우상에게 매달려 사는 그들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경고하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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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두 번이나 반복하시며 그들에게 지적하시는 하나님의 경고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대가는 처절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남유다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은 대가가 얼마나 처절한가를 세 가지로 알려주고 계십니다. 첫 번째는 너희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처절한 대가입니다. 너희가 말한 그대로 너희가 서원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겠다는 겁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고 가나안 땅 앞에서 불평과 원망으로 통곡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과 똑같죠. 너희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지겠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우리는 여기서 다 죽겠다 말한 그대로 너희는 죽게 될 거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살아가는 자들인데, 하나님의 말씀 대신 불평하고 원망하며 탓하는 말들 그대로 이 땅에 이루어지고 너희들 삶에 이루어 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상실한 마음 그대로, 가증한 죄에 대한 결과를 그대로 직면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처절한 대가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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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듯이 너희가 또다시 애굽이 망하고 심판 당하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남아 있는 남유다 백성들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이렇게 처절하게 망하고 심판 당하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굳이 가지 말라는 애굽으로 도망가서 또다시 그 심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말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게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이 처절하게 돌 하나 남기지 않고 멸망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는데, 너희가 안전하다고 착각한 애굽은 똑같이 망하게 되고 똑같이 멸망하고 심판 당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할 것이라는 겁니다. 예루살렘에서 경험한 그 끔찍한 심판을 또 애굽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말씀이 순종하지 않은 처절한 대가는 누구의 말이 진짜이고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를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말씀에 불순종한 처절한 대가를 지불하고 나서, 이 모든 재난과 심판이 애굽에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말씀이 진짜이고 진리임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듣지 않고 불순종한 결과로 그들이 직면하는 처절한 대가의 마지막이 뭐라는 겁니까?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분명히 알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이 진리인지 그들의 말이 진리인지, 세상의 말이 진리인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지 드러나고 정확하게 판명되는 그 날을 경험하게 될 거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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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고 고집 부리게 되면 이렇게 남유다 백성과 같이 기가 차고 기가 막힌 인생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며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무너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는 대신에 조상 탓하고 하나님 탓하며 하늘 여왕 붙들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너희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지며, 안전하다 착각한 애굽에 심판과 재앙이 펼쳐지며 그걸 통하여 누구의 말이 진리인지 선명히 드러나는 그 날이 되는 것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처절한 대가가 될 것입니다. 이 처절한 말씀을 듣지 않는 불순종의 대가가 반복되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불순종의 대가는 처절함을 잊지 말고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섬기기 원합니다. 나의 인생에 내 말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주의 말씀과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주의 백성, 나의 삶에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이 경험되고 펼쳐지므로 심판에서 건짐을 받음으로 하나님 말씀이 진리임을 삶으로 경험하는 하나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새벽묵상 "내 뜻과 계획을 관철시키는 게 기도가 아니다." ​ 예레미야 44,11-19 | 11-13-2025

11/13/2025

 
​하나님께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책망하셨던 때가 있었습니다.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갈 길을 보여 주시는데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불신앙과 불순종이 그들을 광야 1세대가 모두 광야에서 엎드어질 때까지 유리하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들의 영적 태도를 바로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 불신앙과 불순종의 문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붙들고 섬기는 이 문제가 결국 반복되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패턴이었다는 것을 성경은 엄중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눈앞에서 예루살렘이 불신앙과 불순종으로 그렇게 처절하게 무너지고 망하는 것을 본 백성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남아 있는 남유다의 백성들, 기어이 자기 고집대로 나아가는 목이 곧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레미야에게 와서 겉으로는 우리가 갈 길과 해야 될 일을 알려 달라며 간절히 기도를 부탁했었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굉장히 젠틀하고 나이스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같았는데 결국 그들이 원했던 건 하나님께 자신의 뜻과 계획을 결제만 받는 것을 원했습니다. 