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부터 7장까지 계속해서 성전 건축의 과정이 증언되며 모든 건물이 완성되었습니다. 성전 건물이 화려하게 올라갔고 성전 내부가 모두 금으로 장식되었으며 내부 기구들이 다 채워졌습니다. 겉보기에 모든 것이 다 완성되었기에 이제는 성전이 완성되어 봉헌만 하면 될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성전 건축은 겉에 보이는 건물이 다 완성됐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성전 안에 내부를 장식하고 성전 안에 기구들을 다 준비했다고 완성되는게 아니라는 것이죠. 성전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들어가야 완성된다는 겁니다. 이게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자들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을 집중하는 자들의 결정적인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성된 성전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들어와 그 가운데 한복판에, 중심에 딱 머물게 되는 것이 바로 성전 건축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됨이란 눈에 보이는 현실에 매몰되어 살아가지 않고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기에 성전 건축의 완성은 하나님의 언약궤와 말씀이 그 안에 들어오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내 인생의 집도 모든 건물이 다 지어졌어도 하나님 말씀이 그 안에 거하셨을 때 최종 완성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성경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보이는 성전이 완성되기 전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 먼저 완성되어야 되고 보이지 않는 성전을 기초로 하려 보이는 성전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합니다. 인간은 늘 보이는 현실과 보이는 껍데기에 매몰되기 쉽기에 늘 보이지 않는 것에 절대 가치를 두고 기준을 두는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성전을 절대 가치를 두게 되면 반드시 왜곡과 변질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성전이 있고 우리 교회에도 보이지 않는 성전이 있습니다. 우리가 새벽 기도를 통하여 말씀의 제단을 쌓을 때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가 뭐냐면 내 마음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시며 우리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셔서 성도를 성도 되게,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야 사는 존재임을 알고,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야 승리하는 인생이 되는 것을 매일 깨달으며 조율되며 살아가는 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매일 드리는 새벽기도를 통해 나의 보이지 않는 성전이 회복되며 우리 교회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 회복된다는이 본질을 붙들고 나의 인생이 든든히 세워지며 나의 내면이 단단해지며 우리 교회의 기초가 견고함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전 중심에 들어와야 모든 성전 건축이 완성되기에 성전 안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전 안으로 들어올 때 그 운반하는 과정을 주목해야 하는데 세 번이나 언약궤를 메어오는 것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전으로 들어가는데 제사장들이 메고 올라갔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는 예전 다윗 왕 때 언약궤를 메고 오지 않고 수레로 편하게 싣고 오다가 낭패를 당한 과거 웃사의 사건을 다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법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으로 쉽고 편하게 수레에 싣고 오다 큰 어려움을 당한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메고 가는 것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언약궤를 메고 성전에 들어온다는 것은 인간적인 방법, 쉽고 편한 방법을 내려놓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온전히 순종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하며 기꺼이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이 순종을 통하여 성전 중심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가고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 말씀이 들어가는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늘 깨닫게 됩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는 보통 3가지를 통하여 쉽게 드러나게 됩니다. 첫 번째, 내 인생이 불편할 때 내 마음의 중심에 뭐가 있는지 드러나게 됩니다. 두번째는 내 인생이 압박이 있어서 어려울 때 내 마음의 중심이 무엇인가가 확 올라오게 됩니다. 세번째는 큰일이 아닌데도 갑자기 내 감정이 건드려져서 감정이 확 올라올 때도 내 마음의 중심에 뭐가 있는지가 확 드러나게 되는 것이죠. 특히 오늘 말씀은 언약궤 안에는 말씀을 새긴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 언약궤 중심을 보니 하나님이 친히 주신 말씀 외에는 없다는 것이지요. 내 마음의 중심 한 복판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내 마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 외에 없는 인생 그게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영광스러운 인생 아니겠습니까? 내 마음의 중심을 열어봤는데 말씀 위에 서서 하나님만이 나에게 구원되신다는 고백밖에 남아 있지 않는 인생, 그것만큼 복된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의 인생을 돌아보았는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왔는데 모든 것이 은혜라는 고백만 남는 인생이 얼마나 복된 인생이겠습니까? 