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6장에서는 기드온을 부르시고 준비시키시는 말씀으로 가득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자격 미달인 기드온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붙드시고 영적 준비를 한 후에 7장에서는 드디어 기드온이 미디안과 영적 전투를 벌이는 장면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적군인 미디안은 숫자 적으로 너무나 많은 군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인해 전술과 같은 수많은 적군의 병사가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기드온의 가장 큰 걱정의 프레임은 여전히 사람이 적어 문제다…입니다. 지금 3만 200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좀 데리고 전쟁에 나가는 데도 기드온의 마음은 어떠냐 하면 우리가 숫적으로 너무 열세라는 생각이 가득해, 이 숫자로는 나가 전쟁에서 싸워 이기기 어렵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 32000명의 군인들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라는 겁니다. 너무 많아서 그 숫자로 나아가면 싸워 이길 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겁니다. 걱정의 프레임 자체가 기드온과 다른 겁니다. 결국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는 주체가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죠. 기드온은 32000명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걱정인데, 그 마음속에는 이 전쟁이 눈에 보이는 병력과 숫자에 좌우된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것이죠. 그런 영적 전쟁을 준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은 눈에 보이는 숫자가 많은 것이 전쟁을 이기는 데 더 유리하고 훨씬 더 이길 확률이 많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는 거예요.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영적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에 싸움도 되구요. 내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가에 싸움도 되는 겁니다.결국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바라봐야 되는 건 뭐냐면 하나님의 시선과 우리의 시선이 다르고 하나님 걱정의 프레임과 우리 걱정의 프레임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겁니다. 너는 지금 백성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지만, 사실 사람이 너무 많은게 더 큰 문제다….결국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전쟁에 나가서 이기고 돌아와도 하나님 때문에 이긴게 아니라 나 때문에 이긴 것처럼 착각하며 무너질 수 있는 게 더 걱정이라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걱정하시는 프레임을 바라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전쟁 나갈 숫자가 너무 적어서 걱정이라는 우리들에게,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너를 구원 할까봐 나는 걱정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걱정을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자가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기드온이 6장에서 그렇게 훈련 받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그 변화의 과정이 없으면 이렇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께 막 항의했을 겁니다. 32000명도 지금 너무 적어서 걱정인데 하나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그러면서 말도 안된다고 그러면서 항의하고 하나님께 따졌을 수 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걱정이시라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겁니다. 기드온이 내 눈과 내 생각에는 이해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모든 과정이 이해되지 않음에도 순종하고 믿음의 태도와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에 놀라운 특징이고 영적 지도자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 믿고 순종하는 겁니다. 내 눈에 보기에는 3만 2천명이 너무 적어 보이는데, 너무 많아 보인다는 주님의 뜻대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줄이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두려워 떠는 자들은 돌아가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풀어 주는 겁니다. 그랬더니10000명이 남고 22000명이 돌아갔습니다. 거의 2/3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돌아간 겁니다. 그 흩어져 뒤로 돌아가는 2/3의 백성들을 바라보는 기드온의 마음은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 했겠어요. 그렇게 해서 3만 2천 명 중에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만명의 군사가 남았습니다. 3/2가 돌아갔는데도,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10000명도 많다 라는 겁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죠…그러니까 만 명 중에 또 잘라 내겠다는 겁니다. 그 갈라 내는 방법은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테스트를 통과하는 겁니다. 그 군인들을 다 물가로 데려가서 손으로 웅켜서 입에 올려 먹는 사람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돌려보냅니다. 이번에는 거의 대부분 97%가 돌아가는 겁니다. 아까는 3분의 2가 돌아 갔을 때도 가슴이 와 벌렁벌렁 걸렸는데 그 남은 만명 중에도 97% 를 돌려 보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고 남은 3% 가지고 내가 이게 하겠다는 거예요. 세상적인 관점과 시각으로 봤을 때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10000명 중에 3%, 소수 정예로 300명만 남기시는 겁니다. 