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면서 종종 오해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살면서 한두 번 정도는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거나 억울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나이가 들고 지위가 올라가고 지도자의 위치에 가게 되면 우리에게는 참 말도 안 되는 오해와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되기도 합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일로 오해 받아 억울한 일을 당해 속병을 앓는 경우가 많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오해와 비난을 받게 되는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풀기 원하시는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 가지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배경은 다윗이 전혀 계획하거나 명령하지 않았는데 그 밑에 있는 부하, 군대 장관 요압이 혈기와 복수심에 불타서 다윗과 상의하지 않고 아브넬을 살해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측근 중에 측근이었습니다. 다윗의 마음과 의중을 가장 가까이에서 달고 그 마음을 대변하는 자와 같이 행세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힘을 얻고 왕이 되고 나니까 가까이에 있는 측근들이 사고를 치고, 자꾸 일을 그르치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윗의 명령도 없이 측근인 요압이 사고를 치고 일을 그르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도 아브넬이 다윗왕이 베푼 식사 잘하고 평안히 돌아가는 길에 거짓으로 돌아오라고 전령을 보내서 살해하면서 다윗왕이 큰 어려움과 오해를 받게 됩니다.
다윗왕은 요압이 가까운 측근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넬의 살해 소식을 듣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가까운 측근이지만 입에 담을 수 없는 강한 말로 요압에게 경고와 저주의 말을 합니다. 요압이 사고 치고 일을 그르친 것은 개인의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온 나라의 큰일, 하나님이 이루시는 길을 막고 흔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백성들이 다 아브넬을 살해한 것이 다윗의 명령과 계획이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죽은 것이 나와 내 나라는 하나님 앞에 무죄하다고 딱 선을 긋습니다. 다윗왕이 명령해 가지고 명을 받아 가지고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한 게 아니라, 요압 개인이 복수심을 가지고 사고 친 일이라고 분명한 거리를 둡니다. 문제는 이렇게 다윗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말해도 백성들에게 쌓인 오해는 풀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남 유다 백성들과 특별히 북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믿고 있냐면 이 사건은 다윗이 다 사주하고 명령했으니까 요압이 저렇게 나서서 죽인 것인지…요압이 대신 모든 걸 뒤집어쓰고 저렇게 아브넬을 살해한 것이다…요압 뒤에는 다윗왕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말해도 백성들이 왕의 말을 오해하고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자다가 눈만 뜨고 일어났는데 사람들이 다 나를 향하여 비난하고 다 내 책임이라며 몰아세우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해 받고 억울 할 때 사람들이 믿지 않고 여전히 오해할 때에, 다윗왕은 세 가지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을 발견합니다. 첫 번째 다윗이 한 행동은 아브넬의 죽음을 마음 다해 슬퍼했습니다. 정말 나에게 슬픈 일이라는 것을 알고 아브넬의 장례를 왕이 직접 참여하고 주관하는 국장급으로 장례를 치러 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울 왕이 죽었을 때 다윗이 기뻐했을 거라고 여겼고 다윗의 기뻐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아말렉 전령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의 죽음을 다윗은 기뻐한 것이 아니라 정말 마음을 다해 슬퍼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압은 어떤 생각을 가졌냐면 내가 혈기와 복수심으로 이 아브넬을 죽이지만 결국 동기가 어찌 되었든간에 아브넬을 죽이는게 다윗왕과 이 나라를 위해 분명히 좋은 일이고 다윗 왕은 기뻐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기뻐하기는 커녕 마음을 다해 슬퍼하며 아브넬을 위해서 국장급으로 장례를 치르는 겁니다. 육신이 주도하는 인생과 영이 주도하는 인생의 결정적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다윗이 했던 건 아브넬을 위해서 슬픈 노래 애가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넬을 위해서 국장급으로 치는 것도 충분했지만 다윗왕은 더 나아가 마음을 다하여 아브넬을 위해 애가를 지었습니다. 사울 왕이 죽었을 때도 다윗은 슬퍼하는 것을 넘어 그 사울 왕을 위하여 애곡하며 애가를 불렀습니다. 소리 높여 울었고, 애가를 지어 노래함으로서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있다는 겁니다. 왕이 애가를 부르는 것을 추모의 분위기를 주도하니 백성들이 보면서 백성들도 함께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왕이 눈에 보여주기 위해서 그냥 형식적으로 슬퍼하는 척 하는게 아니라 정말 슬퍼하는구나…라는 것을 점점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다윗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국장이 다 끝났고 애가로 마음 다해 슬퍼했습니다. 온몸과 마음을 다 그렇게 울음을 쏟아내니까 얼마나 배가 고프겠습니까? 그러니까 백성들이 나와서 다윗왕에게 식사 좀 하시라고 권합니다. 그때 다윗왕은 그 식사 마저 거절하는 겁니다. 나는 지금 슬퍼하고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는 겁니다. 자기를 변호하고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혼자 말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기 위하여 반복된 진심 어린 행동을 하는 겁니다. 이런 반복된 진정성 있는 행동을 통해 어떤 결과가 드러납니까? 남 유다 백성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쌓인 오해가 풀렸다는 거예요. 다윗에 대해서 별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북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윗의 진정성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억울하게 오해를 당했을 때, 자기를 변호하고 끝난 게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마음을 다해 백성들과 소통하며 그 놀라운 은혜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백성들의 마음이 녹고 오해가 풀렸으며 더 나아가 백성들의 마음을 얻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이 나중에 통일 왕국의 왕이 되는데 초석이 되었습니다. 열심보다 먼저 가야 되는 것은 진심입니다. 진심 없는 열심은 나를 망가뜨리고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그렇기에 오해와 억울함이 있을 때 스스로 변호하고 나는 잘못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적극적으로 반복적으로 나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행동을 지속하면 오해가 녹는 기적이 열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오해를 진정성을 가지고 푸는 법을 아는 사람이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품는게 아니라 나를 싫어하고 별로로 여기는 사람들도 품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하며 그들의 마음을 녹이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이런 소통의 능력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임을 믿습니다. 쌓인 오해들이 진정성 있는 소통을 통하여 녹아지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이런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현재형으로 경험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March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