우리 교회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교회가 될 때 교회가 진정한 교회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과 임재가 가득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성전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되며 나의 인생에 기초 또한 하나님 말씀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 한복판에, 우리 성전 한복판에 우리 성도들 삶 한 복판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가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릴 때 여호와의 전에 믿음으로 임재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하늘의 축복을 받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내 마음의 중심에 그리고 우리 교회의 중심에 이 시간 거할 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가득한 이런 놀라운 역사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생활하며 우리가 바라고 사모하는 것은 주님의 임재와 주님의 영광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시간 내 마음에 한복판에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궤가 들어오는 그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우리 교회 한복판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며 내 인생 한 복판에 언약궤가 머무는 인생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마음 중심에, 마음 한복판에 거하실 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나올 때 내 마음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들어가는 역사 우리 교회 한복판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 임재와 영광을 맛보며 복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왕상 7장은 계속해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 건축에 대해 자세히 증언하는데, 5-7장 사이에 의도적으로 흐름이 깨지듯이 딱 중간에 솔로몬이 왕궁을 건축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을 통해 말씀이 증언하는 핵심은 솔로몬이 짓는 성전 건축이 겉과 껍데기는 화려하고 대단해 보였는데, 속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부실 공사임을, 속이 채워질 것으로 채워지지 않고 다른 것으로 채워져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솔로몬기 건축한 성전은 겉으로 화려하게 지어졌고 겉으로는 완벽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껍데기기 아니라 그 성전 안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정말 성전을 성전되게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과 순종, 기도와 말씀 대신 솔로몬은 성전 안을 금으로 가득 채워 다 치장하고 발랐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성전보다 4배나 큰 왕궁을 바로 옆에 지으면서 그 안에 수많은 이방 종교들과 우상의 방들을 만들어 놓으면서 여호와만 예배하고 섬기는 신앙에서 이탈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와를 위해 세워지는 성전이 하나님의 매뉴얼대로 지어지지 않았기에, 속이 채워질 것으로 채워지지 않았기에 결국 솔로몬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왜곡과 타락으로 가게 될 것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그렇게 겉모습은 그렇게 화려했던 성전 안에 진짜 채워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강조하는데, 그게 바로 성전 안에서 드리는 제사와 정결을 위한 도구들입니다. 어떻게 보면 말씀이 좀 따분하다 생각할 정도로 굉장히 자세하게 성전 안에 채우고 있는 제사와 정결을 위한 기구들과 도구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첫번째는 바다, 두번째는 물두멍, 세번째는 물두멍 받침 수레입니다. 왜 이것을 성경이 그렇게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느냐 하면 성전의 본질적인 기능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강조하기 원해서 그러신 겁니다. 성전의 본질적 기능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겁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드리기 위해 성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성전 안을 금으로 모두 칠했어도 이 본질이 헷갈리거나 흔들리면 결국 성전이 성전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제사의 본질은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기억하고 우리 죄를 깨끗이 씻는 것이죠. 그래서 성전에서 백성들이 해야 될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면 죄를 기억하고 씻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죄 씻음을 경험하는 것이 성전에서 제일 중요한 기능이기에 그렇게 이 세 가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23-26절까지 등장하는 바다는 성전 안에 물을 너무 많이 쓰니까 필요한 물탱크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을 가득 담아 놓는 저장고로서의 바다는 제사장이 손발을 씻는 용도이자, 물두멍에 물을 공급하는 용도로 쓰여졌습니다. 성전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내가 그 철저하게 씻어야만 된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두 번째 등장하는 것은 받침 수레로 물두멍이 너무 크니까 그 물두멍을 운반하기 위해 수레 바퀴를 만든 것입니다. 놋으로 만들었고 받침수레는 열 개를 만들었으며, 그 모양과 구조까지 정말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면 성전에 가장 중요한 기능은 제물을 깨끗이 씻어야 되며 제사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깨끗이 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신약의 관점으로 보게 되면 구약의 모든 제사와 제물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가리키는 표지판입니다. 이 바다와 받침 수레, 받침수레 위에 있는 물두멍이 다 상징하는 건 뭐냐면 우리는 씻음을 받아야 되는 죄인인데 우리는 물로 씻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어야 되는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성전 안을 채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를 위해 물을 잘 준비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나 죄인이고 얼마나 죄의 씻음을 늘 받아야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장소가 되는 것이 성전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예배와 제사라는 것입니다. 성전의 본질은 화려하게 잘 짓고 내부를 금으로 치장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우리가 씻음을 경험하는 은혜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 마음 다해 예배와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깨닫고 죄 씻음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예요.