적으면 적을수록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매달리기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그 영적 전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무엇을 지금 기드온에게 훈련시키십니까? 세상에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세상 걱정과 규모로 이 전쟁을 보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가 타락하는 증거 중의 하나 뭐냐면 세상 프레임을 교회로 그대로 들고 와서 모든 것을 기정 사실화 하는 겁니다. 사명에 따라 교회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교회의 모든 주된 관심사가 그 크기에만 있고 교회 예산의 규모에만 있다면 세상의 프레임과 전혀 차별성이 없는 겁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사명을 더 크게 감당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게 필요하고 많은 예산이 필요하게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선교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명과 상관없이 그냥 사람들 숫자와 재정 규모만이 모든 주된 관심사가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신앙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그런 구별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공동체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드온이 2/3이 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그 뒷모습을 통해, 그 중에서 또 97%를 돌려보는 것을 통해 기드온을 훈련시키시고 저와 여러분들을 훈련 하시는 겁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도 내가 걱정하는 그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죠. 하나님과의 시각 차가 있을 때 하나님만을 온전히 붙드는 그 믿음의 시험을 통과 라는 거예요. 놀라운 사실은 기드온이 어느 한군데서 토를 달거나 하나님께 항의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6장에서 많이 충돌했고 6장에서 많이 의심했습니다. 6장에서 계속 하나님께 표징을 보여 달라고 얘기했어요.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난 이후에 기드온은 자기의 생각과 프레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며 하나님께 토달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방법 3만 2000명을 만 명으로 지우고 만명을 300명으로 줄이는 그 하나님의 방법을 끝까지 신뢰하는 겁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충돌할 때 내 생각을 내어 맡기고 하나님의 방법은 믿고 따르는 그 지혜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직면하는 영적전쟁에서 내 걱정의 프레임이 뭡니까? 기드온과 똑같습니다. 늘 내가 가진게 부족하고 내가 가진 총알이 부족해서 늘 걱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돈이 있어야 되고 나는 더 병력이 있어야 되고 더 많은 총알이 있어야 된다 생각합니다. 그 프레임 자체가 영적 전쟁에서는 가장 위험하다는 건 성경에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얘기하는 것이죠.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걱정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그 영적 전쟁 이라는 것을 분명히 묻는 믿음이 없어질까 더 걱정이시라는 겁니다. 이 영적 전쟁에서 나는 규모와 숫자를 가지고 이기려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 하므로 이기려 하는가…를 가르는 것이 영적 전쟁의 특징입니다. 영적 전쟁을 싸울때 숫자와 크기의 눈에 보이는 것에 내가 갇히지 않기를 기도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을 더 믿고 신뢰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할까 봐 걱정 하시는 주님의 걱정이 나의 걱정의 프레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걱정 프레임을 붙들고, 오히려 많이 가지고 환경이 좋으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고 이기고도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의 힘으로 자기들의 능력으로 이긴 것처럼 착각해서 무너지는 것이 더 큰 걱정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걱정하는 걱정의 프레임이 이 세상과 다르고 하나님과 비슷해지기를 사모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오직3% 를 가지고 일하실 지라도 그것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쓰임 받는 기드온과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집안의 영적 대청소를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기드온의 담대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버지 집에 있었던 바알과 아세라상을 다 무너뜨리고 그곳에서 죽음 앞에서 목숨을 건지며 결국 그는 바알과 다투는 자…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Public Image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기드온은 완전히 영웅이 되었습니다. 바알과 다투는 자, 라는 여룹바알을 직역하면 바알과 맞장뜬 사람, 이런 뜻입니다. 세상 우상에 그냥 굴복하고 눌린 것이 아니라 맞짱 떠서 다투고 부딛힌 자가 바로 기드온인 것입니다. 기드온은 사람들이 보기에 바알에게 맞짱뜨며 충돌한 특별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사사로 높여지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다고 증언합니다. 성경에서는 그게 어떤 사건이었는지는 알려주지 않으나 분명한 건 그의 삶에 하나님의 영이 놀랍게 임한 것입니다. 그 집안에 있던 우상들을 무너뜨리고 바알과 맞장뜨고 충돌하며 싸우는데 하나님이 그런 영적 전쟁에 능력을 부어 주셨겠지요. 기드온이 무서워서 밤에 그런 일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을 순종하고 의지하며 그 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사람들이 보기에는, 겉보기에는 기드온은 사사로서 모든 게 준비된 자로 보여집니다. 