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람의 나아만 장군의 치유 사건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나아만의 불치병인 나병이 기적적으로 치유 받았다, 하나님의 능력이 대단하다 이걸로만 끝나면 안되고 나아만의 치유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핵심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 나아만에게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종이자 노예였던 이스라엘의 한 소녀였습니다. 그 소녀는 나병에 걸린 주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나아만 장군은 그 노예이자 어린 소녀의 말을 가볍게 듣지 않았고 그 말에 반응하였습니다. 별이 개이며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나아만 장군이 그 어린 소녀의 말을 들었던 이유는 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 그 듣는 마음을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아만은 그 소녀의 말을 들었고 지금 이스라엘에게서 그 유명한 선지자인 엘리사의 집 앞에 왔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병거를 이끌고 수많은 선물들을 이끌고 엘리사의 집에 딱 온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오는 게 당연히 당연한 반응이겠습니까? 아이고 장군님 이 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였습니다…엘리사가 얼른 나와서 고개 숙이면서 딱 맞아 줘야지요…그게 나아만이 기대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집에 딱 도착한 나아만에게 정작 엘리사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이 나와서 엘리사의 말을 나아만 장군에게 전하는 겁니다. 여기서 벌써 기분이 확 상한 겁니다. 내가 누군데 감히 나와 보지도 않는 거야….내가 얼마나 멀리서 왔는데 내가 얼마나 큰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얼굴도 비춰 보지 않는 거야…나아만은 이스라엘 왕도 두려워하고 벌벌 떠는 소위 말하면 거물급 인사였습니다. 근데 하물며 엘리사 같은 선지자가 감히 나와 보지도 않고 자신에게 예도 갖추지 않는 것 자체가 벌써 머리 끝까지 화가 나는 거예요.
더 화가 나는 건 뭐냐하면 그 사자를 통해 전해온 내용입니다. 그냥 혼자 요단강 가서 물에 몸 일곱 번 씻으라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어렵지 않은 명령인데 이게 자기 생각에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엘리사가 뛰쳐나와서 자신을 맞아야 하고, 내 생각에는 여호와의 이름도 크게 수십번 부르고, 주여…를 외치며 내 몸에 간절히 안수기도 하고 막 흔들고 해야 되는데 너무나 말도 안 되게 가서 그냥 물에 가서 씻으라는 겁니다. 코빼기도 안보이고 영접 안 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그냥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하라니…내가 생각했던 모든 기대와 생각이 산산이 무너진 것입니다. 나아만이 지금 크게 노한 이유는 엘리사가 가져온 치유의 메시지가 자신의 생각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내 안에 들어오며 그리스도의 빛이 내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우리가 내려놔야 될 거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내 생각에는..”입니다. 내 나름대로의 논리와 내 생각에는 이거는 이렇게 돼야 되고 이건 저렇게 돼야 되야 한다는 그림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절박해서 치유를 구하면서 나왔는데도 여전히 자기 생각으로 내 병은 이렇게 고쳐져야 하고 치유는 이런 식으로 되야 한다는 확고한 그림이 있는 겁니다. 내 생각에는….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장벽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광야에서 독뱀에 다 물려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처방은 뭐였냐면 그냥 높은 장대에 놋뱀을 두라 하시고, 그 놋뱀을 보는 사람마다 산다 그랬습니다. 독에 물려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똑같이 “내 생각에는…”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모세가 찾아와서 안수기도 하고 주여 불러주면 낫는다… 그랬으면 오히려 좋았는데, 그냥 저 놋뱀만 쳐다보면 낫는다고? 말도 안되….내 생각에는 그거 말도 안되….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놋뱀 바라보지 않고 죽었다는 거죠. 바라보기만 하면 사는데 바라보지 않고 죽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게 내 생각에는….과 충돌하게 때문이죠 내 생각에는 너무 쉬워 보이고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선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순전히 바라보고 믿고 그 이름만 의지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영접하라 거예요. 생각보다 매우 심플하고 너무 쉬워서,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차라리 구원을 받으려면 새벽기도 10년 개근, 봉사 만시간, 헌금 얼마…이것저것 계단과 같이 계율을 만들어 놓으면 오히려 사람들이 쉽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이죠. 근데 복음이 어려운 건 내 생각과 본질적으로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어떠함을 통하여 받는 구원이 아니라 철저하게 예수님의 어떠 하심으로 받는 일방적인 선물이라는 게 내 생각에는….과 크게 충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붙들지 않고 바라보지 않고 믿음으로 취하지 않는 것이죠.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헐어 버려야 될 걸림돌은 바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내 생각에는…”입니다. 내 생각에는…이 무너지지 않으면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의도적으로 나아만의 “내 생각에는…”을 무너뜨리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성도들의 “내 생각에는…”을 무너뜨리고 계심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 생각을 무너뜨리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우리에게 직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살고 그래야만 복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얘기라는 엘리사를 향하여 분노하고 하나님에게 분노하며 떠나기 일보 직전입니다. 분노해 가지고 이스라엘의 요단강보다 훨씬 깨끗하고 좋은 강물이 우리 동네 주변에 많은데, 엘리사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있다….얼른 짐챙겨라…돌아가자…명령합니다. 그 때에 감사하게도 나아만은 분노하며 돌아가려는 찰나에 결정적으로 붙들어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거절하는 찰나에 나아만에게 놀라운 역사가 임하도록 돕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들의 종들이었습니다. 그 종들이 나아만 장군을 말리는 겁니다. 장군님 요단강에 일곱 번이 아니라 700번 씻으라 했으면 안 씻을 겁니까? 이거보다 훨씬 어려운 거 하라고 해도 다 했을텐데, 하물며 일곱 번 가서 씻으라는데 왜 그거 못 하세요? 어차피 믿음으로 그 말씀을 듣고 치유 받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 간곡하게 설득합니다. 감사하게도 나아만 장군은 그 종들의 말을 듣고 내 생각에는…을 내려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에 담기지 않아 충돌하고 부딪히고 화내는 그 내 생각에는…를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내려가 일곱번을 씻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순종하는 길은 내 생각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씻을 때마다 점진적으로 병이 나은게 아닙니다. 다섯 번 여섯 번을 씻었을 때까지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씻으면서도 계속 뭐가 꿈틀꿈틀 거렸겠습니까? 내 생각에는…이 꿈틀 거렸죠. 여섯 번을 씻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예요. 야 여기까지…그러고 철수 했으면 놀라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곱 번을 씻고 나니까 일곱 번째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강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나아만의 치유 사건이 복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누가복음 4장에서 놀랍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의 많은 나병 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 왜 나아만 혼자 나병을 고침 받은 겁니까? 그가 포기한 내 생각에는…이 받아들였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이었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왕으로 주인으로 오십니다. 그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하기만 하면 그 안에 거기만 하면 구원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거절하고 등을 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그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과 충돌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복음이 역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내가 엎드리는 것이 복음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서 내려가는 것을 순종의 믿음이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 받는가 하면 순종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도 믿음의 순종의 믿음으로 일어나고 놀라운 치유의 역사도 순종의 믿음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려야 될 나의 교만한 생각, 무너져야 할 내 생각에는…이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걸 내려놔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 삶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내 생각에는…을 내려놓고 설득당하기를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내가 교정되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나의 생각이 내려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그 순종의 믿음을 통하여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하늘에서 우리 삶에 이루어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March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