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소욕대로 사는 삶과 육체의 소욕대로 사는 삶을 대조하는 말씀 가운데, 육체의 소욕으로 말미암아 나오는 15가지 육체의 일에 대한 마지막 시간입니다. 육체의 일은 애매 모호하지 않고 분명하기에 우리가 분별할 수 있고 이것을 경계할 수 있음을 사도 바울은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애매하지 않고 분명한 육체의 일 15가지중 마지막은 바로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입니다. 당 짓는 것과 분열하는 것과 이단은 하나의 큰 그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당 짓는 것과 분열하는 것의 정의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당을 짓는 것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하는 대신, 끼리끼리 모이는 것이고, 그 결과 나누어 지고 찢어지는 것이 분열입니다. 그러니까 공동체 안에서 당 짓는 것과 분열하는 것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하나되는 것보다 나눠지고 소위 말하는 끼리끼리의 문화를 두려고 합니다. 그렇게 나눠지게 되면 주님의 몸된 공동체는 분열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렇게 당 짓는 것과 분열을 중요한 육체의 일로 언급한 이유는 완벽한 모델이라고 여겨지는 초대교회에서 조차도 이 부분이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게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다른 서신인 고린도 전서를 보게 되면 고린도 교회의 문제이기도 했음을 발견합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도 계파 별로 교회 안에 나눠지는 당 짓는 일이 큰 문제였습니다. 게바 파가 있었고 아볼로 파가 있었고, 사도바울 파도, 심지어 예수 파도 있을 정도로 당 짓는 것과 분열함이 큰 도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모인 가장 완벽한 공동체라고 여겨지는 초대 교회 조차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력 경고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일로서 이단의 문제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유사 복음 다른 복음을 가지고 성도들을 미혹하며 복음을 왜곡시키고 변질시키는 것을 이단은 그 뿌리가 당을 지어 분열하게 하는 악한 일이라는 겁니다. 이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다른 게 아니라 얼핏 봐서는 비슷한데 끝이 다른 게 이단입니다. 유사품, 소위 말하는 가짜는 얼핏 보면 비슷한데 자세히 보면 틀린 겁니다. 그래서 유사품을 주의해야 되는데 유사 복음에 주의하지 않고 빠져 큰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가 바로 갈라디아 교회였습니다. 순전한 복음에 물타기 해서 만드는 유사품인 이단의 본질은 결국 당 짓는 것과 분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인간의 죄성을 활성화시켜서 우리가 본능과 본성대로 살기를 원하는데 그게 바로 육체의 일인 당 짓는 일과 분열입니다. 당 짓고 분열하기 위해서는 할 게 별로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이 이끄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자연적으로 나눠지고 분열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당을 짓고 분열하기 때문에 그 공동체가 힘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을 사단은 너무나 잘 아는 겁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면 사단 마귀가 꼼짝을 못하는데, 당 짓고 분열하게 하는 사단의 미혹 너무 쉽게 길들여지고 너무 쉽게 활성화되어 살아갑니다. 당을 짓고 분열하는 것도 이단의 문제도 인간의 욕심과 인간의 죄 된 본성이 활성화된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다름을 넘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는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영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육체의 일은 투기인데, 영어로는 envy로 이것은 그냥 부러워하는 것을 넘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악으로 행동하게 하는 투기입니다. 그래서 질투와 시기가 감정에만 머무는 미워하는 감정이라면 투기는 그 악한 감정이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질투하고 시기하는 감정을 넘어 실제로 악한 일을 행하고 도모하는 게 투기이기에 매우 심각한 육체의 일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투기의 대표적인 예는 야곱의 아내들이었던 레아와 라헬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서로가 자매임에도 불구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을 넘어 자녀를 낳는 일로 주도권을 가지려고 악한 일들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없었던 라헬은 언니 레아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을 넘어 자기 몸종을 통해서라도 자녀를 얻겠다고 무리수를 두며 일이 들불같이 커졌습니다. 