바알과 맞장뜨는 자로, 여호와의 영이 충만한 자로…저 정도면 준비됐다 생각하며 그 기드온의 리더십으로 이제 미디안과 싸울 준비가 다 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그 다음에 등장하는 기드온의 모습을 통해 너무나 연약하고 부끄러운 모습, 아직도 여전히 의심 많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고 바알과 맞장뜨는 놀라운 겉모습과 달리 실제 기드온의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아직도 온전한 하나님의 신뢰가 없는 거예요. 다시 한번 자기한테 표징을 보여 달라는 거죠. 이미 예전에 기드온에게 표징은 다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하나님의 사자를 대면하고도 죽지 않게 했고 본인이 드린 제물이 물이 다 마르고 불로 다 태워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또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에게 이렇게 표징을 요구하냐는 겁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했는데도 그 마음에 아직도 불안함과 두려움이 있으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솔직한 자화상인 것입니다. 목회자인 저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이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거 아닙니까? 세상 같이 간 따라가지 않고 세상 가치관과 충돌하며 불편해 하며 이 세상에서 성도로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려고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님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무언가 할 것 같은데 내 마음의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함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그 연약함도 동시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기드온의 연약한 마음이었고 그게 저와 여러분들의 연약한 모습이라는 거예요.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이런 기드온을 막 책망 하시거나 혼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표징을 부탁하는데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들어주세요. 기드온이 요청한 대로 양털만 젖고 주변 땅은 마르는 표징을 보여주신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멈췄어야 하는데 또 한번 부탁하며 이번에는 거꾸로, 양털만 마르고 주변 땅을 다 젖게 해달라는 겁니다. 하나님 하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 했으면 도 하나님 온전히 믿어야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이렇게 연약하게 흔들거리며 넌 어떻게 아냐? 이렇게 혼내지 아니 하셨다는 거예요. 또 한 번의 요청을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들어주시며 그 표징을 드러내셨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기드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하나님께선 준비 다 되셨다는 데 나만 믿고 따라갈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반쪽으로 말 순종하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계속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이 기존의 연약한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입니다. 기드온과 같이 자격미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쓰시겠다 작정하셨으면 그 약한 자를 들어 빚으시며 이렇게 사용되도록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격 미달인 기드온을 끝까지 빚으시며 세워 가신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을 바라보며 이 시간 반쪽 순종이어도 주님 앞에 끝까지 나아가 주님께 온전히 쓰임받는 기둥과 같은 준비된 사람이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성도로서 우리는 이 세상 문화와 이 세상의 가치관과 이 세상에 우산과 부딪혀야 되고 충돌해 되고 싸워야 되고 불편 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런 여룹바알의 삶이 성도의 삶임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 우상과 문화에 그냥 굴복하고 젖어들며 철저하게 길들여지는 삶을 단절하고 이렇게 부딛히고 충돌하고 맞장뜨는 삶을 살아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예배하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그래서 나의 인생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으며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 은혜가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보통 겨울이 지나고 나서 봄이 되면 항상 하는게 있는데 바로 대청소입니다. 집에 보통 청소를 정기적으로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 특별히 겨울에서 봄으로 바뀔 때는 누구나 대청소를 합니다. 대청소를 통해 집이 깨끗해지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잡고 새롭게 하는 통과의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격 미달이고 부족함 투정인 기드온을 들어 사사로 부르시며 하나님께서 함께함을 표징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뒤따라 가겠다며 제단을 쌓고 여호와 샬롬으로 고백을 하게 되죠. 실제로 기드온은 내일 말씀에서 여호와 샬롬을 위해서 놀라운 일을 실제로 실행하게 됩니다.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는 하나님은 미디안과의 영적 전쟁을 앞두고 먼저 기드온 자신과 그 집안의 영적 대청소를 먼저 시작하시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 하나님께 이렇게 놀라운 드리는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전쟁을 앞두고 이런 영적인 대청소를 시키신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명령하신 집안 영적 대청소는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를 찍고 헐어 버리라는 거예요. 