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4장 말씀을 통해서도 족보의 이야기가 계속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름 중에 유일하게 눈에 확 띄는 한 사람의 이름과 그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바로 야베스의 기도입니다. 아마 역대상에 등장하는 족보는 잘 몰라도 야베스의 기도를 아시는 분들은 많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 야베스의 기도를 가지고 책을 썼는데 그 책이 한국에서 굉장히 유명해진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베스의 기도란 책을 좀 읽어 보면 부제가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라고 되어 있어서,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사서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내 인생에 기적을 경험하는 기도원리로 적용하는 것이 너무 치우쳐 있고 비약되어 있는 내용들이 많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 동의 되지 않는 내용들이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야베스의 기도는 그렇게 책으로 낼 만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족보에 한가운데 유일하게 야베스의 기도가 들어가 있다 생각합니다.
역대상의 기나긴 족보를 통해 사람들의 명단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왜 성경은 의도적으로 이 야베스의 기도를 짤막하지만 소개하고 있는가?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족보 한 가운데 위치한 유일한 기도로서 야베스 개인의 기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도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야베스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도생활이 아니라, 야베스로 대표되는 포로기에 귀향하여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공동체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수고로 낳았다”는 뜻인데 좀 더 직설적으로 번역하면 고통 이란 뜻입니다. 즉, 고통과 고난 속에 태어났다는 것으로, 그 존재 자체가 고통과 고난 그게 바로 야베스라는 의미입니다. 야베스의 이름을 통해 야베스란 개인이 이렇게 고통과 고난 가운데 태어났음을 대표하기도 하고요. 이스라엘 백성의 삶 자체가 바로 고통과 고난을 대표하는 삶이 아닐까 묵상해봅니다. 그 당시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와서 지금 성전을 다시 세우려고 황무지와 폐허 가운데에 서있는 그 이스라엘 백성들 그 삶이 바로 수고로 낳은 야베스, 고통과 고난의 야베스의 모습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민족 자체가 고통과 고난 수고로 나온 그 야베스의 그 모습을 그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이스라엘 공동체 뿐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 또한 이 고통과 고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면 여기저기에 고통으로 얼룩져 있고요 그리고 아픔으로 찌들어 있습니다. 긴 코로나 광야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입술에서 고통과 신음에 소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 자체가 어떻게 보면 고통과 고난이고 우리의 삶 자체가 야베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야베스는 그 모든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랬습니다. 그렇게 고통과 고난 중에 태어난 야베스는 귀하고 존귀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고통과 고난을 대표하며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지만 그는 어떤 형제들보다 하나님의 눈에 귀중하고 존귀한 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헤매며 포로로 잡혀가고 그러다가 지금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려는 그 현장에 그들의 삶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 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이 귀하고 존귀한 자로 서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익숙한 땅을 떠나 지금 폐허인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인생을 던진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의 삶의 고통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눈에 귀중하고 존귀한 자라는 분명한 믿음을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이 지금 야베스의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들이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어 하나님에게 귀중한 자, 존귀한 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그들의 살고 죽는 정체성의 문제였습니다. 폐허인 예루살렘 앞에서 선 이스라엘 공동체가 이렇게 하나님의 눈에 존귀하고 귀중한 백성으로 성전을 재건하게 되는 힘이 원동력, 그 비결이 바로 야베스의 기도인 셈입니다. “내게 복을 주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는 기도를 통해 복을 주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시라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구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복을 주시는 분의 뜻에 따라 주시는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고백, 복은 하나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내가 주님께 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을 때 받는 것이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늘의 복도, 이 땅의 복도 주님께서 주시는 복 이라는 겁니다. 주님이 주시는 만큼 받는게 복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내게 복을 주시는 주님이 복 주시는 분임을 믿으며 주님을 바라보고 매달리는 게 기도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주님의 복은 지경을 넓히며 나를 도와 환란을 벗어나고 근심을 벗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기도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삶의 간구입니다. 자신의 뜻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였고 하나님의 복이 나의 복되게 해달라는 그 간절한 비전을 붙들고 살아가는 거예요. 나의 욕심을 채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복 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내 복으로 알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야베스의 기도이며 그것이 지금 페허와 황무지에서 근심과 환란에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재건이라 사명을 세우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꿈이 우리에게 실현되기 원하며 하나님의 복이 우리의 복이 되기 원합니다….그 하나님의 복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에 복이 되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있는 것이죠. 이 간절한 기도가 야베스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이 기도가 이 시간 저와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되기 원합니다. 고통과 고난으로 점철된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를 귀중하고 존귀하게 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믿음으로 바라보기 원합니다. 모든 복이 주님 손에 있음을 인정하며 주님 앞에 무릎 꿇기 원합니다. 주님의 복이 나에게 임할 때 내가 환란을 벗어나고 근심이 없어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이 나를 도우시고 이끄시기에, 주님의 은혜가 나의 환란과 근심을 덮으시기 때문에….황무지와 페허 가운데 근심이 없어지고 환란을 벗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복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복이 나의 복 되기 원합니다. 주님의 복을 붙들고 이 시간 나의 지경을 넓혀지며 주님이 도우셔서 보이지 않는 나의 성전, 나의 신앙이 다시 재건 되며 나의 삶이 놀라운 은혜로 채워지는 그 야베스의 기도가 우리의 삶의 간증과 고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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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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