우리의 뜻과 우리의 계획이 결정되었으니까 하나님 박수만 쳐 주세요…하나님 잘했다고만 해 주세요… 하나님 결제만 해 주세요…그게 그들의 기도였습니다. 기도를 통해 내가 원하는 길과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은 그냥 오케이만 해 주시고 그냥 결제만 해 달라고 요청한 것 뿐입니다. 그런 그들의 태도를 반복되는 목이 곧은 백성들의 변하지 않는 고집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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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기어이 불순종 하며 애굽으로 내려가겠다는 사람들의 끝이 어떻다고 경고하시는 겁니까? 그들을 처단하고 멸망하고 애굽 땅에 다 엎드려질 것라고 경고하시는 겁니다. 12절과 13절에 세 번이나 칼과 기근, 전염병이 반복됩니다. 구약 성경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표적인 세 가지 도구입니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망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심판해서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 언어들인데 이걸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그렇게 고집 부리고 하나님 뜻을 거슬러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면 너희는 반드시 예외 없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살아 돌아올 자도 없고 도망치는 자 외에 돌아올 자가 없을 거라고 경고하신 겁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으로 가장 강력한 말씀을 주신 겁니다. 이 말씀의 결론은 뭐겠습니까? 너희의 뜻을 꺾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우상숭배를 내려놓고 말씀 가운데 순종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분명한 길을 주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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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요하난과 남은 유대 백성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겠다…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겠다…아주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신 하나님의 응답을 거스르고 기어이 고집을 꺽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겠다는 겁니다. 내 계획과 내 뜻을 불순종을 감수 하고라도 반드시 실행하겠다는 것이죠. 이것이 기도 응답으로 주신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자들이 자기 뜻과 자기 고집을 꺽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겠다는 것도, 우상숭배의 불신앙을 버리지 않겠다는 것도 모두 옛날 출애굽 때부터 반복된 목이 곧은 백성들의 고집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대신에 내 뜻과 내 계획을 반드시 실행하겠다고 기어이 고집을 부리며 심판과 멸망의 길로 질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경청해야 사는데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붙들어야 사는데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경시하며, 우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김으로써 그들은 축복이 아닌 저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아닌 심판의 길로 계속 질주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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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그들의 우상숭배를 정당화하며 당당하게 말을 합니다.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릴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다는 겁니다. 그 우상 숭배를 멈추고 나니까 우리 삶에 어려움과 궁핍이 찾아왔다는 겁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특징은 내 주변 환경 변화를 어떤 외적 원인으로 돌려버리는 겁니다. 집에 부적을 붙었을 때는 평안 했는데 집에 부적을 붙이지 않아서 우리 집에 마가 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똑 같은 겁니다. 이들은 애굽에 내려가서 그냥 살기만 한 게 아니라 애굽의 우상인 하늘의 여왕을 아주 잘 섬기며 우상숭배 가운데 빠져 산 것입니다. 그리고는 인생의 모든 잘되고 안 되는 것을 하늘의 여왕에게 드리고 안 드리고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내 삶을 돌아 볼 때 첫번 째는 우리 죄 문제를 돌아봐야 하고 불신앙과 불순종의 문제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에 빠진 남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은 돌아보지 않고 뭐를 통해 그것을 해석합니까? 우리가 하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제사를 잘 드렸나? 안 드렸나…집에 부적을 붙였나 붙이지 않았나? 로 해석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세상 습관과 세상의 우상문화에 빠져 살아가는 자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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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남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하나님의 백성인데 여전히 불신앙과 불순종에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경시하며, 끊임없이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 말라는 경고하시는 애굽을 기어이 내려가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하늘 우상을 섬기는 그 고집이 결국 그들의 인생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다시 한번 망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말씀 가운데 순종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교정되는 인생이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상을 철저히 무너뜨리는 불신앙과 불순종으로부터 돌이키는 인생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을 때, 내가 원하는 기도의 응답이 아닌 다른 답을 주셨을 때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돌아올 기회를 받는 겁니다.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했을 때 내 뜻을 내 뜻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기어이 고집 부리고 애굽으로 가고 고집 부리고 우상을 겸하여 섬겨 망하는 길고 질주하는 그들을 반면 교사 삼아 불신앙과 불순종에서 돌이켜 변화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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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Seed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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