영적 대청소를 할 때 계절에 바뀔 때마다 한 번씩 하면 좋은데, 이 집안은 영적 대청소를 거의 수십 년 동안 안한 게 분명합니다. 집안에 우상들을 세워 놓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기드온 아버지가 이렇게 우상들을 집안에서 섬기고 있었으니까 그 집안 자체가 가나안 땅 문화와 종교의 얼마나 젖어들고 물들고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기드온은 거기서 단절되어야만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받는 사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 기드온은, 미디안 족속을 물리치기 전에 집안에 있는 우상들을 먼저 물리치기 명령하신 겁니다. 가장 먼저 없애야 되는 저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안에 있었던 것이죠. 가끔씩 기독교인들이 불상을 찍어 버리거나 우상의 목을 자르는 일이 있는데, 바알이나 아세라의 우상을 무너뜨리고 헐어버리는 것은 먼저 나와 관계가 있는 가까운 집에 있는 것을 헐어 버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일수록 삶의 내면에 일어나는 영적 전쟁은 등한시 한 채, 영적 전쟁을 항상 외적인 면으로만 강조해서 균형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외적인 전쟁 전에 항상 내 자신과 가족 안에 있는 영적 대청소를 먼저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우상을 제거하고 불순물을 제거해 하나님의 대한 분명한 신앙을 회복할 때 주어지는 게 여호와의 샬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영적 대청소 명령을 듣고 기드온은 갈등했습니다.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하겠는데 사람들이 두렵고 하는 일 자체가 두렵습니다. 아버지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 뒷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까 굉장히 무서운 거죠 그래서 “말씀 대로 행하되…” 어떻게 보면 순종한 것 같고 구체적인 명령을 따라 행하는 거죠.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했는데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낮에 못하고 눈을 피해 밤에 이 일을 했다는 것이죠. 이것을 통해 기드온은 여호와 샬롬 이라고 믿으며 거기서 하나님을 예배 했지만 결국 여호와 샬롬이 그에게 풍성하게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 하긴 했는데 여전히 사람들을 두려워 해서 결국 밤에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반쪽 순종을 여전히 좋게 보시는 것을 보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영적 대청소의 첫 번째, 집안에 있는 그 아버지가 섬기는 우상들을 찍어 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사람들이 알게 되죠 그래서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을 끌어내 죽이려고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이제 기드온은 자기가 두려워한 그대로 정말 죽을 일만 남은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기드온의 아버지가 놀라운 지혜로 기드온을 변호하고 그의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바알과 다투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이 사건을 통해 집안에 복이 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반쪽 순종하며 밤에 일을 했지만 결국 집안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했고 기드온의 순종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하는 놀라운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사람들에게 세상 문화와 우상들과 충돌하고 부딛힌다는 명성을 얻게 된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잘라내라…무너뜨리라 명령하시는 세상 우상들과 문화와 이렇게 충돌하고 부딪치며 다투는 자입니까? 아니면 너무 세상 문화와 우상이 익숙해서 꼭 붙어 살기 때문에 아무런 충돌로 부대낌도 없이 살아 가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 하나님의 뜻에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세상 가치관과 우상과 우리는 다투어야 되며 부딪혀야 되며 불편 해야 되며 충돌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로서 우리에게 당연한 삶인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자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부딪치고 하나님의 말씀이 불편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충돌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과 부딪치고 불편하고 충돌한 자가 되기를 사모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과는 아무런 충돌과 부대낌 없이 꼭 붙어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격 미달인 기드온, 두려움 많고,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하며, 핑계대는 기드온을 포기하지 않고 사사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여전히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 한다는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데 주저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에게 표징, 즉 당신이 여호와의 사자라는 것을 내가 믿을 수 있도록 사인으로 보여 달라는 겁니다. 내가 당신의 말을 100% 믿고 신뢰할 수 없겠다는 거죠. 여호와의 사자 입장에서 기드온이 얼마나 기가 차지 않겠습니까? 너 같은 자격 미달의 사람을 그냥 사용한다고 내가 부르는 것 조차가 얼마나 은혜이며 감격스러운 일인데 지금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아멘” 그러며 순종하며 나와도 너를 쓸까 말까 한데, 지금 뭐하는 짓이냐? 