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5장은 우리에게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육체의 소욕으로 맺는 15가지 육체의 일을 구체적으로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삶 대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갈 때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됨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가슴으로 뜨겁게 믿고 머리로 바로 알고 온몸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 결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건강하고도 건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마음이 나에게 채워지며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 성령의 열매 맺는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육체의 일은 15 가지였는데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 인내와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그런데 이 성령의 열매가 복수가 아닌 단수로 되어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복수가 아니라 단수라는 것은 아홉 가지의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아니라, 하나의 열매지만 아이스크림 맛이 다르듯 아홉 가지의 다른 맛과 향이라고 생각 하면 됩니다. 첫 세 가지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성령의 열매, 인내와 자비와 양선은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나오는 성령의 열매,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내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나오는 드러나는 성령의 열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은 처음 세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를 말씀의 은혜로 나눠 보기 원합니다.
첫번째로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고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견해가 있는데 오늘 말씀에 성령의 열매로서 사랑은 아가페 사랑, 즉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주셨던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 열매로 맺는 것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이고 일방적인 사랑이고 조건 없이 대가 없이 주는 사랑으로 맺는 열매이기에, 사랑의 열매는 오직 성령의 힘과 능력으로 맺게 되는 것이지, 내 힘과 능력으로는 절대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의 사랑받는 것을 항상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고 하는데 그런 인간이 아이를 낳게 되면 아이를 사랑할 때 부족하지만 부분적으로 자녀들에게 이 아가페 사랑을 부어주며 살아갑니다. 자녀들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0세에서 3세 사이 그때 모든 것을 부모들은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퍼부어주는 사랑을 쏟아 부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그게 바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 정의된 사랑은 뜨겁거나 마음이 흔들린다거나, 매력적이거나, 이런 게 아니라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는 것이 첫 번째 사랑의 정의인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기다려 주는 사랑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 아니라, 조건적이거나 주고 받는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부어주는 사랑입니다. 어떻게 보면 매력 없다 말할지 모르나 그런 조건 없는 사랑, 일방적이고 부어주는 사랑이 우리 인생을 바꾸게 되는 것이며 그 사랑을 먹어야만 우리는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사랑이 나를 놀랍게 변화시킨 사랑이고, 우리의 삶 속에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 때 그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 사랑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먼저 돌아가심으로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여전히 죄에 뒹굴고 있던 나, 사랑받을 가치나 이유가 하나도 없는 나에게 먼저 예수님이 죽으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확증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 일방적인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뒤집고 그 십자가 사랑이 바로 우리가 맺는 성령의 열매 첫 번째인 사랑의 열매입니다. 자격도 조건도 안되는 나를 일방적으로 조건없이 부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우리가 모두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사랑 가운데 거하며 살기에 그 성령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붙들고 살아가면서 우리 삶에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로서 우리가 사랑의 열매는 열매를 맺자는 것은 구호도 아니고 맺어야 된다는 당위성도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고 그 안에 거함으로 우리가 그 반응으로 결과로서 그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담아, 내 삶에 하늘의 양식으로 취하고 성령의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때, 내 삶 속에 사랑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희락의 열매는 기쁨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 하나님 가운데 거하면 우리의 삶에 기쁨이 흘러나오고 찾아오는 신비를 경험합니다. 이 기쁨은 세상과 환경이 주지 못하는 기쁨입니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될수록 점점 웃을 일이 별로 없어져서, 그 기쁨과 감탄을 찾기 위해 그렇게 여행도 다니고 특별한 데를 가보고 멀리까지 가서 한번 감탄사 내 보려고 그렇게 노력합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잠시 느끼는 어떤 행복한 감정을 넘어서 내가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감탄사가 나오는 기쁨입니다. 뻔한 인생, 메마른 인생, 딱딱한 인생에 성령의 소욕으로 살아갈 때 하늘의 기쁨이 임하게 되며, 그 끝에 희락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기 좋으셨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보기 좋다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토브’인데, 이건 그냥 좋다 정도가 아니라 요즘 말로 하면 “따봉”입니다. 정말 대단해, 정말 멋지다…라는 감탄사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을 때 내셨던 기쁨이고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의 열매로 맺게 되는 희락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표적의 첫 번째가 혼인 잔치였던 것을 기억해보면 신앙생활은 본질적으로 기쁨이 넘치는 잔치라는 겁니다. 일주일 내내 파티가 열릴 정도로 기쁜 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감탄사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면 묵상할 수록,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며 묵상할수록 내 인생에 감탄사인 따봉! 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깨달으면 깨닫을수록 우리는 이 기쁨과 희락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희락의 열매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맺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 희락은 하늘의 기뻐함이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는 기뻐함 이었습니다. 환경이 바뀌고 살만해져서 기뻐하는게 아니라, 감옥 안에 있어도 주 안에서 그냥 기뻐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모든 상황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기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상황 때문에 기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상황 안에서 기뻐하는 겁니다. 위에 있을 때나 아래에 있을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in all circumstances 모든 상황 안에서 우리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눈물 나고 가슴 치고 힘든 감옥에 있을 지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 안에서 더 큰 예수님의 기쁨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기적을 누리는 겁니다. 억지로 하는 기쁨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쁨이 흘러나오는 기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시며 그렇게 따봉을 외치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그렇게 기뻤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모든 상황 가운데 기뻐하는 그 놀라운 역사인 희락의 열매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맺으며 살아가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뻔하고 딱딱하고 메마른 그런 일상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속성인이 기뻐하심 희락의 열매, 감탄사가 나오는 기쁨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사모하는 겁니다. 세 번째 화평의 열매는 바로 평화의 열매입니다. 화평이라는 말은 평화라는 말보다는 좀 더 관계 중심적인 언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평화라는 것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관계의 평화로, 특별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통해 흘러 나오는 모든 관계의 축복을 화평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평이란 것 단순히 문제가 없어지고 전쟁이 없어지는 absence of problems이 아니라, 그 문제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게, presence of Jesus in the problem이 화평인 겁니다. 내가 직면한 어려움과 문제 한복판에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바로 샬롬, 화평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몸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우리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신 그 놀라운 역사가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화평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화평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부어지고 흘러나오는 화평이고, 상황과 환경을 넘어서는 화평이고,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화평인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바른 관계를 통하여 예수님의 평안을 누리게 되며 그 평안이 나를 지배하며 흘러 넘쳐 그 평안이 삶의 밖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평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 가운데에서만 맺어지며, 성령의 공급하심을 통해서만 맺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맺든 성령의 열매를 맺든 둘 중에 하나를 맺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의 소욕을 따라 우리가 살아가면 그 인생의 결과물로 나오는 것이 성령의 열매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나무에 꼭 붙어 하늘의 공급을 받아 살아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생 되기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통해 사랑의 열매 희락의 열매 화평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기를 사모하십시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며 성령 하나님을 통해 공급받으며 주님이 부어 주시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이 내 삶에 깊이 자리잡으며, 뿌리내리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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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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