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는 로마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못해 로마 문화에 젖어 살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힘과 권력이 주는 Pax Romana를 이상으로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황제의 힘과 권력을 가장 중요한 선이라고 생각하며 추종하며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 문화에 젖어 익숙하게 살아가고 있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그런 비슷한 문화에 젖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고 부활의 권능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힘과 권력을 추종하게 되는 본질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이곳에 정신을 다 쏟아 놓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서 끝을 내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서의 삶을 끝낸 후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죽으심 이후에 부활의 권능이 있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음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언젠가 끝일 텐데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의 권능이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즉 죽고 난 후에 우리에게 부활이 있고 예수님은 그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 예수님의 핏공로로 말미암아 그 부활의 함께 동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딱 찾아오시고 나의 영의 눈을 열어 주시면 나의 삶에 영적인 큰 시야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그 천국을 실체로 믿고 보게 되는 것이고 내 삶이 이 세상에 잠시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그 주님의 큰 그림 가운데 깨닫게 되는 겁니다. 내 인생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이 세상에 100년 정도 보냄을 받은 자, 파견 나온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에 100년 정도 잠시 보내신 이유는 그 주님의 뜻을 이루고 주님 뜻이 열매 맺는 명을 받아 온 것을 믿고 파견 받은 기간 동안 그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이 세상 너머에 있는 그 영원한 천국을 실체로 바라보며 죽음이 우리에게 종착역이 아니라 환승역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사후 준비를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히 하며 살아가는 자 그게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함께하는 자입니다 죽음 이후에 그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함께 참여함을 믿기에 동시에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한다는 건 로마로 상징되는 이 세상과 다른 길을 가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면 우리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이 있고 영생이 있고 하나님이 실체하심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라고 생각하며 물질 가치를 모두라고 생각하며 힘과 권력의 Pax Romana가 인생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흐름과 가치관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역행 하며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며 살아가는 깨진 세상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뜻과는 방향을 반대하며 하나님에게서 거스르는 것이 극대화 된 것이 로마 시대의 문화이며 가치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거스르고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 이 세상과 문화 속에서 죽음 이후에 영생을 확신하며 그 부활의 권능을 믿기에,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예수님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진짜를 보면서 우리 삶이 어디로 가는지를 정확하게 알며 주님과 동행하며 이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함께 참여하게 되는 그런 삶을 사도바울은 예수님께 잡혔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께 잡힌 삶이란 예수님께 사로잡힌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자라고 고백합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들을 사로잡는 분이 계시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성도들은 그분에게 사로잡혀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고 복음적 질서를 가운데 두고 살아가는 자입니다. 예수님에게 사로잡힌 성도들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간다”고 고백합니다. 즉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채 앞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하여 달려가는데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그 부르심에 따라 그 명을 이루고 뜻 가운데 살다가 하나님이 때가 되면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때, 본향에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부름의 상입니다. 하나님의 명에 따라 그것을 위하여 뒤를 돌아보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걸어가지 않고 달려가는 인생, 그 명확한 삶이 바로 사도 바울의 삶이었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들 또한 이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부르심으로 걷지 않고 달려가는 자들입니다. 길지 않은 이 세상 에서의 삶, 비본질적인 것이 아닌 본질적인 것에 나의 인생을 두고 나의 인생의 가치를 두고 예수님이 맡기신 그 명을 따라 푯대를 바라보며 주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해 열매 맺는 것을 열망하며 뛰어가는 인생,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며 달리는 인생 살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 인 줄 알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을 착각하고 살아가는 그 삶에서 건져 내셔서 나를 온전히 사로잡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에 함께 동참하기에,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영생이 있음을 분명히 선명히 믿으며 주님께서 맡기신 그 푯대를 향하여 예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십시오. 이 시간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그 은혜 가운데 부르심을 향하여 그 상을 기대하며 오늘도 앞으로 힘있게 달려 나가는 인생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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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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