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보다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민감하며, 이익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감정이 확 쏠리는 민감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겉으로 봐서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사실 그것은 포장지인 경우가 훨씬 더 많고 더 본질적으로는 내 이익과 불이익의 감정과 훨씬 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익과 불이익을 통해 나에게 감정이 확 먼저 들어오고 거기에 이성과 논리라는 것을 끼워 맞춰가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내 이익을 지키는데 아주 천재적이 재능이 있으며, 반대로 내가 불이익을 당하면 거기에 내 감정이 확 몰입되는 존재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익과 불이익에 따라 감정이 확 몰입되어 혈기를 따라 살아가는 두 사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사울 왕가의 군대 대장이었던 아브넬과 다윗 왕가의 군대 대장인 요압입니다. 이 두 사람이 움직이고 결정하고 나아가는 모든 것들은 이성과 논리로 포장된 자기의 이익과 불이익에 모든 감정들이었습니다. 자신의 권력욕과 이익을 위해 허수아비 왕을 세워놓고 모든 실세를 누리는 아브넬, 자신의 복수를 위해 다윗의 말을 듣지 않고 몰입하는 요압은 저와 여러분들의 영적 현주소일 수 있음을 직시하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아브넬이 다윗을 찾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 이유는 아브넬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며 온 게 아니었습니다. 아브넬이 다윗에게 온 이유는 자신의 이익에 근거한 감정과, 허수아비왕 이스보셋에게 감정이 폭발해서 혈기로 다윗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찾아와 다윗에게 놀라운 제안을 하는데 다윗이 통일왕국의 왕이 되는데 협력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아브넬의 입에서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미 하신 말씀임을 고백하는 겁니다. 그는 오래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었는지 알았습니다. 아브넬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다윗에게 있다는 것을 오래 전에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누리기 위해 오랫동안 그것을 모른 체하고 불순종해 왔던 것이죠. 죄는 모르고 짓는 죄가 있고 알면서도 짓는 죄가 있습니다. 모르고 짓는 죄보다 알면서도 죄를 지는 것이 죄가 중한 것입니다. 자신의 뜻과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 그것을 모른 체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하나님을 뜻을 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해 이루어 지기를 원하기를 사모하며 나온 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포장지로 자기의 혈기와 감정을 정당화하는 도구 삼아 나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아브넬의 결정적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군대장관인 요압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브넬과 결은 다르지만 패턴이 거의 동일한데 바로 자신의 복수심의 감정에 몰입하여 큰 일을 그르치는 문제입니다. 다윗은 아브넬이 찾아온 것이 그냥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가운데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 가고 있구나…다윗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차곡차곡 퍼즐이 맞춰가고 있다는 다윗은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의 실세인 아브넬을 잔치를 벌이면서 아주 잘 환대합니다. 그리고 축복하면서 평안히 돌아가게 배려합니다. 그런데 이런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요압은 크게 분개했습니다. 요압이 전쟁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자신의 철천지 원수인 아브넬이 이곳까지 왔는데 다윗왕이 그 사람을 죽이지 않고 심지어 잔치를 배설하고 평안히 돌려보냈다는 것을 들은 겁니다 요압은 다윗왕 앞에 나아가 아브넬을 그렇게 돌려 보낸 것이 잘못된 것이며, 아브넬은 왕을 속이려 온자라고 간언을 합니다. 겉으로 봐서는 굉장히 요압이 충신과 같이, 나라를 생각하고 왕을 생각하며 하는 말 같습니다. 근데 요압이 이렇게 강하게 다윗왕에게 말하는 이유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도 아니고, 다윗왕을 위한 마음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하여 이루어 지기를 원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요압이 어떤 동기로 움직이고 어떤 동기로 다윗에게 말하고 있습니까? 다윗왕을 향한 충성심이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같은 거, 전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어떻게 포장했을지 모르나 지금 요압이 하는 모든 것은 개인의 원한이며 적개심이자 복수심이었습니다. 그가 지금 다윗에게 나와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자기 마음에 불타고 있는 복수심 때문입니다. 원수 아브넬을 죽이려는 복수심에 모든 마음을 쏟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이 그를 강하게 이끌고 있고 적절하게 이성과 논리로 포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이 육적으로 자기 감정에 휘둘리며 자기 혈기로 일하게 되면 일을 그르치게 되고 결국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압이 그렇게 다윗왕에게 자신의 생각을 직언하는 것을 넘어 왕명 없이, 상관의 명령없이 자신의 혈기로 일을 추진하고 결정하는 일이 등장합니다. 그게 뭐냐면 다윗의 환대를 받고 평안히 돌아가고 있는 아브넬을 사자를 보내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타오르는 복수심에 불타 다윗왕의 명 없이 요압이 스스로 명을 내려서 일을 추진하고 그렇게 돌아온 아브넬을 비참하게 죽이게 됩니다. 아브넬은 교만해서 왕을 허수아비로 세웠던 자입니다. 그 결과 그는 이렇게 비참하게 칼에 찔려 죽게 되며 자신이 교만함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요압은 하나님의 뜻이나 왕의 명령이 아닌 자기의 혈기와 복수심에 불타 모든 것을 어긋나게 만들며 대사를 어렵게 하는 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복수심에 사로잡히면 모든 것을 죽여야 되겠다는 감정이 자기를 이끄는 것입니다.이것을 통하여 동족인데 서로 원수가 되어 결국 복수가 복수를 낳고 원수가 원수를 낳고 자기 동생을 죽인 원수를 자기는 죽이고 결국 요압도 나중에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렇게 물고 물리는 세상 가운데 서로와의 복수심과 감정에 사로잡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붙들고 살아가는 삶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거룩하고 구별된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을 이끌고 있는 힘이 무엇입니까? 이런 통제되지 않는 감정이나, 복수심이나 분노, 혹은 나의 이익이나 불이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입니까? 내 마음을 이끌고 내 삶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복수심과 같은 감정이 되지 않도록, 이익이나 불이익에 대한 반응이 되지 않도록 이 시간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이렇게 이익과 불이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감정을 포장하기 위해 이성과 논리를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말씀 앞에 직시하기 원합니다. 말씀이 내 삶에 온전히 임하여 말씀이 나를 이끌고 말씀이 나를 멈추게 하며 말씀이 나를 결정하게 하는 그 놀라운 은혜 가운데 살아가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나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고 움직이게 하며 나를 결정하게 하는 그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 말씀이 나를 붙들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도록 꼭 붙어 있어 주님의 은혜 가운데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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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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