너 말고도 쓸 사람 엄청 많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찾아 갈 법도 한데, 그러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오래 참고 그 미숙하고 미성숙의 종합세트인 기드온의 요청에 표징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모두 기드온처럼 연약하고 믿음 적고 소심하고 자격 미달인데, 거기에 의심까지 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야… 너 같은 애 됐어, 더 말고 쓸 사람 많아.” 그러시며 뒤돌아 가실 것 같은데, 오늘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들어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그 넉넉한 은혜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것이죠 기드온이 염소 새끼를 준비하고 그 다음에 그 무교병을 가져다가 대접을 하죠.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도 고기도 다 출애굽의 유월절 사건과 연결되어 있죠. 조상들이 체험한 역사, 출애굽 사건과 유월절을 떠올리며 지금 출애굽 사건과 같이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지금 시작점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무교병과 고기를 두고 나니까 여호와의 사자가 거기다 물을 가득 부으라 명령합니다. 그리고 나자 그곳에 놀라운 초자연적인 역사가 일어난 거예요. 물을 가득 담았는데 무교병과 고기를 다 사르고 물이 다 없어질 정도로 강력한 불이 임한 것입니다. 기드온이 드린 재물이 물과 함께 완전히 타는 모습을 통해, 기드온을 불살라 짐으로 받으시고, 네가 미성숙 종합세트임에도 불구하고 너를 내가 이렇게 사용하고 내가 너를 주도하기 때문에 너는 나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분명한 싸인을, 이 표징을 통해 보여준 것이죠. 그러니까 단순히 여호와의 사자라는 것만 놀랍게 보여주신게 아니라, 너의 인생이 이렇게 될 거라는 것을 보여준 거에요. 이건 마치 떨기나무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이 모세의 인생이 그렇게 될 거라고 보여주신 표징과 비슷합니다. 모세 앞에서 하나님도 불과 같이 역사했고 그 불은 떨기나무를 없애지 않는 소멸하지 않는 불이었습니다. 너의 인생은 떨기나무와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내가 너를 들어 쓸 때, 너는 소멸하지 않는 불과 같이 사용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게 될 거라고 보여줌과 똑같은 얘기에요. 이 놀라운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기드온이 그렇게 원했던 사인, 진짜 여호와의 사자인 것을 보여주신 표징이 된 거죠. 그런데 그리고 나서 이 여호와의 사자는 사라지고 나니, 기드온이 “나는 이제 죽었다.” 생각하며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대면하는 자는 모두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표징을 보여달라는 기드온에게 하나도 아닌 두 개의 표징을 보여 준 것입니다. 첫 번째 표징은 불로 모든 것을 사른 표징, 두번째 표징은, 하나님의 사자를 직접 대면하고도 죽지 않은 표징, 두개 모두가 초자연적인 사인이었고, 하나님만 믿고 가면 된다는 분명한 확신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기드온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샬롬이라 고백합니다. 즉 하나님은 나의 평화이심을 고백하며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기드온이 고백하는 여호와 샬롬이란, 전쟁이 없는 상황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문제가 없는 상황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대한 신앙을 회복하고 모든 우상을 제거하므로 오는 평화입니다. 내 안의 우상들을 허무시며, 막힌 담이 뻥 뚫려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됨으로 오는 평화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여전히 자격 미달이며, 의심 많으며, 아니하며 하나님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으며 뒤로 빠지려는 미성숙의 종합세트입니다. 그런 미성숙함에도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면 쓰임 받을 수 있다며 손을 내미시고 우리를 붙드시는 주님의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하심이 나에게 능력과 힘을 됨을 믿으며, 여호와 샬롬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나에게 현재형으로 경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드온은 사사기에서 분량이 가장 많은 사사중 하나입니다. 기드온 이야기는 6장에서 8장까지 이어지고, 9장은 그의 아들에 대한 증언이니 엄청난 분량입니다. 그만큼 사사기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자가 기드온입니다. 40년간의 평탄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망각하고 악을 행하면서 결국 무너졌고, 미디안에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학대와 고통 가운데 신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한번 자비를 베푸시면서 구원하시기 위해 기드온을 사사를 부르시고 세우십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큰 용사여” 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참 모순 중의 모순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6장은 기드온은 큰 용사라 절대 부를 수 없는 이야기만 가득 담겨있는 것입니다. 적어도 세 가지 이유 때문에 기드온은 큰 용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을 부르고 있을 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도망가고 숨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과 싸우는 건 고사하고 무서워서 숨어있는 두려움과 걱정 충만한 자가 바로 기드온 이었습니다. 이렇게 용기없고 숨어 있는 자를 어떻게 큰 용사라 그럴 수 있겠습니까? 두번째 자격 미달인 이유는, 기드온의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탓함입니다. 지금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 버리고 하나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나중에 배우고 있지만 기드온의 아버지조차 우상 숭배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 앞에까지 와있고 처절하게 무너져 물들고 있는 그런 영적 타락과 회개제목은 보지 못하고 이 상황의 모든 탓을 어디로 돌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서 이런 일이 있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삶에 어렵고 힘든 일이 찾아올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탓하고 원망하는 겁니다. 