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어떻게 하면 더 화려하게 지을까를 고민하고, 어떻게 성전 내부를 금으로 잘 치장할까에 집중하느라 본질인 내면과 속이 텅빈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은 성전 되어감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성전 겉과 껍데기는 화려하고 대단하고 뻔지르르 한데 그 속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반석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차이를 여러분들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차이가 없이 두 집이 똑같은데 창수가 나고 비바람이 불고 어려움이 생길 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고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끝까지 간다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한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는 대신 사람들을 의지했고 군사력 외교력 정치력 인간적인 힘을 다 섞어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 앞의 두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나의 힘이라는 철저한 고백 대신, 솔로몬은 하나님 대신 자신이 스스로 세우려고 하고, 하나님이 나의 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주변 강대국들이 나의 힘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붙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보다 4배나 큰 왕궁을 지었고 그 왕궁에는 정략 결혼을 통하여 수많은 이방 종교들과 우상들을 가득 들어와 채워진, 그 안에 집어넣고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성전이 되고 있음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왕궁을 바라보며 나는 과연 무엇을 지금 세우고 있고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을이 시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늘 눈에 보이는 껍데기와 겉을 치중하고 붙드는데 익숙하고 겉모습과 껍데기의 화려함을 붙들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중심을 감찰하고 있기 때문에 성전 겉과 껍데기가 그렇게 화려하고 그 내부를 금으로 치장했어도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것은 그 성전 안에 채워져 있는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정말 나에게 생명의 말씀이며 내 마음에 빛을 비추며 믿음을 세우는 복이 됨을 정말 믿으면 내가 겉모습과 껍데기를 치중하고 집중하는 대신 본질인 나의 속사람을 깨우고 속사람을 말씀과 기도로 채우며 내 속사람을 든든히 세우는데 집중하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의 새기며 늘 붙들어야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존재라는 것, 나는 하나님 앞에 철저한 죄인이며 그래서 내가 붙들 것은 주님의 은혜밖에 없음을 늘 붙들며 그 은혜를 내 마음에 채우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장 말씀을 통하여 성전이 건축되기 위한 준비 과정을, 6장을 통하여 성전이 건축되는 과정을 보았고 7장 뒷부분에 보게 되면 성전 내부의 여러 물품들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말씀인 오늘 말씀은 계속 성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될 것 같은데 성전이 아닌 솔로몬이 왕궁을 짓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나서 솔로몬이 왕궁 건축하는 이야기를 이 성전 건축 한 가운데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죠.성전 완공은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성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라면 왕궁은 임금 자신을 위한 것이고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철저히 의지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세우시는 과정이라면 왕궁은 인간의 힘과 능력을 드러내며 인간이 스스로 세우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두 가지가 첨예하게 대조되고 대립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전은 7년 동안 지어졌는데 솔로몬은 자신의 왕궁을 13년 동안 지었습니다. 기간이 거의 두배 차이가 아니까 당연히 어디가 더 크고 화려했겠습니까? 성전이 아니라 자기 왕궁이 훨씬 컸고 훨씬 화려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크기가 차이가 나는가 하면 성경은 정확하게 그 치수를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6장 말씀을 통해 증언되는데 성전은 가로, 세로,높이가 50cm되는 규빗으로 60X20X30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증언하는 솔로몬 왕궁의 크기는 100X50X30입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크기가 몇 배가 차이가 나는 거냐 하면 곱해보면 성전과 왕궁은 거의 네 배 크기의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보다 4배가 큰 자기만을 위한 왕궁을 지금 솔로몬은 짓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 보다 4배나 큰 왕궁을 짓고 있는 솔로몬을 통해 마음 속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마음이 쏠리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을 의지하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이 이렇게 크고 화려한 왕궁을 짓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건 문제의 씨앗을 잉태하는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사울왕이 하나님이 높여주셔서 왕이 되고 난후 자신의 이름을 높이며 자신을 위하여 기념비를 만들며 무너지는 길로 간 모습과 흡사한 것입니다. 말씀과 언약의 성취인 성전보다, 4배나 크게 성전 옆에 솔로몬 자신의 왕궁을 짓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영적 문제인지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왜곡되고 변질되어 그렇게 망하게 되는 그 씨앗이 누구를 통해 뿌려지고 있는 거냐 하면 솔로몬 왕을 통해 뿌려주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심각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문제는 단순히 솔로몬의 왕궁이 성전보다 4배나 크고 공사 기간이 2배나 들었다는 거로 문제가 끝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뭐냐면 왜 솔로몬의 그렇게 왕궁을 크고 화려하게, 성전보다 4배나 크게 지었는가에 대한 영적 이유입니다. 