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의지하여 싸운 전쟁의 승리를 통해 기드온이 살아있던 40년동안 이스라엘 땅에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미디안이 복종하여 다시는 머리를 들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게 모든 것이 끝난 거 같고 다 모든 것이 이제 정상적인 평화의 시대로 온 거 같지만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평화, 여호와 샬롬은 아니었다... 증언합니다. 전쟁에 들어가기 위한 기드온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며 이 전쟁을 통해 여호와 샬롬을 주실 것을 믿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전쟁 후에 가져온 평화는 하나님과의 샬롬이 아니라 힘으로 잠시 누른 껍데기의 평화, 미봉책의 평화였다는 것이죠. 기드온은 승리 후에 하나님께 다스림을 받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영광으로 돌리는 것에 실패하며 영적 하향곡선을 그리며 무너졌으며 왕 노릇을 하며 그의 인생을 끝나게 된거죠.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그 말씀 다음에 나오는 아내가 많은 기드온의 평가입니다. 아내가 몇명이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70명의 아들을 낳을 정도면 굉장히 많은 것은 확실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기에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아내가 많은 것, 자체만을 성경이 문제 삼는 게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당시 기드온이 한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을 기반으로 서로 신뢰하며 주님을 의지하여 가정을 이루는 모습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정략 결혼이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 주변에 많은 호족들/나라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정치적 관계성을 맺으며 결혼을 하는 겁니다. 결혼을 하면 그 문화와 가치관을 서로 공유하면서 젖어들 수 밖에 없는데 그런 아내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가 많다는 것은 기드온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대신 주변에 있는 나라들의 힘을 이용하고 의지하며 살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을 의지하며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그 뜻과 는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된 것이죠. 심지어 그 많은 아내들로도 모라자서 첩도 있었습니다. 그 첩을 통해 태어난 아들이 아비멜렉이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을 통해 이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결국 나중에는 큰 일을 치르게 된다는 복선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기드온은 그의 말년에 하나님의 뜻에 반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들을 많이 했으며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샬롬을 이루지 못하며 그의 인생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아내와 자식이 많았다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다는 본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기드온이 죽자마자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영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성경은 세 단어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타락을 묘사합니다. "돌아섰고…따라갔고…. 음행했다…"여기서 돌아섰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거죠. 등을 돌리고 하나님 낯에서 몸을 돌려 숨은 겁니다. 하나님 다스림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거룩한 백성이 등을 돌린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며 멸망과 파멸로 들어선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드온이 죽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물이 계속 데워지면 임계점이 되서 끓듯이 이미 영적으로 하향곡선을 그리다가 기드온이 죽은 후 끓어오르듯이, 하나님에게 등을 돌려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길로 가는 백성들이 된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대신에 바알을 따라갑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과 눈에 보이는 풍요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바알신, 세상의 풍요의 신을 추종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싫어하셨던 바알신을 따라가기 위해 그들은 하나님에게 등져버린 겁니다. 그 결과는 음행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무너지고 똑같이 타락한 그 음행을 보이게 됐다는 것이죠. 영적 음행이란 바로 자신들을 건져 내신 구원 하신 하나님, 그리고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들을 건져내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당연해지고, 그 당연함의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등돌리게 만들고 떠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드온이 죽은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현주소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 현 주소를 직시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추구하고 원하는 평화는 단순히 문제가 없는 평화가 아니라 여호와 샬롬…나의 속사람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하나님을 등을 돌리게 되면 결국 세상을 추종하고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추종하고 따라가면서 하나님에게 등 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결국 하나님과 바알, 둘다 섬 길 수 없고 둘다 추종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 민감 하면 세상의 둔감 할 수 밖에 없고 세상에 둔감하면 하나님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따라가고 세상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나는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 인가? 그 하나님의 다스리심 가운데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고 그분이 나의 하나님 되심을 정말 잊지 않고 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가? 이 시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여호와를 떠나 바알을 추종하고 행음하며 무너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무너짐의 패턴을 답습하지 않기 간구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따라가며 세상에서 돌아서 거룩하고 구별된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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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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