회개 할 생각은 안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원망하며, 하나님에게 모든 탓을 돌리는 인생, 이것이 우리의 문제이자 기드온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면서 무너지고 하나님에게서 도망가는게 죄의 패턴이라는 거예요. 지금 기드온은 그 패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니 큰 용사가 되기엔 완전히 자격 미달인 겁니다. 마지막 기드온이 자격 미달인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쓰려고 하시는데, 기드온은 계속 핑계대며 못한다고 물러서는 겁니다. 그 전까지의 모든 사사들은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 “아멘”으로 나와 순종하고 나가 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 와서 처음으로 사사로 세우려 하시는데 못한다고 뒤로 넘어지는 자가 나온 거예요. 기드온의 태도, 자기는 못한다고 핑계대는 모습은 거의 모세랑 흡사합니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 부르셨을때, 계속 못한다고 핑계대며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손사래를 치지요. 그러다가 하나님 한테 결국 혼나고 나가는 것이 모세였습니다. 기드온도 어찌 그렇게 비슷한지 못할 이유만 계속 들이대며 “나는 할 수 없다” 고 핑계대고 있습니다. 우리 집안도 약하고 우리집에서 나는 가장 힘이 없고… 안 될 이유만 찾는 겁니다. 여러분 그게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 아닙니까? 우리는 때때로 기드온과 같이 이렇게 숨어 있습니다. 앞에 나가서 싸울 생각 못하고 뒤에서 문제 뒤에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 삶의 어려운 가운데 문제 가운데 기드온과 같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지…하나님이 나를 버린 게 분명하다며 모든 이유와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고 하나님을 탓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뭐 좀 하라…그러시며 늘 핑계 논리이지요. 나는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고…처음부터 끝까지 못할 이유만 찾고 있는 이 부끄러움이, 저와 여러분들의 자격 미달의 민낯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신다는 거예요. 말도 안되게 이런 자격 미달의 기드온을 “큰 용사” 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그렇게 연약하고 의심 많고 자격 미달되는 것 같은 그런 기드온을 모순과 같이 큰 용사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너의 힘으로” 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는데 지금 기드온는 힘이 없어요. 기도는 싸울 마음도 없고 싸울 능력도 없으며 자기 인생 하나 건사 하기도 힘든 인생입니다. 결국 기드온이 가진 너의 힘은 뭐라는 거예요? 기드온이 가지고 있는 어떤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 네가 가진 큰 힘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이나 강조하시는 “함께하심,” 그게 너를 가장 큰 용사로 만드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생활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사사기는 계속 똑같은 패러다임을 보여주는데 그 당시의 주변인이고 이런 사람은 쓰임 받을 수 없을 거야 생각한 사람들을 계속해서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왼손잡이 에훗도 여자 사사 드보라도, 걱정 충만과 의심충만한 기드온도, 겉보기에는 자격이 미달되는 것 같은 그런 사람을 지금 하나님은 사사로 세우시는 겁니다. 자격 미달인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은 큰 용사로 부르십니다. 복음의 영적 전선에 나가 싸우는 큰 용사라고 부르시는 거예요. 나에게 자격 조건이 있어서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부르시고 사용하시기에 큰 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가진 능력과 조건들은 아무 상관이 없구요. 하나님 앞에 나가 순종하고 쓰임 받으면 우린 큰 자가 되는 겁니다. 내 조건이 나를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들리고 쓰임 받음이 나를 큰 용사되게 만드는 겁니다. 여전히 자격 없는 우리들을 끝까지 포기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부르시는 거에요. 부족한 저 같은 사람을 목사로 부르시고 부족한 여러분들을 성도로, 직분자로 부르시며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며 선교적 삶을 살라는 거예요. 나는 힘이 없고 능력이 없는데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라는 겁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는 게 너의 가장 큰 힘이며 그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의지하고 순종하고 나가는 게 천국 백성들이 살아가는 초자연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기드온과 같이 연약하며 하나님을 탓하며 하나님 앞에 핑계 대며 뒤로 빼는 부족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자격 미달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며 여전히 손 내미는 주님의 그 은혜를 붙드십시오.