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빼앗겼던 하나님의 법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백성들이 얼마나 기뻐 했겠습니까? 벳세메스 사람들이 궤가 돌아오는 것을 보며 기뻐하는 것으로 그 감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수유를 하고 있는 어미 소 두 마리가 끌고 가는 하나님의 법궤, 울면서 본인들이 원하는 길이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이스라엘 지경에 하나님의 법궤를 도착하게 하신 것입니다. 상상해보면 지금 분위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감격과 축제 현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 지경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왔으니 온 백성이 축제를 벌이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게 당연하겠지요. 그렇게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 지경으로 돌아오는 사건을 바라보며 해피엔딩이 될 것 같은데 오늘 말씀은 그 축제 현장에 거의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을 함께 기뻐하고 바라봤던 벧세메스 사람들이 그 법궤를 보았다는 것 때문에 5만 70인 을 죽이신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70명을 죽이셨다 되어 있고, 어떤 사본에는 50070명을 죽이셨다고 되어 있는데, 많은 학자들이 그 축제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5만명 정도이고 그 중에 70명을 치셨다고 해석합니다.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열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현장에 찬물을 확 끼얹으신 겁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돌아와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그 현장이 하나님이 치시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법궤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로 들어오는 그 축제 현장에서 이렇게 찬물을 끼얹으셨는가? 그렇게 어미소들 에게까지 역사하셔서 하나님이 주도하심으로 그 법궤를 이스라엘 지경으로 오게 하셨는데, 벧세메스 사람들을 치시면서까지 경고하신 영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 축제의 현장에 찬물을 끼얹는 두 가지 이유는 모두 본질적인 결론을 가져오는데 하나님의 법궤를 함부로 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문제는 그들의 제사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에 돌아왔으니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당연한 일 이자 좋은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기쁘고 좋고 감격해도, 그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기준에 따라 제사를 드렸어야 했습니다. 제사 규정을 기억하실텐데, 번제를 드릴 때나 하나님께 소를 드릴 때는 반드시 흠이 없는 수컷을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은 “흠이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라고 분명히 명령하셨고 기준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나님의 법궤가 돌아와서 하나님께 지금 번제를 드리려면 어떻게 드려야 됩니까? 흠 없는 수소로 번제를 드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번제를 드리는가 하면 하나님의 법궤를 끌고 온 소를 잡아 번제로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그 소는 아직 수유를 하고 있던 어미 소, 즉 암소였습니다. 또한 법궤를 메고 오는 동안 그 무거운 것을 끌고 오는데 흠이 하나도 없을 리가 없습니다. 소들이 당연히 몸에 흠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흠이 있는 암소를 번제로 드리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규정이나 하나님의 명령하신 그 기준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거죠. 수컷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도, 흠 없는 소를 드리라는 하나님 명령도 그냥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를 그냥 때우듯이 드린 겁니다. 두번째 문제는 하나님의 법궤를 마음대로 열어본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막 열어서 볼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명령하셨습니다. 아론의 제사장 직분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그 안을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겉모습도 보면 안되고요. 언약궤를 만지면 다 죽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 하나님의 법궤가 돌아오니까 구경거리가 난 것처럼 사람들이 막 와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법궤 앞에 엎드리고 회개하는 대신 뭐 구경거리가 난 듯이 사람들이 모여 들어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오만 명이나 모인 수많은 군중들 가운데 실제로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70명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영적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으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에게 엎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법궤를 마치 부적과 같이 여기면서 그들은 참패를 당했고 그들은 그렇게 비참한 결과를 직면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스스로 일하시며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 그 법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고 있는데도 여전히 그들은 정신을 못차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들 마음대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죠 자기들 마음대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계를 법궤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과 명령을 무시하는 벧세메스 사람들의 이 악한 행동을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함부로 대하고 기고만장한 블레셋 사람들을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인 하나님의 손이 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고 독종으로 그 사람들을 고통 가운데 헤매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의 상징인 이 하나님의 법궤를 함부로 대하고 마음대로 대하는 벧세메스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과 제사의 기준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이렇게 70 명을 심판하셨으면, 벧세메스 사람들이 바로 정신 차렸어야 합니다. 아… 우리가 뭐 크게 잘못했구나….이거 하나님께 회개해야 되는 시간이구나…엎드렸어야 합니다. 거기 레위인들이 분명히 있었지 않았습니까? 너희가 지금 흠없는 수소로 번제를 드려야 되는데 흠이 있는 암소로 드리면서 하나님 멸시한 것을 모르느냐…경고했어야 합니다. 절대 보지 말아야 될 하나님의 법궤를 보아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까 우리가 회개해야 된다 이렇게 나왔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그 자리에 레위인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사 규정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거기 암소가 있으니까 그 암소 잡아서 제사 드리고, 예배 드리면 되지…라는 편의주의로 나가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의 반응은 심판 가운데 울면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회개나 반성은 전혀 없이 이럴 거면 하나님 누가 하나님 앞에서 서겠냐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런 벧세메스 사람들과 같이 때우듯이 드리는 예배, 편의주의로 하나님의 기준을 무시하는 예배와 제사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지는 않은 지 반성하기 원합니다. 예배와 제사 드리는 것이면 충분하지...그렇게 하나하나 다 기준에 맞춰서 하냐고 결과 지상 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규정과 기준은 무시한 채 그냥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치신 것과 마찬가지로 벧세메스 사람들을 치셨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버려야 될 사고방식이 있음을 분명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제사를 드린 게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자기의 편리한 대로 드리게 됐다는 것, 결국 그런 예배와 제사를 멸시하는 태도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함부로 여기는 것이자 하나님을 함부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함부로 여기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지키는 자들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겉으로는 예배 드리고 제사 드린다고 그러지만 하나님의 뜻과 기준과 명령을 함부로 여기며 나아오는 것을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이라며 싫어하십니다. 흠 없는 수소 대신에 그냥 가까이에 있는 흠이 있는 암소 아무거나 드려도 된다고 편리한 대로 드리며 나아오는 제사를 하나님이 싫어하심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대강 때우듯 드리는 태도와 편의주의를 버리고 온전한 마음으로 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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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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