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일은 15가지이고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가 오늘 말씀에 증언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면 필연적으로 육체 일을 만들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배타적으로, 이거 아니면 저거 밖에 되지 않습니다. 마치 자동차 악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을 수 없듯이 내 인생에 성령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성령의 소욕 가운데 살아가게 되면, 반드시 육체의 소욕은 비활성화되고 주도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가지이지만 아홉가지 다른 열매가 아닌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본질적으로 하나인데 그 안에 아홉 가지의 다른 맛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인내와 자비와 양선의 열매를 함께 말씀의 은혜로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 인내, 오래참음의 열매입니다. 참을 인…이라는 단어는 제가 군생활 할 때 연병장 큰 돌에 새겨진 한문이었습니다. 칼 도에 마음 심…이 합쳐진 단어가 참을 인…아니겠습니까? 참는다는 건 내 마음에 칼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칼을 품고 참으니 그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자기 마음에 칼을 품고 있으니 피가 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이 너무 힘들어 그것이 결국 병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속에 칼을 품고 참다가 불이 너무 많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병이 되는 겁니다. 이처럼 인내, 오래참음…이라고 하면 좋지 않은 것이라는 부정적인 정서가 강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수동적인 정서, 되도록 피해야 된다는 생각이 많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가 바로 인내의 열매 오래 참음의 열매라는 것이죠. 왜 참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닌데 잘못 참으면 화병도 생기는데 참다가 마음에 칼을 품는 것처럼 아프고 힘이 드는데, 왜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가 오래 참음의 열매일까요? 사실 성도로서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구하고 사모하지만, 사랑의 열매나 희락과 화평의 열매를 맺도록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인내의 열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성령의 열매로서 인내의 열매를 매우 강조한다는 것이죠. 성령의 열매로서 인내라는 것은 내가 주먹 쥐고 일방적으로 참고 견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소망을 붙들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오래 참음입니다. 내가 마음에 칼을 품고 억지로 마지 못해 기다리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소망을 붙들고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성령의 열매인 인내입니다. 그래서 소극적인 기다림, 마지 못해 견디는 기다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견디며 능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성령의 열매인 인내이기에 오직 내 힘이 아니라 하늘의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맺어지는 겁니다. 구약 성경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자주 사용하셨던 훈련 방법이 바로 인내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한 훈련이었습니다. 나의 때와 방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신뢰하는 기다림의 훈련이었습니다. 이 오래참음의 훈련에 물론 모든 사람이 패스한 건 아니지만 예외없이 하나님은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인내와 오래참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기다리지 못해서 그들은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그랬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며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훈련을 계속 시키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 인내와 오래 참음의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인내와 오래 참으심이 하나님의 사랑이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전까지 그동안 오래 기다리셨고, 소돔과 고모라가 망하기 전까지 길이 참으셨고,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까지 계속 회개를 촉구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렇게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은 여전히 재림하시기 전 길이 오래 참고 계신 겁니다.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끝까지 기다리시며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기 원하시는 주님의 그 오래 참으심이 결국 저와 여러분들을 이렇게 살린 사랑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며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인내의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막연하게 오래 참는 게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이기며 모든 것을 견디는 놀라운 인내의 열매를 맺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그 오래 참으심의 사랑이 내 인생 가운데 부어져 있다는 것을 믿으며 하늘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하는 인내의 열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기를 사모하며 나아가는 겁니다. 내가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환경과 상황이 있을 때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며 나를 놓지 않으셨던 주님의 오래 참으신 사랑을 기억하고 붙들며 놀라운 인내의 열매를 맺기 소망합니다. 두 번째는 자비의 열매란 친절하고 온유함의 열매입니다. 식당에 가도 맛있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식당도 동시에 그 식당이 친절해야 자주 가게 됩니다.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불친절한 데는 한 번 가지만 그 다음에는 잘 안 가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음식과 친절한 서비스가 항상 콤비네이션이 돼서 유명한 식당이 되는 겁니다. 자비의 성경적 정의는 상대방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게끔 쓸모 있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비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온유하고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길로 인도하고 품어 주는 것입니다. 특별히 자비의 열매는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법대로 하고 정의대로 했으면 여기 살아남 자가 아무도 없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자비하심의 마음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용서하시고 건져 주셔서 지금까지 잘 살게 된 겁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예수님이 나를 향해 바라보시는 마음이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기에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불쌍한 마음인 자비함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친절하고 자비한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불신자들에게 다른 삶의 향기와 열매를 보여주었습니다. 교회를 나오지 않아도 성도들의 삶이 그렇게 친절하고 자비롭고 온유함이 넘쳐났다는 것을 알있기에 예수쟁이라고 놀림을 당했을 지언정 그들의 구별되고 다른 삶은 불신자들과 그 지역을 놀랍게 변화시켰습니다. 점점 세상이 무자비해지고, 무관용의 시대가 되어 가는 이 때에 예수님이 부어 주신 불쌍히 여기는 마음, 자비의 열매를 풍성이 맺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양선의 열매인데, 양선이라 말은 요즘에 잘 쓰지 않는 단어입니다. 어질 양, 착할 선…이 양선인데 어질고 착한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God is good, all the time…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에게 언제나 좋다는 것을 고백할 때 바로 이 양선이란 말입니다. 좋다는 것이 내 생각에 좋다는 게 아니라 말씀에 비추어서 좋고 하나님 뜻에 좋은 것이 양선입니다. 내 상황이 언제나 좋은 일로 계속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나에게 하나님의 빛이 비추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하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추면 두 가지가 발생하는데, 내가 어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어둠이 빛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게 됩니다.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가까이 하면 가까이 할수록 내가 어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나의 자격 없음과 소망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 이게 좋은 것, 양선의 열매입니다. 또한 나에 대한 철저한 자격 없음, 소망 없음을 고백할 때 주님으로 말미암아 어둠이 물러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오실 때 나는 내가 어둠이라는 것을 깨닫고, 소망 없고 자격 없는 나를 사랑하신 주님만 바라보고 붙들 때 내 삶에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양선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내가 전에 어둠이었다 것을 철저히 고백하는 겁니다. 동시에 지금은 예수님과 함께이 시간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었음을 철저히 고백하는 겁니다. 인내의 열매도, 자비의 열매도 양선의 열매도 결국 나는 이 세상에서 발광체가 아니라 반사체임을 고백하며 사는 삶입니다. 내 스스로 빛이 없고 선이 없음을 철저히 고백할 때, 발광체인 예수님의 빛을 받아 반사체로 빛을 내는 존재로 살아가는 겁니다. 내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고 언제나 빛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빛을 담아 반사하는 삶, 그 삶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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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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