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하신 그 은혜를 붙들고, 그 은혜 가운데 새 힘을 얻고 주님 앞에 아멘으로 순종하여 나에게 가장 큰 힘은 주님과 함께 하면서 나오는 그 놀라운 기적을 저와 여러분들이 현재형으로 경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사기 5장 말씀은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통하여 놀라운 전쟁의 승리를 경험하게 하신 이후에 그 승리를 기쁨과 감격으로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전쟁의 놀라운 승리를 노래로 회상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전쟁 후 남긴 드보라의 노래는 부르는 사람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큰 승리를 주신 그 여호와 하나님 그 하나님을 잊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고 이기신 영적 전쟁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노래를 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의 승리를 현재형으로 기억하며, 과거의 그 은혜가 현재 우리에게도 임하기 원하는 사모함이 노래가 주는 놀라운 효과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의 이 드보라의 노래는 미리암의 노래와 굉장히 비슷합니다. 출애굽기에 홍해를 건넌 직후 부른 미리암의 노래 기억하실 겁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들어 놀랍게 바로 왕의 압제에서 건지시며, 그 추격하는 바로 왕의 군대를 모두 멸절하게 된 사건, 홍해를 건너는 출애굽 사건을 노래로 고백한 것이 미리암의 노래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기적적으로 마른 땅과 같이 걸었고 추격하는 바로왕의 군대들이 모두 바다에 던지신 기적을 체험했고, 그 하나님의 역사를 노래로 고백하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큰 전쟁 직후 지금 그 노래를 승리로 기록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도 비슷하고 그 전쟁의 배경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홍해가 막혀 있는데 뒤에서 바로왕의 군대가 막 추격하고 오고 있고, 그 군대들의 추격 소리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겁먹고 떨며 우린 죽었다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손 강가로 철 병거 900승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죽이려고 달려오고 있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격해 오는 철병거들을 보며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다….이미 끝난 전쟁 이나 마찬가지다… 라고 벌벌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드보라가 노래하는 철병거 900승을 이끌고 기손강가로 추격해온 가나안 군대들을 갯벌에서 꼼짝 달삭 못하게 해셔서 걸어 도망 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옛날 조상들이 경험한 출애굽 사건, 추격하는 바로왕의 군대들을 홍해 바다에 던지신 사건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철병거를 무용지물로 만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출애굽을 이끄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게 됨을 고백하고, 이 전쟁을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이 전쟁은 하나님만이 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놀라운 승리를 체험했다는 것을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의 승리 후에 드보라가 고백하는 노래는, 사실 드보라의 간증이자 예배였습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드보라가 마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에 대한 고백이자 예배입니다. 예배는 결국 내 마음을 다해 내 마음으로 하나님이 누구 시며 하나님이 내 삶에 하신 놀라운 일을 고백하는 게 예배 아니겠습니까? 드보라는 전쟁 전에도 하나님을 예배했고, 전쟁 중에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나아갔으며, 그 전쟁이 끝난 이후에 그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여호와께 찬송하며 그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자 사사 드보라를 이렇게 놀랍게 사용하신 이유는 결국 그는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하나님 보다 앞서 나가지 않았으며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공급 받는 법을 배웠으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을 신뢰 했으며 그분의 임재 가운데 걸으며, 전쟁의 승리 후에 자만하지 아니하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영광 돌리는 예배자로 끝까지 온전히 겸손한 삶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배는 드보라의 마음을 담대하게 하며 영적으로 준비시켰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붙들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눈의 초점을 흐리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드보라는 늘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였으며 예배는 드보라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미리암의 노래도, 이 드보라의 노래도, 결국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승리 와 전쟁을 체험하지 않았으면 이런 영광의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드보라의 승전가를 묵상하면서 우리 성도들에게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주시는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하기를 갈망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 하심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하나님이 주시는 전쟁의 이 놀라운 경험을 체험하는 것이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이렇게 하나님이 역사하신 승리의 경험을 내 삶의 현장에서 목도하고 체험하기 원합니다…기도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이런 하나님이 역사하신 승리의 경험들을 노래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우리가 말씀으로 고백하면서 주님 우리도 이런 동일한 은혜를 망각하지 않기 원합니다…기도하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선 드보라와 같이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전쟁 후에도,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하나님을 갈망하며 주님을 뒤따라 가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여기를 클릭하세요.