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스보셋은 거의 허수아비와 같은 왕이었고 모든 실권은 군대 장관인 아브넬이 가지고 있었음에도 사실 그 실권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세이자 자신의 보호막이었던 아브넬이 요압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는 생각에…이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곧 내가 살해당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는 생각에 온몸에 힘이 다 풀렸습니다. 나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게 된 건, 다윗 왕과 요압 군대가 곧 쳐들어 와서 자기를 죽일 거라고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을 죽인 것은 다윗왕과 요압 군대의 칼이 아니라, 내부 배신자들이었습니다. 사울왕이 승승장구 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고 환경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에서 떠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결과 사울왕과 그 집안에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사람들의 배신이었습니다. 바로 배신과 등돌림, 등에 칼을 꽂는 냄새나고 추악한 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힘냄새를 맡고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면서 철새와 같이 옮겨 다니며 배신을 일삼는 삶, 그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지 않은 육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보셋 왕이 다윗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자들의 배신에 의해서 살해 되는 것을 보면서, 육적 반응으로 배신에 배신을 일삼는 이런 추악한 인간의 모습은 예전 사울 왕가의 모습만이 아니라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의 현재 모습일 수 있음을 성경은 엄중히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보셋왕을 배신하고 살해한 측근은 바아나와 레갑입니다. 왜 측근이 배신한 겁니까? 이스보셋 왕은 이제 힘이 다 떨어진 허우대 왕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죠. 이미 모든 게 기운 사울왕가에서 새로 뜨고 있는 다윗 왕가로 갈아타기 원하는 자들의 배신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침실에서 왕을 살해하고 목을 베어 그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헤브론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보셋 왕을 살해해 죽인 이유는 명확합니다. 다윗 왕에게 가져가 바치기 위해….자신의 왕이자 충성해야 될 이스보셋을 배신하고 측근이 살해해서, 그 머리를 들고 밤새도록 다윗 왕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슨 냄새를 맡았냐면 힘 냄새를 맡은 것이죠. 지금은 다윗에게 줄 서야 이득이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새로운 힘인 다윗에게 줄 서기 위해 잘 보이기 위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철새와 같이 갈아타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측근들이 왕을 배신하고 살해해서 그 목을 들고 다윗왕에게 달려가는 이 모습…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위해서도 아닌, 대의 명분을 위해도 아닌, 자기의 유익을 위해….끊임없이 육적 반응을 하는 인간의 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다윗 왕에게 가서 새로운 힘 아래 붙어서 공로를 인정받아 내가 한 자리쯤은 차지할 수 있겠다 생각했을 겁니다. 밤새 달려가 다윗 왕에게 엎드려 이스보셋의 머리를 바치며 그들의 하는 말을 주목해봅니다. 사울 왕가는 다윗에게 원수였고 그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왔으니 이런 우리를 거둬 주고 칭찬해 주고 우리가 잘 딸랑딸랑 아부할 테니까 자리 좀 달라고…간청하는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두 사람은 그들의 아부에 하나님의 이름도 빌려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와서라도 다윗에게 공로를 인정받아 그 새로운 힘에 줄을 서서 자신들의 인생이 새롭게 펴기를 원하면서 머리를 굴리고 다윗에게 엎드린 겁니다. 그 속내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그들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힘냄새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갖다 쓰는 이 두 사람의 모습이 육적 반응으로 일상화된 인간의 죄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하나님을 의식한 영적 반응에 근거한 판단과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인간적인 판단을 했으면, 정치적인 판단을 했으면 이런 사람들을 당연히 받아주고 거둬 줘야 합니다. 자기 편이 되겠다고 오는 사람을 거두어서 충신이 되게 만들어야죠. 그런데 다윗은 이미 사울 왕의 죽음을 소식을 복된 소식이라 착각하며 가져온 아말렉 전령을 치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육적 반응으로 찾아오는 자들의 내 귀에 듣기 좋은 말들에 흔들리지 않는 거죠 사람들은 힘 냄새를 맡고 오는 철새들이기에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하며 가까이 오는 자들은 다 의도와 목적이 있음을 직시하는 겁니다. 내 생명을 여러 환란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두 사람도 여호와의 이름을 가져왔고 다윗 여호와의 이름을 지금 말하는데 실제로 여호와께 합한 자는 다윗왕이었습니다. 그 입술에서 나오는 고백은 내가 도망자와 환란 가운데 나를 건져주신 하나님…그 여호와께서 지금 내 앞에 살아 계신다는 겁니다. 그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맹세하는데, 내가 하는 결정은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는 인간적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합니다.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온 것은 나에게 기쁜 소식이 아니라 슬픈 소식이고 잘못된 소식이라는 겁니다. 이스보셋이라는 의인을 그렇게 죽이고 내부 고발자로 온 너희들은 악인이라는 것이죠. 그들은 한 자리 찾아오려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베어 다윗 왕에게 바쳤는데 하나님의 이름도 팔아가면서 아부를 했는데 그들의 끝은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 두 사람을 처단하고 손발이 다 잘리는 비참한 모습으로 그 시신을 매어 달았습니다. 나의 생명을 건지시고 구해주신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결정을 하는 겁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믿음을 지키고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는 성도를 통하여 주님은 역사하시고 일하시며 주님께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육적 반응을 하며 나를 통해 이득을 얻기 위해 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높아지고 힘이 좀 생기면 이렇게 냄새 맡는 사람들이 내 편에 서려고 몰려들고, 내 귀에 듣기 좋은 얘기를 하며 나를 흔들 때, 흔들리지 말고 나에게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오늘도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철새와 같은 사람들, 냄새 맡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잘 분별하는 비결은 내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분명히 믿고 내 유익과 득실을 따지기 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늘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내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들을 할 때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근거로 결정하는 다윗의 영성을 본받기 원합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하나님을 의지했던 다윗, 잘 되고 힘이 올라가도 왕이 되어서도 여전히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있었던 다윗, 그렇기 때문에 배신의 역사를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그 나라에 은혜를 부어 주심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바르고 옳은 것을 선택하며 내 삶을 인도하시고 건져 주시는 그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내 마음과 눈이 하늘을 향해 열리고 열리며 내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편에 선명히 서 있는 다윗과 같은 삶을 저와 여러분들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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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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