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동역자 에바브로 디도가 자신과 괴로움과 고난을 함께 하며 함께 도운 성도들을 향하여 모든 것이 있고 풍부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는데, 감옥 안에서 뭐가 그렇게 풍부하고 많이 있겠습니까? 그가 고백하는 풍부함이란 외적인 것의 풍부함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마음으로 인하여 풍족함을 느끼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 선물들을 통해 성도들이 여전히 한결같이 나와 한 마음이고 함께 동역하며, 고난과 괴로움도 함께 지려 하는 그 진심을 마음으로 느끼며 풍성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드리는 것을 삶의 축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고 받는 것을 삶의 축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인생 자체가 늘 받고 받고 받고…늘 받고 달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지향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인생 자체가 늘 주고 베푸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지향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앙 생활 할 때 예수님 앞에 우리가 드리는 것을 삶의 축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미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에게 놀랍게 부어 주셨음을 알기에, 주님 앞에 “드리려는 열망”을 가지고 주님께 “드리려는 마음” 나오는 게 삶의 축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풍족함이란 물질의 풍요를 넘어 마음이 풍족히 채워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껍데기를 채우고 겉을 채우면 잠깐 반짝 풍요로운 것 같지만, 진짜 풍족한 인생은 마음이 채워지고 내면이 채워져 마음으로부터 겉으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헌금의 의미도 동일합니다. 무엇보다도 헌금에 내가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드릴 때 그 헌금이 나에게는 신앙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과 일맥 상통합니다. 교회 헌금통에 아무 생각 없이 마음 없이 드리는 헌금이 아니라, 예배 행위로서의 헌금이 된다면 내 마음이 그 헌금에 담겨야 하며 그 헌금은 “주님께 드리고 싶은 진심”이 담긴 고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드리는 헌금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는 분명한 확신과 실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그 헌금이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일이 되는 이유는, 그 헌금에 자신들의 진실된 마음, 하나님께 드리기를 사모하고 원하는 마음을 담아 주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헌금 생활이 영적 훈련이자 영적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받은 자임을 자각하며 나는 정말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께 드리려는 마음이 내 마음의 삶의 축이고 지향성인가? 그래서 돈을 들이는 게 중요하지만 돈과 함께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 내가 드리기를 원하고 갈망합니다…드리기를 기뻐하고 사모합니다…라는 진심을 담아 하나님께 드리게 될 때 그 헌금이 하나님께 그게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을 담아 드리는 헌금이 하나님께 대해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믿을 때 헌금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담아 향기로운 제물로 물질을 드릴 때, 헌금이 나의 신앙 고백이 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갈망을 드리는 영적 행위가 될 때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을 이만큼 했으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채워 준다는 거래나 계산이 아니라 나는 순전한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드리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동일하게 일방적으로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 우리에게 풍성한 대로 부으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드리면 이만큼 내가 복을 받는다…라는 계산을 하기 시작하면 헌금을 통해 주님께 “드리고 싶은 진심과 열망”을 날려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드리면 이만큼 내가 복을 받는다…라는 계산을 내려놓고 내가 할 일은 일방적으로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께 마음을 담아 물질을 드리는 겁니다. 온전히 주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을 삶의 축으로 주님 앞에 내 진심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주님이 책임지심을 믿고, 주님의 영광에 따라 나의 필요를 채우심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삶에 하나님에게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나를 이끌게 되는 것이고, 드리고 싶은 마음은 흘러 넘쳐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을 삶의 원동력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며 우리를 일방적인 은혜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며 주님을 온전히 모시며 이 시간 나의 삶이 그리스도 그 분 자신을 선물로 주신 그 사랑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음을 믿으십니까? 그 몸이 찢기시고 피를 다 쏟으시며 자기 자신을 선물로 주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이미 받은 저와 여러분들이라면 그것을 실제로 믿으며 고백한다면, 나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 드리는 것을 삶의 원동력으로, 주는 것을 삶의 원동력으로 살면서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는 인생, 그렇게 주님께 드리는 인생을 사모하고 삶의 축으로 나아갈 때, 전심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인생을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의 필요를 풍성하게 채우시며 삶을 통하여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통하여 누린 이 마음의 풍족함을 저와 여러분들도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랑을 나눔을 통해 풍성히 누리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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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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