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승리를 기억하고 망각하지 않으며 그 하나님의 승리를 후에도 계속 기억하며 현재형로 기억하기 위해 이것을 노래로 기록한 것이 드보라의 노래입니다. 드보라의 노래를 통하여 놀라운 승리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신 싸움임을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원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기손강가에서의 전쟁을 다시 한번 회상하며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내려 오셨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드보라와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 군대와 나가 싸우는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드보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서 싸운 전쟁도 아니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서 내려오셔서 친히 앞서 싸우신 전쟁이라는 겁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앞서 싸우심을 바라보며 의지할 때 승리한 영적 전쟁이 기손강가에서의 전투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 생활이란 상황과 환경에만 눈이 가 있지 않고 넓고 큰 영적 시야를 가지고 눈을 들어 나를 위해 내려오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고, 나보다 앞서 싸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며, 영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분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드보라의 노래는 기손강가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역사를 “힘있는 자를 밟으셨다…”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철 병거를 타고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의 밥이라 생각하며 달려오는 그 적군들을 하나님께서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법으로 역사하신 놀라운 기적을 노래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 주시고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드보라가 노래하고 있는 기손강가에서의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며,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코로나의 긴 광야를 묵상해보게 됩니다. 이 모든 각자의 삶에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면 버틸 수 없는 그 절박한 곳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하나님이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고백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노래가 될 줄 믿습니다. 또한 이 전쟁의 숨은 공신, 헤벨의 아내 야엘에 대해서도 노래합니다. 시스라는 적장의 그 군대 장관을 호위하는 척해서 데리고 와서 지극한 호의를 베풀며 무장해제 하게 한 후 그의 관자놀이에 막대기를 박음으로 전쟁을 마무리 했습니다.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라 노래하며 적진의 군대 장관을 죽임으로 전쟁을 마무리하게 되는 숨은 공로자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여인 야엘이 한 일이 한 일이 하나님 앞에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전쟁은 모두 남자들이 전담했었고, “여자들을 빠져….” 말하며 남자들이 앞서 싸우는 전쟁이 일반적이었는데, 드보라와 헤벨의 아내 야엘을 공로를 노래함으로,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질책하며, 동시에 의외의 사람들을 통해 놀랍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게 합니다. 드보라의 노래의 결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을 해가 힘있게 돋음같이 하시옵소서.”, 이 말씀 하나만 오늘 붙들고 마음에 새겨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 곁을 떠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코로나 광야 한복판에서 나의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는 믿음의 노래를 부르기 소망합니다. 주변 상황과 적들을 바라보며 두려워 벌벌 떠는 대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건지시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승리하게 하시는지를 목도하며 주님을 찬양하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로서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 이 말씀을 마음에 담고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아침마다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일어나게 도와주옵소서.주님을 사랑하며 예배하는 백성들이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쭉쭉 뻗어 일어나게 도와 주옵소서. 상황과 환경에 묶이지 아니하고 어두운 가운데 주저앉지 않고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성도들이 힘있게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힘있게 다시한번 승리하게 하시며 다시 일어나게 도와 주옵소서. 그것이 우리가 늘 마음에 새기며 할 고백임을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해가 힘있게 돋음 같이 일어서는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풍성히 경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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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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