왜 솔로몬의 왕궁이 하나님의 성전보다 4배나 크게 지을 수밖에 없었는가하면 바로 정략 결혼한 이집트 바로의 딸을 위해서라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대신 애굽의 힘과 정치력을 의지하여 나라를 잘 해보겠다고 정략결혼을 해서 데려온 바로 왕의 딸을 위해 따로 집을 지어주는게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바로왕의 딸만 들어오는게 아니라 애굽 문화와 함께 애굽의 이방 종교가 그대로 왕궁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바로왕의 딸과만 결혼한게 아니라 부인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정략 결혼으로 맺어진 수많은 부인들을 맞았는데 그들이 다 어디 머물겠습니까? 다 왕궁 안에 방 하나 집 하나 차지하고 앉아 왕궁의 이 공간, 저 공간이 수많은 여인들과 함께 그 여인들이 가져오는 문화와 이방 종교들로 다 채워지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왕궁은 성전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데려와 결혼한 수많은 여인들, 그들의 거처가 넓어지는 거예요. 솔로몬의 왕궁이 우상박람회장 같이 수많은 우상들과 이방 종교의 집합체가 되는 것입니다. 네 배나 큰 솔로몬 왕궁이 바로 성전 옆에 있는데 이 왕궁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와 제사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렇기에 성전 코 앞에서 성전보다 4배나 큰 왕궁을 짓고 자기를 높이고 드러내는 것도 모자라 그 곳을 수많은 우상들과 이방 종교들로 채우고 있는 솔로몬, 이게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며 심각한 영적 문제로 지적하는 것입니다. 성전 앞에 세워진 두 기둥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왼쪽은 야긴이고 오른쪽은 보아스입니다. 야긴은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의미이고, 보아스는 하나님에게 능력이 있다는 의미에요. 솔로몬은 말로는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능력 있다고 고백하며 기둥을 딱 세웠는데 실제로 솔로몬은 지금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겁니까? 내가 스스로 세우고 내가 능력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왕궁을 성전보다4배나 크게 지은 이유입니다. 성전 안을 말씀과 기도로 채우는 대신 금으로 가득 채운 이유입니다. 왕궁 안을 수많은 우상들과 이방종교들로 채워 넣은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으로 혼탁하게 만들고 타락과 부패와 무너지게 만드는 씨앗을 솔로몬이 지금 심고 있다는 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이 문제룰 실랄하게 지적하기 위해 솔로몬의 건축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7장에 자기 성전 짓는 이야기를 넣으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순전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에게 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내 주변에 영적 환경을 늘 민감하게 체크하기 원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동일하게 이런 문제로 자빠지고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밖에만 나가게 되면4배가 아니라 10배20배 크고 화려한 수많은 이방 종교들과 우상들로 가득한 이 세상을 가까이에 두고 그 문화를 일상으로 호흡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영적 생활에 문제가 하나도 없고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경각심을 가지고 심각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내가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붙들고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영적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내 인생은 내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고, 내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선명히 고백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년 동안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 건축의 이야기가 열왕기상 6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다고 하면 짧고,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일 수도 있는 7년간 아버지 다윗이 그렇게 원했고 다윗이 그렇게 준비했던 성전 건축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증언하면서 모든 것들이 말씀과 언약이 성취되는 열매로 이루어지고 있음를 강조합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성전 건축이 이어지는 이야기로, 특별히 성전에 외부가 다 만들어지고 성전의 안쪽 내부를 장식하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무슨 나무들을 썼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내부 장식을 아주 디테일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전 내부를 그렇게 화려하게 최고급 자재를 사용해서 매우 잘 장식했다는 것을 증언하는 말씀은 우리가 그냥 휙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인데요. 이 부분을 열왕기상에서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우리에게 주고 있음을 발견하며 말씀을 좀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성전에 외부를 화려하게 짓고, 성전 내부를 채우고 장식하는 수많은 과정들을 통해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솔로몬의 성전이 자꾸 보이는 성전 장식에 목숨걸며 껍데기인 성전 자체를 절대화 시키는 왜곡과 변질로 나아가고 있음을 성경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증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성전을 먼저 건축하는 것이며 보이지 않는 성전을 절대 가치로 두면서 그 위에 상대적인 가치인 보이는 성전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이나 내부 장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말씀과 율법을 순종하며 세우는 보이지 않는 성전입니다. 성전 안에는 먼저 보이지 않는 성전의 핵심인 말씀과 기도로 채우고 그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채워야 되는데, 그걸 중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성전 내부 장식에 대한 이야기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어디 한 군데 한 군데 빈틈없이 모두 최고급의 자재들과 백향목을 사용했고, 모든 부분을 금으로 입혔다는 것입니다. 성전 내부 장식에 거의 모든 부분을 금으로 입혔습니다. 온 성전을 근무로 입히기를 마쳤고 내소에 속한 제단 전부를 금으로 입혔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전의 모든 것을 최고급의 자제를 쓰고 금으로 모두 바르고 채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금으로 입힌 거 화려하고 좋죠. 