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의 감옥에서 분명한 사명감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기에 중보기도가 정말 필요한 사람은 감옥 안에 있는 바울 같은데, 감옥 안에서 감옥 밖에 있는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중보 기도 하며 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합니까? 당연히 감옥 밖에 있는 성도들이 감옥 안에 있는 사도 바울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사도 바울이 감옥 밖에 성도들을 위로합니다. 아마도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 때문에 많은 성도들이 낙심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성도들에게 낙심하지 말라는 거죠. 내가 이렇게 감옥에 갇힌 것은 낙심 거리가 아니라 걱정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도 너희에게도 영광이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신비와 비밀의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 사도 바울이 놀랍게 변했으며 그에게 모든 것을 변하게 하신 그리스도가 사도 바울 안에 분명히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놀랍고 신비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 내 안에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사울은 그 어떤 사람보다 큰 사람이었고 그 어떤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들을 하찮게 보며 정죄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자였습니다. 이방인들은 사람으로도 여기지도 않았고 구원의 가능성은 0%라고 생각했던 자가 바로 과거 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바울은 자기가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가 되는 은혜를 경험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이 송두리째 뒤집어진 것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진 비밀의 경륜이 그리스도의 풍성함으로 드러났고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라는 바운더리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를 부르셨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놀라운 내적인 변화,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나를 바라보는 눈이 변한 겁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놀라운 비밀과 사랑의 수혜자가 되는 것을 이 세상에 전하는 사명자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구약 시대에 동안 여호와의 구원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었고 언약도 이스라엘 안에만 있었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놀랍게도 모든 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모든 복음과 구원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모든 민족에게나 이 구원의 선물이 흘러가게 된 것이고, 이 놀라운 신비와 경륜을 위해 사용하시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방 땅에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이 사명을 위해 세워지는 곳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새로 탄생하며 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역사, 구원 받는 자가 날마다 더하는 역사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라는 걸 사도 바울은 깨달았고 그것을 위해 그는 목숨을 거는 자가 된 것입니다 교회 안에 예전에는 어떤 지역 출신의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들이 있었습니다. 이북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특정한 학교를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어떤 특정한 부를 가지고 어느 수준이 돼야 모일 수 있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복음의 놀라운 가능성을 계속 막는 것입니다. 소통이 단절된다는 건 뭡니까? 귀담아듣지 않는 거예요. 마음으로 듣지 않으면 소통의 단절이 일어납니다. 벽과 담이 차곡 차곡 쌓이게 됩니다.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그 이야기를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마음이 있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내 얘기가 벽에 부딪치지 않고 들리는 곳이 되는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막힌 담을 헐어버리는 비결입니다. 담을 쌓고 나누고 차별하고 서로 공격하고 싸우는 죄의 파괴적 힘이 예수 그리스도 아래서 다 무너져 어떤 것으로도 막히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는 곳이 우리 교회가 되고 우리 가정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사모하기 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획하고 예정된 게 뭡니까? 교회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모든 담들이 녹아지고 허물어지는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에만 갇혀 있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열리면서 교회가 탄생했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담을 끊임없이 허물어뜨리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두려는 모든 시도를 믿음으로 무너뜨릴 때 우리는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며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복음이 모든 열방이 구원을 얻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푸르른 계절이 올 때까지 계속해서 흘려 보내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 안에서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가? 유대인도 이방인도 차별 없이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력을 가지고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안다 그러면 계속해서 우리는 막힌 담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허물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막힌 담이 그리스도 이름으로 허물어져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져야 합니다. 관계를 깨며 원수가 되고 담을 쌓고 살아가는 게 죄의 속성입니다. 죄는 단절과 분열을 늘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는데, 그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온전히 오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담이 무너지며, 부모와 자녀 사이에 담이 무너지는 것 그것이 바로 선교적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국 안에서 이민교회로, 한국 사람들이 한국어를 편하게 쓰는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우리 마음은 늘 선교적으로 이 세상을 향하여 열려 있는 교회가 되어 함께 상속 되고 함께 지체가 되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게 되도록 부르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계속 막힌 담을 허물면서 우리 교회는 부자들도 있고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가방 끈이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들도 있고 저런 사람들도 있고 그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 바로 선교적 교회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어떤 사람도 이방인이 되지 않고 외인이 되지 않고 그리스도 이름 아래 녹아 믿음으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나눠지지 않고,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나눠지지 않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나눠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이며 한 형제자매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함께하시는 역사임을 잊지 마십시오. 교회로서 저와 여러분들이 선명하게 고백하며 살아내는 귀하고 복된 교회를 세우고 지키고 나아가는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4월 2024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