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역사를 보게 되면 한양에 있었던 경복궁이 불타고 나서 후에 그 경복궁을 재건하는 일을 통하여 나라를 재건하려 했던 여러 번의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경북궁 재건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결국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나라 전체가 어려워진 과거 역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경복궁 하나를 재건하는데도 그렇게 많은 힘과 노력, 백성들의 피땀의 노력이 들어가서 국가가 휘청거리고 어려워졌는데, 수천년 전에 솔로몬 왕이 성전을 완성하고 자신의 궁궐과 여러 건축들을 계속하는 가운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상상이 갑니다. 성전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그 일에 집중 아니라고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항상 위기는 그 큰 일이 끝나고 나서, 대 공사가 끝나고 나서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죠. 성전 공사를 다 마치고 나니까 그 동안 쌓여 있었던 문제들이 밖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성전 건축 이후에 솔로몬 왕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눠집니다. 열왕기서에서 솔로몬 왕의 평가와 오늘 말씀인 역대기에서 바라보는 평가가 굉장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평가에 따라서 이 솔로몬 왕이 정말 하나님에게 합한 왕이었는가, 아니면 정말 국가적 위기와 문제의 단초를 제공하는 하나님께 등을 돌린 왕이었는가가 나뉘어 집니다. 성경은 감사하게도 한쪽만 우리에게 알려주는 게 아니라 양쪽에 다른 관점들을 동일하게 말씀으로 증언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늘 치우칠 수밖에 없고 늘 부분적으로 알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합니다. 그렇기에 열왕기서와 역대기의 이런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인 역대기는 성전 건축 이후 등장하는 솔로몬의 문제와 변질을 성전 건축이라는 큰 과업 아래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계속 반복되는 말은 “건축하고…건축하고…”입니다. 20 년 동안 백성들이 부역하고 모든 재물을 다 모아서 하나님의 성전과 왕의 궁궐을 지어 쓰니까 얼마나 백성들이 피혜하고 어려워졌겠습니까? 경복궁 하나 재건하는데도 나라가 휘청 했는데 하나님의 성전과 자기 궁궐 까지 20년 동안 토목공사를 했으니까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면 잠시 멈췄으면 좋은데 계속 건축에 끊이지 않는 겁니다. 이렇게 건축을 무리하게 계속하는 것에 대한 평가가 열왕기서에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니까 솔로몬 왕이 백성들의 마음과 그 지치고 힘든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몰아 붙이며 건축 공사를 계속하는 것을 통해 백성들의 원성을 사고 백성들의 원망을 샀다는 것이죠. 반면에 역대기서인 오늘 말씀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걸 계획하셨다는 것을 믿고 온전히 순종해 이 일을 잘 추진하는 솔로몬의 모습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부역하며 힘이 들었지만, 사실 많은 부분을 이방인들이 감당했음을 강조합니다 이방인들을 노예로 삼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관리를 하게 되었음을 오늘 말씀은 부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솔로몬의 실정과 문제는 큰 일을 추진하는데 따라오는 부산물과 같은 문제들이고 그 어려운 성전 건축의 과업을 강력한 리더십과 하나님의 은혜로 잘 추진하고 있음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솔로몬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열왕기서를 보게 되면 솔로몬의 정략 결혼으로 데려온 수많은 이방 여인들을 집중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 그것을 통하여 이방 신들의 가치와 정신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것이 솔로몬의 가장 중요한 실정이자 타락이라는 것이죠. 결국 이것으로 말미암아 솔로몬은 나라를 분열하고 분단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 문제 있는 왕이다….이게 열왕기서의 관점이고 해석입니다. 솔로몬은 굉장히 타락하고 변질된 왕, 성전 건축 이후 영적으로 완전히 하향 곡선을 그리는 왕...아버지 다윗과는 비교할 수도 없고, 끝이 좋지 않았던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대기서는 이 솔로몬의 정략 결혼을 매우 짧게 서술합니다. 바로의 딸과 결혼하는 것이 문제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었음을 지적하지만, 그럼에도 방점은 어디 있는가 하면 그 여인을 성전에 출입하지 못하게 함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구별된 성전에 모습을 지키려고 노력한 왕이었다는데 있습니다. 솔로몬에게 실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에게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이런 어려운 성전 건축을 잘 했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면서도 그 거룩한 성전의 본질을 지키려 노력한 왕이라는데 방점이 있는 것이죠 이렇게 성전 건축 이후 솔로몬 왕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다른 관점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을 통해 우리는 말씀을 읽고 대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부분적인 편향성, 치우침을 내려놓고 말씀이 나를 교정하고 바꾸기를 갈망하며 읽어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내가 좋은 대로 바라보고 내가 편한 대로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보며, 그 과정에서 왜곡하고 치우치게 바라본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은 다양한 관점을 통해 우리가 보지 못하는 큰 그림을 동시에 보게 되는 이스라엘의 경륜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음을 바라봐야 합니다. 말씀과 내가 충돌할 때, 나의 뜻과 나의 생각을 넘어 늘 우리가 먼저 엎드려 내가 잘못되었고 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대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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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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