모든 것을 금으로 입혔으니까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솔로몬의 성전 내부 장식은 성전 건축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가 되며 껍데기를 본질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채우고 순종으로 나아가는 이 모든 것들은 상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돼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뭐예요? 최고급의 백향목과 모든 것을 금으로 다 입히는 내부장식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내부를 성전 안을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말씀, 기도와 헌신으로 채우는 대신, 보이는 최고급 자재들과 금들도 다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 건축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성전 건축 자체가 하나님의 순종하는 백성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닌데 건물을 세우고 만들고 그 내부를 금으로 다 장식하고 금으로 도배하는 것을 절대 가치로 두고 우리는 대단한 것을 했고 이루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가치는 성전이 금으로 채워지고 금장식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는데, 말씀과 기도는 채워지지 않고 등한시되는 기초가 빈약한 성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에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니까 보이는 성전이 세워지고 나서 솔로몬 시대는 내리막길을 오히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인생집이 지어지고 있는데, 나의 인생을 무엇으로 장식하고 무엇으로 채우기를 원합니까? 내 인생집이 온통 금으로 최고급의 자재로 채우고 세우는 것도 귀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화려한 나의 집에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으면 결국 다 무너질 모래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이 보이지 않는 성전을 절대적 가치로 두며 내 마음의 성전을 말씀과 기도로 채우고 있는가? 내 마음을 말씀과 기도로 채우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두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나는 최고급 자재와 금을 가득 채우는 것을 절대적 가치로 두며, 눈에 보이는 성전과 껍데기를 절대적 가치로 두며 보이는 것을 일 순위로 두며 결국 왜곡과 변질로 무너지는가? 성전 내부에서 제일 많이 들려야 하는 소리가 찬송 소리와 기도소리가 되어야지, 찬송 소리와 기도소리 대신 사람들의 갈등하고 싸우고 부딪히는 소리, 먼지나는 소음들이 가득 들린다면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금으로 가득한 내부 장식보다 더 중요한 건 그곳에 분명하게 임재하고 계실 하나님입니다. 성전 안에 내부장식이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도, 아무리 금으로 가득 채워도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쓸데없는 일입니다. 금으로 가득 채운 성전 장식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말씀과 기도, 말씀에 대한 순종과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내 인생도 내 가정도 내 사업장도 내가 섬기고 속한 교회도 든든히 세워져야 되는데 그 든든히 세워지고 지켜주는 것을 본질은 안을 무엇으로 채우는가 입니다. 내 인생도 우리 교회도 안을 말씀과 기도로 채워야 든든히 세워지는 겁니다. 내부가 말씀과 기도로, 순종으로 채워져야 그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이 뻗어 나가게 되는 것이지 이 영적 질서가 바뀌고 우선순위가 뒤바뀌면 그렇게 세워진 성전은 결국 왜곡과 변질로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 인생의 속을 채우는 것도 가정의 내부를 채우는 것도 우리 교회 내부를 채우는 것도 넘버원은 최고 자재와 금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로 채우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절대화 할 것을 절대화 하며 상대화 할 것을 상대화 하면서 언제나 주님 앞에 든든히 세워지는 인생으로 나아가는 복된 복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왕기상 6장 말씀은 드디어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에나 계셨지만 특별히 솔로몬 왕은 그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그냥 솔로몬의 개인적인 열정과 계획 가운데 세워지고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주신 약속과 언약의 성취로서의 결과물임을 우리에게 증언합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 시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480년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들의 노예 생활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적어도 먹고는 살았습니다. 그런데 노예 생활 중 그들에게 무너졌던 건 뭐냐면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모든 것이 무너졌죠.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는 가장 중요한 명분은 뭐였냐면 let my peopled go…so that they could worship God.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기 위해 애굽으로부터 떠나는 출애굽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입니다. 출애굽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그들의 고통과 고난 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의 반응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본질은 그들의 무너진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언제나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제대로 예배하기 위해 그들은이 세상을 대변하는 애굽으로부터 떠난 것입니다. 그때로 부터480년이 지난 지금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그 출애굽의 본래 목적이었던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출애굽을 했던 하나님의 역사와 언약의 말씀이 성취되는 완성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솔로몬을 통해 이루시는 성전 건축의 두 가지 특징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첫번째로 성전 건축 가운데 잡음과 큰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 큰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에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음을 말씀은 강조합니다. 