또 레아도 질 세라 자기의 몸종을 통해서 자녀를 계속해서 태어나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을 통해 교만해지고 열등감을 가지고 그걸 가지고 시기와 질투를 하게 되는데 그것을 행동으로 넘어가는 투기는 반드시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지 못하고 서로를 헐뜯고 분열하는 것도, 투기에 빠져 미움에 사로잡혀 행동하는 삶도 성령 없는 자들의 특징이며 육체의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사단의 미혹에 빠지는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 이 육체의 일을 단절하고 잘라내며 벗어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술취함과 방탕함도 심각한 육체의 일로 지적합니다. 술취함이라는 술에 취해 술이 나를 먹는 상태이고, 방탕함이란 사전적 의미가 내가 하나님을 향해 바로 걸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술에 취한 사람은 두 손을 들고 길을 바로 걸어가지 못하죠. 본인은 바로 간다고 주장하는데 비틀비틀 걸어가는 게 술 취함의 특징입니다. 마찬가지로 방탕함은 절제하지 못해서 옳지 않은 낭비로 하나님에게 바로 걸어가지 못하는 겁니다. 본인은 바로 간다고 주장하는데 흔들흔들 걸리며 넘어지는 게 방탕함입니다. 그러니까 술취함도 방탕함도 본질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가지고 주님께 똑바로 걸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술취함과 방탕함은 서로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걸 통해 그 당시 갈라디아 지역에서는 술취함과 방탕함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시대였음을 반증합니다. 술취함과 방탕함을 유흥이나 여흥 정도로 관대하게 여기고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 그래서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시대에 이 일을 육체의 일로 경계하며 그것에 대한 분명한 경고를 하는 겁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도 술취함과 방탕함에 대해 관대하고 심지어 법적 문제가 발생하는 범죄에도 술기운에 했다고 하거나, 술에 취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런 부분을 참작할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하여, 저와 여러분들을 향하여 술취함과 방탕함이 이만큼 심각한 영적 문제라는 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술취함과 방탕함은 하나님 앞에 똑바로 걸어가지 못하게 만들고, 말씀으로 똑바로 걸어가지 못하게 만들어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이 세상에 취하며 살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고 낭비하고 탕진하는 인생으로 우리를 이끌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술취함과 방탕함 그리고 그와 같은 것들… 시대가 점점 악해져서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만 당연히 여기에 포함되어 가는 여러 일들이 계속 등장하는 겁니다. 대표적인 게 예를 들면 도박이나 마약, 혹은 인터넷 보이스 피싱, 사이버 폭력 같은 문제들입니다. 성경엔 도박을 하라 하지 말라, 마약을 하지 말라, 인터넷 보이스 피싱 하지 말라는 경고가 없는 게 그 당시에는 유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이런 것들이 나올 수 있음을 성경은 미리 알고 사전에 이렇게 울타리를 쳐 주신 겁니다. 우리 스스로 분별할 수 있는 분명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육체의 일들이 성경에 언급되지 않지만 계속해서 등장하게 될 거라는 것이죠 그게 바로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것을 이미 다 예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것을 우리에게 알게 하기 원하시는 것이죠. 이렇게 성경이 열거하는 육체의 일들 15 가지는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며 우리의 삶과 매우 가까이에 있는 심각한 것들입니다. 이런 육체의 일에 우리가 빠져 살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심각한 결과가 찾아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주님의 몸 된 교회는 가만히 있으면 나눠지고 깨지고 분열하는 일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당 짓고 분열하는 것, 투기하고 술취하고 방탕한 것이 육체의 일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아 우리의 본성이 성령의 소욕에 정확하게 통제 받고 지배 받아야만 합니다.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하며 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육체의 열매인지 성령의 열매인지 육체의 일인지 성령의 일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하며 육체의 일을 멀리하고 벗어나며 주님 앞에 뚜벅뚜벅 바로 걸어가는 인생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똑바로 걸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잘라내며 오직 순전 하게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12월 2024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