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제 말씀을 통하여 나단 선지자와 다윗 왕이 귀하고 기특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께 영적인 겸손을 가지고 인생의 정점 가운데 내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호강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을 고민했던 다윗의 그 순전한 태도와 마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굉장히 귀했고 좋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니까 나단 선지자도 다윗 왕 안에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이 굉장히 좋았고 그 뜻에 따라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 여겼기에,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 선지자에게 임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마음 속에 있는 순전한 의도와 마음은 귀하지만 지금은 성전 지을 때가 아니라며 하나님이 막으시는 겁니다. 다윗의 태도와 자세가 틀려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사람의 때가 다르다는 겁니다. 다윗이 웃사의 저주를 통하여 뼈속깊이 배운 게 뭐냐면 아무리 좋은 계획과 의도도 그 방법이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하나님 성전을 건축한다는 좋은 계획과 아무리 좋은 뜻과 의도를 가졌어도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의도와 좋은 생각을 가졌다 해서 항상 옳은 게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때와 조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인생의 정점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할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성전을 지으려는 그 마음 자체는 굉장히 귀한데 지금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추진하지 말고 멈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왜 지금이 하나님의 성전을 세울 때가 아닌가라는 것에 대한 두 가지의 이유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이유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는 성전을 세우기 전 보이지 않는 성전을 먼저 세울 때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이란,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 신앙 고백을 먼저 세우고, 그들이 지금 기억하고 붙들어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보이는 성전을 세우는 것보다 먼저 세워져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너져 있는 신앙고백을 먼저 세우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너진 신앙 고백, 무너진 보이지 않는 성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왕이심을 고백하는 신앙 고백이 무너져 있고,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는 신앙 고백이 무너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셨으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왕이셨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시대 내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 없는 백성같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인도한 날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왕이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절하고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야 된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왕 되심을 거절한 결과가 바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왕이 없는 것처럼 살아왔었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정말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왕이십니까? 우리 교회에, 우리 가정에 하나님은 정말 왕이십니까? 그리고 왕이신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심을 실체로 믿으십니까? 지금 이 시간 기도하는 예배당에 하나님이 임재 하시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정말 믿느냐 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왕이 아니신 분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지 않고 함께 계시지 않는 자들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무너진 신앙 고백을 그냥 놔둔 채 보이는 하나님의 성전을 제일 먼저 세우게 되면 찾아오는 위험함이 뭐겠습니까? 아 하나님은 성전에만 계시는구나… 그러면서 하나님을 성전 안에 가둘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전을 세우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뭐냐면 이스라엘의 정말 하나님은 왕이신가…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그들과 함께 하셨음을 실체로 믿는가…이 분명한 고백을 먼저 세운 후에 보이는 성전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성전이 먼저 세워지고 보이는 성전이 세워져야 한다는 거예요. 이 분명한 신앙고백을 붙들고 하나님을 기억하는 도구로서 성전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 성전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나의 왕은 언제나 하나님이시지…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지…이 분명한 신앙 고백을 기억하고 현재화 하는 은혜가 있을 때 성전이 축복의 통로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미루신 이유는 성전은 사람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실 거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그 마음은 기쁨으로 받으시겠다는 거예요. 대신 성전은 나의 계획대로 가시겠다 말씀하시며 성전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세우신다는 걸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론 사람들이 열심히 뛰어서 성전을 건축 하겠지만, 성전을 본질적으로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이 견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운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운 성전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나아가는 것이죠. 우리가 성전을 세우는 게 아니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우시고 지키시고 견고하게 하심에 사용되는 하나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도구로써 우리는 도구의 역할을 순종 하며 충실하게 할 뿐이며 그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견고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지켜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내가 세우는 게 아니고, 우리 가정과 사업장을 내가 세우는 게 아닙니다.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이며, 견고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믿고 고백하는 것, 그게 우리의 놀라운 신앙 고백이 될 줄 믿습니다. 다윗왕이 얼마나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습니까? 나단 선지자가 얼마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선지자였습니까? 그 두 사람도 지금이 하나님의 때라고 당연히 믿었던 성전 건축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막으셨다면 하물며 저와 여러분들은 얼마나 더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민감하게 살아간다는 건 하나님을 향하여 이렇게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열망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인식하고 그분 앞에 나아갈 때와 멈출 때를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 영적으로 민감한 삶입니다. 내 인생이,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세워지는 비결이 뭡니까? 오직 하나님이 나의 교회를 세우시고 나의 가정을 세우시며 나의 삶을 세우심을 믿으며 세우시고 붙드시고 지키시는 주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며 단단히 주님 붙들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언제나 하나님은 왕이신가?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가? 정말 나를 세우시고 지키시고 견고하게 하시는 분이 왕이신 하나님이신가? 나의 가정을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지키시고 견고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가? 그 하나님을 믿고 붙들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세우시는 인생만이 견고해지고 하나님이 세우시는 가정과 교회만이 견고히 설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신앙 고백이 나에게 든든히 세워질 때 우리의 삶에 주님의 역사가 풍성히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분별하고 순종 하며, 하나님 앞에 든든히 세워져 하나님의 뜻 가운데 놀랍게 사용되는 귀하고 복 된 성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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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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