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솔로몬 왕의 성전 건축과 자기 왕국을 지은 이후에 나머지 업적에 대해서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perspective, 관점은 뭐냐면 솔로몬이 이렇게 위대하게 이런 많은 일들을 했다는 놀라움의 긍정적 관점보다는 솔로몬은 좀 과하다, 지나치다 지금 선을 넘어섰다는 경계의 관점으로 증언하고 있음을 주목하여 말씀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드러나는 솔로몬의 문제점, 지나치고 과해서 문제의 길로 간다고 성경이 지적하는 두 가지를 함께 말씀으로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첫번째 솔로몬의 문제는 계속된 건축과 부역입니다. 하나님의 성전과 자신의 왕궁을 지은 이후에도 솔로몬이 계속해 백성들을 통한 역군을 일으키는, 부역을 명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데만도 7년이 걸렸고 자기 왕국을 짓는 데는 그 두 배가 걸렸습니다. 이 정도 백성들을 돌리고 부역을 했으면 이제는 좀 백성들에게도 좀 휴식을 주고 집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되는데 또 다시 건축을 시작하는 겁니다. 솔로몬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고성과 병거성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자기가 원하고 마음에 드는 곳은 어디든지 대대적인 건축공사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 건축이라는 건 다 손으로 모든 것을 해야 되는 때인데, 이렇게 계속 건축을 하게 되니까 민심이 지치고 민심이 불만이 있고 민심이 돌아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백성들을 사용과 이용의 수단으로 계속 쥐어짜니 나중에 폭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실 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잘 이끌고 섬기기 위해 왕을 세웠는데 지금 백성을 섬기거나 지키고 보호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들을 쥐어짜는 왕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솔로몬의 업적을 치켜 세우는 말씀이 아니라 지나친 부역과 건축으로 인해 결국은 백성들이 터지고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경고하는 말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솔로몬의 문제는 더 큰 문제로 하나님을 애굽과 겸하여 섬기는 문제입니다. 바로 왕이 얼마나 통이 크냐 하면 솔로몬 왕에게 시집가는 자기 딸을 위해 뭐를 준거냐면 도시 전체를 준 것입니다. 게셀이란 도시를 다 점령해서 그 도시 전체를 솔로몬의 아내가 될 자기 딸에게 결혼 예물로 준 겁니다. 아무리 혼수를 대단하게 해와도 도시 하나를 다 바치는 애굽 바로왕의 딸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걸 분별하고 조심했어야 하는데 솔로몬은 이런 통큰 혼수를 마다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굉장히 좋아한 거죠. 그렇게 예물로 도시 하나를 받고 나서 뭐를 하냐면 그 받은 도시 위해 건축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바로왕이 점령해서 받은 도시이니 모든 도시가 피폐해졌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예물로 가져온 그 도시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역을 통해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바로 왕의 이름으로… 자기의 아내인 바로 왕의 딸을 위해서 … 그걸 위해서 누가 또 동원되는 겁니까? 백성들이 동원되는 것이죠. 더 나아가서 솔로몬은 왕궁 안에 바로의 딸을 위한 곳을 따로 만들어주고 그 곳에 밀로를 건축하였다고 증언합니다. 성전 바로 옆에 지어진 왕궁에 머무는 바로왕의 딸은, 애굽의 문화와 종교, 우상들을 다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바로의 딸을 위해 밀로, 지금으로 말하면 방어시설이에요. 거기 혹시 위험할까봐 바로의 딸을 위해 방어 시설을 다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성경이 자세하게 증언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방 여인을 사랑해 결혼했다는 문제 정도가 아니라 솔로몬의 깊은 영적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솔로몬은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에게 더 기대하고 누구를 더 붙들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겉보기에 솔로몬은 제사를 잘 드리고 예배 잘드리며 하나님께 신실한 왕처럼 보입니다. 때마다 절기마다 와서 하나님께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겉모습의 예배와 제사를 통해 하나님에게 올인하는 솔로몬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도 드리면서 동시에 솔로몬은 누구를 붙들고 있는가 하면 애굽왕 바로를 붙들고 있는 거죠. 애굽의 바로 왕은 그 당시에 강대국 아니겠습니까? 솔로몬이 나라를 잘 운영하려면 강대국의 힘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힘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솔로몬이 애굽의 힘을 더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힘을 더 좋아하고 더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문제가 나중엔 발생하는가 하면 초기에는 하나님과 애굽을 겸하여 붙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나님보다 애굽을 더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리막길을 가게 되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의 말씀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으로 대표된 세상, 바로왕이 다스리는 세상은 우리에게 도시 하나를 통 큰 선물로 줄 정도로 우리를 당기는 매력적인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 그 바로왕을 의지하면 우리가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가지게 되고요. 특별히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하나님보다는 세상의 힘을 더 의지하고 세상 것을 더 좋아하고 세상 것을 붙들며 살아가기 쉬운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솔로몬은 화려하게 성전을 완성했습니다. 그 안을 모두 최고급 자재들과 금으로 잘 채웠고 놀랍게 봉헌식도 잘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성전에서 하나님만 온전히 예배하는 순전한 예배와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예배하고 애굽도 예배하고 하나님도 의지하고 애굽도 의지하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애굽도 사랑하는 자가 되면서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안타까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우리에게 경고하는 말씀으로 주신 것입니다. 솔로몬만 그런 게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도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은 이 말씀을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묵직한 경고의 말씀으로 주신 줄 믿습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지나치면 모자란만 못하다는 말인데 영적으로 둔감해진 솔로몬은 결국 백성들을 지치게 만들고 피폐하게 만들고 백성들을 돌아서게 만드는 씨앗을 계속 뿌리고 있음을 경고의 말씀으로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내 주변에 붙여 주신 사람들은 사랑하고 돌보고 이끌기 위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람들입니다. 내가 이용하고 사용하고 쥐어짜서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필요한 수단과 도구들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들임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새겨야 되는 진리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과 행사들을 교회 이름으로 합니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하나님만 섬기는 대신 하나님도 섬기는 겸하는 삶으로, 우리는 늘 왜곡되고 변질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하는 이유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의지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힘보다는 세상의 힘을 더 의지하기 때문에겸하여 섬기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겸하여 섬기며 망하는 삶에서 돌이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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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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