요즘에 그 좋은 중장비들을 다 가지고 건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공사 현장에는 늘 시끄럽고 소음이 많습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수많은 소음들과 시끄러운 소리들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건축 과정에는 이런 시끄러운 소리들이 나타나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건축할 돌을 정성 스럽게 다듬고 가져와서 건축해서 건축하는 동안 성전 속에서는 이런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 이 성전 건축의 일이 하나님이 주도하셔서 하시는 일이니 공사의 과정 가운데 시끄러운 잡음이 없이 조용히 잘 진행되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영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말씀입니다. 건축을 하다 보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그런 공사 현장의 잡음과 소음들이 늘 우리 귀를 아프게 할 뿐 아니라 공사 과정 가운데 드러나는 여러분들과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인간의 소리, 부딪히는 소리 갈등의 소리가 건축하다 보면 언제나 일어나는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의 특징은 이런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성전 건축 가운데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들, 부딛히며 내는 잡음들이 다 잠잠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를 중심으로 말하고 하나님 대신 내 주변 사람들을 계속 바라보면 사람의 시끄러운 소리들이 계속 들리게 됩니다. 성전 건축 같은 이런 큰 공사를 하게 되면 무조건 소리가 더 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고 있는 공사 과정에 그런 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한 도구로서의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의 손을 통하여 이루어지지만 그 모든 배경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고, 말씀 성취로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바라보는 영적 눈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특징은 아무리 화려하게 성전을 잘 짓고 겉으로 번지르르 해도 중요한 핵심은 보이지 않는 성전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멋지게 잘 짓고 나서 말씀하시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는게 핵심이고 기초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강조합니다. 성전을 성전 되게 하는 것은 성전 크기나 웅장함이나 대단한 성전 껍데기에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 허락하셔서 이루어진 그 성전에 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앞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는 우리의 진심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해서 세우는 성전이라면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보이지 않 있는 성전을 1차적으로 절대적 핵심가치로 여기면서 그 건물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뭐냐면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고 율레로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정확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성전을 건축하려면 하나하나가 다 매뉴얼에 맞게 딱딱 맞아야만 성전이 세워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성전에서 하나님 백성들이 말씀대로 살고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법도를 순종하는 기초 위에 보이는 건물이 세워지도록 항상 우선순위와 영적 질서를 흐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드시 보이지 않는 성전이 절대화 되어야 하고 눈에 보이는 건물이 상대화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의 회복을 위해 애굽을 떠나게 하신 그 출애굽 정신을 붙들고 지금 하나님의 성전을 여호와를 위해서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만을 바라보는 진정한 예배 회복의 피크가 바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것입니다.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배 없이 분주하고 바쁜 삶에 매몰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시며 말씀을 이루시도록 부르시는 것이죠. 진정한 예배가 회복되며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하기 위해 내 삶의 한 복판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 모든 본질은 예배 회복입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의 일은 사람의 계획과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을 철저하게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조급하게 막 진행되지 않는다고 막 조바심 낼게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심지어는 몇 세대를 걸쳐서라도 반드시 이루시는 주님의 약속이라는 것을 믿으며 말씀과 언약을 철저히 붙들고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신뢰하며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통해 마침내 이루어지는 이 놀라운 성천 건축의 역사를 함께 바라보기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소리들과 잡음들, 그 모든 것을 뒤엎고도 남는 말씀 소리와 기도 소리가 더 왕성해지며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런 소리들이 잠잠해지는 은혜가 있기를 사모하십시오. 동시에 항상 우리는 보이는 것에 매몰되기 쉽기에 보이는 것을 절대화하며 보이는 것을 세우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사는 연약한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을 절대화하며 보이지 않는 성전을 상대화하여 말씀을 지키고 계명을 순종하는 이 본질적 가치 위에 보이는 성전이 아름답게 세워지는 분명한 영적 질서를 붙들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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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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