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해서 북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과 내리막길에 대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세워 주시고 든든하게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기 원했지만 북 이스라엘은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며 멸망의 길로 달려가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남이 되고 원수가 된지 수십년이 흘렀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이제 남과 북은 동족이라 하기에는 너무 달라진 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남과 북만 갈라지고 나누어진게 아니라 남한 땅에도 수많은 갈등들이 존재합니다. 남과 북으로만 갈라진 것이 아니라 남남의 갈등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세대 갈등, 남녀 갈등, 빈부 갈등,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 갈등, 이런 남남의 갈등들도 굉장히 큽니다.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북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눠져 원수되어 싸우는 것을 넘어서서 북북갈등이 일어나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북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어 국민 절반은 디므니를 따르고, 나머지 절반은 오므리를 따르며 북북 갈등이 4년간 내전으로 번집니다. 서로 쿠데타를 통해 왕위를 빼앗고 집안의 씨앗을 다 말리듯이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던 북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남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서로 원수 되는 것도 모자라 북북갈등이 시작되어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으로 쪼개져 서로 내부 총질 하며 자멸하듯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직면하는 안타까운 영적 현실이고, 좀 더 크게 보면 항상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를 향하여 던지는 미혹과 덫에 말려들 때 이런 일이 있게 된다는 것을 경고의 말씀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사단이 오랫동안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하여 했던 동일한 미혹 방법은 뭐냐면 divide and fight입니다. 같은 민족, 같은 신앙 공동체가 나눠져서 서로 싸우게 만드는게 항상 전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미혹에 빠지게 되면 주적인 사단 마귀를 잃어버리고 서로 나눠지고 서로 원수되어 싸우게 되는 것이죠. 한 백성이 남과 북이 갈라지는 것도 모자라 이제 북과 북이 갈라져 이제 그 안에서 원수되어 싸우고 모두 망하고 자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 이스라엘의 안타까운 흑역사를 우리에게 말씀으로 주신 이유는 이런 일들이 지금 우리에게도 현재형으로 찾아오는 도전임을 경고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멸하게 만드는 divide and fight이라는 사단의 미혹에 우리가 걸려 넘어지지 않기 말씀을 통해 깨어나며 분별하고 경계해야만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바라보며 주적을 정확하게 깨달아 사단의 미혹에 빠지지 말고, 북 이스라엘의 안타까운 역사가 우리 가운데 반복되지 않기 원합니다. 북북 갈등의 내전을 넘어 왕이 된 오므리와 그 아들 아합에 대해 오늘 말씀은 증언합니다. 먼저 오므리가 북북의 내전 갈등을 봉합하고 4년 만에 왕이 되는데, 오므리 왕조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굉장한 경제적 부흥과 회복을 이룬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한 절 말씀으로 되어 있지만 북 이스라엘의 사마리아에 성읍을 건축하고 사마리아라는 나라가 시작하게 된 큰 기틀을 세운 왕이 누구냐 하면 바로 오므리왕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 보기에는 겉보기에는 많은 일과 업적이 있었고, 백성들의 삶의 상황은 경제적으로는 굉장히 좋아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열심히 일했고 경제적으로 백성들을 살 만하게 했으며 소위 말해 업정이 많은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매우 악한 왕,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하고 헛된 것들로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왕으로 평가합니다. 겉으로는 사람들 보기에는 대단한 왕이었는데, 속으로는,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한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우리는 세상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다르며,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사람들이 보는 것은 다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으나 사람들의 시선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시선을 늘 붙들고, 겉보기가 아닌 속으로 보이는 것을 붙들고 살아가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시선에 내가 어떤가를 본질로 발견하는 것이 살아있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므리에 이어 완이 된 그 아들 아합은 어땠습니까? 아합은 22년 동안 북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데 아합은 이전에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한 왕, 심지어 여로보암의 죄가 가볍게 여겨질 정도로 심각하게 무너진 왕, 더욱 영적으로 악하고 어두운 왕으로 평가 받습니다. 역사적 문헌을 보게 되면 아합왕 또한 아버지 오므리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부강한 사마리아 북 이스라엘을 만든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아버지보다 더 악하고 어두우며 악한왕의 대표선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합왕이 왜 그렇게 나쁘고 악한 왕이었는가에 대해 대해서 세 가지 이유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뼈속 깊이 바알 숭배자 가족의 딸인 이세벨과 결혼해 아내를 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바알을 섬기는 것을 넘어 바알 제단을 쌓았습니다. 바알을 위한 제단을 왕이 쌓아 앞장서 바알 우상에 예배하는 겁니다. 더 나아가 아세라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돈 문제가 제일 큰 문제야,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큰 문제야. 그걸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할 수 있어… 그래서 바알 신전에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은 겁니다. 그러니까 아합뿐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어디를 향해 나아가겠습니까? 바알을 추종하고 바알 우상을 절대 가치로 두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최근에 여기 어번 지역에 아주 큰 카지노가 새로 생겼습니다. 얼마나 크고 화려하게 카지노 건물이 지어졌는지 번쩍번쩍 하고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길 건너에는 크게 빙고샵이 또 크게 있었고, 그 빙고 건물 옆에는 스모크샵이 있었습니다. 그 세 군데에 가득한 차들로 인해 거기서 수많은 경제적인 부와 이득이 있을 겁니다. 근데 결국 그걸 통하여 영적으로 피폐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아합왕이 했던 악한 일이 정확하게 이거구나라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을 경제적으로 좀 먹고 살게 하고 경제적으로 좋아지게 했는지 모르지만 돈문제가 제일 큰 문제라는 가치 아래 바알 우상을 섬기며 백성들의 영적인 삶은 완전히 황무하게 만들고 피폐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 문제는 잘 풀었는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한 어둠과 타락으로 백성들을 몰아가는 왕이 아합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나아지고 백성들은 잘 살게 됐는지 모르지만 아합 왕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증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이런 평가들을 계속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교회들과 백성들도 동일하게 평가하고 계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예수님 앞에 서서 평가받는 때가 있음을,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시선과 사람들의 시선이 동시에 있고, 하나님의 평가와 사람들의 평가가 동시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평가와 안으로 보이는 평가가 있습니다. 그때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를 먼저 붙드시는 백성, 겉으로가 아닌 안으로는 어떠한가를 먼저 붙드는 백성 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지금 이순간도 내 인생은 하나님 앞에 평가되고 있으며 그 평가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의식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평가를 망각하면 우리는 늘 사람들에 묻혀서 사람들의 평가만 민감하게 바라보고 살다 끝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시선을 의식하며, 하나님께 민감하게 깨어나기를 원합니다. 겉보기에 어떠한가가 아니라 내가 이룬 업적이 아니라, 속으로 어떠한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를 늘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입니다. 말씀에 엎드리는 주의 백성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살아가는 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내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나와 내 집안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결단하며 이 시간 순종과 말씀 가운데서 든든하게 서 이 세상에서 기준이 되며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치고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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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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