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해서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데 오늘은 다윗의 기도에 대해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시편의 많은 부분은 바로 다윗의 기도입니다. 특별히 오늘 시편 3편은 다윗이 인생을 살아가며 가장 위기이자 어려운 때, 참담한 상황에 놓였을 때 쓰여진 탄식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은 그 인생 자체가 평탄하지 않은 광야를 통과한 삶이었고, 젊은 시절 사울왕으로 인해 도망자로 10년 넘 광야를 전전하며 광야에서 연단받고 훈련받았습니다. 그런데 시편 3편에 등장하는 광야 생활은 그때와는 비교되지 않게 더 어렵고 힘들고 참담한 상황인게 광야로 쫓겨났다는 것도 어렵지만 쫓겨난 이유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배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광야로 두 번째 쫓겨 갔다는 것도 참담하지만 예상하지도 못한 아들의 배신과 반란으로 광야로 쫓겨난다는 것은 정말 고개를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며 참담하고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압살롬이 혼자 일을 벌인 게 아니라 그 아들과 합세해서 자기 등에 칼을 꼽는 신하들이 그렇게 많았던 것이죠. 몇 달 전까지 몇 주 전까지 나한테 충성을 다할 것 같았던 그 신하들이 갑자기 나의 등에 칼을 꼽는 배신자가 되어 아들과 합세하여 자기를 쫓아내는 이 말도 안 되는 참담한 상황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지만, 가장 정말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것은 가까운 사람들이 배신하는 어려움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배신해서 내 등에 칼을 꽂으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다 잃어버리고 사람들 자체에 대해서 혐오를 느끼게도 됩니다. 자기 아들을 자기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배신했는데 자기를 배신하지 않을 자가 누구인가… 생각하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죠. 이런 절박하고 참담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고 광야로 도망가면서도 배신의 분노로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경험하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참담한 가운데 다윗이 했던 것은 무엇인가 하면 그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으로서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그의 삶이 대단하고 완벽하고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는 인생이 잘나갈 때도 하나님을 붙들고 부르짖었고 인생이 이렇게 바닥을 치고 있을 때도 하나님을 붙들고 부르짖는 기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담한 상황과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부르짖는 기도를 하게 했다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는 삶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별히 시편 3편의 다윗의 기도를 부르짖는 선포의 기도라고 합니다. 그동안 배웠지만 기도에는 어려 종류가 있는데, 부르짖는 기도, 눈물을 쏟는 통곡의 기도, 서원하는 기도등이 있는에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기도는 선포의 기도입니다. 인생의 가장 참담한 상황과 불가능의 상황에서 다윗이 드린 선포의 기도가 왜 중요한가에 대해서 세 가지로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번째로 선포의 기도는 나를 깨우는 아주 강력한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강력한 능력이 있냐면 내가 상황 중심으로 내가 압도당하고 거기에 빠져들지 못하게 하는 기도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정말 어렵고 참담한 상황에 빠지게 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러지 않습니까? 눈앞이 캄캄해진다 건 내가 상황에 매몰되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다윗도 눈앞이 캄캄해져서 내 주변에 대적들만 많아 보이고, 사람들이 나를 대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귀에 들리는 말은 뭐냐면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하나님도 포기한 사람이다…이런 소리만 들립니다. 선포의 기도는 이런 내 영혼을 깨워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입술을 통해 믿음으로 선포함으로써 이렇게 상황에 압도당하는 내 영혼을 깨우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기에 말씀은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적어도 여러 일곱 개 정도의 선포 기도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 나오는 선포가 뭡니까? 여호와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다! 지금 다윗의 처지는 아들에게 배신 당하여 쫓겨나가는 도망가는 참담하다 못해 고개를 들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 못드는 다윗의 머리를 드리는 여호와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머리를 들어주시는 분이다…이것을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느껴져서 선포하는게 아니라 내가 그것이 믿음으로 취해야 되는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선포 기도는 눈앞이 캄캄해진 나를 깨어나도록, 나를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각성시키는 은혜가 있다는 것이죠. 두 번째 선포의 기도는 내 삶에 염려와 두려움을 밀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상황에 압도당하고 참담한 상황이 되게되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걱정과 근심이 쓰나미와 같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걱정과 두려움은 내 상황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사로 잡힌다고 어차피 불가능한 상황이 해결되지 않아요. 걱정을 밤새 해 가지고 상황이 변하면 밤새 두려워하고 염려하면 됩니다. 그런데 밤새 두려워하고 염려해 그 불가능한 상황을 변화시킬 능력은 어차피 없는 겁니다. 내가 그 감정이 압도 당하면 내 마음만 갉아먹는 것이지 그 걱정과 두려움이 내 상황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사단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백해 무익한 두려움과 염려를 내 마음에 계속 심기웁니다. 사단이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염려와 두려움의 씨를 뿌리는 이유는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기도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걱정이나 기도, 두려움이나 기도는 둘 중에 하나를 하는 것이지 염려와 걱정 두려움을 붙들면서 기도가 동시에 나오지 않습니다. 선포의 기도는 염려와 두려움을 밀어내고 염려와 두려움은 기도를 밀어낸다는 것입니다. 선포의 기도가 두려움과 염려를 밀어내게 하든지 내 두려움과 염려가 기도를 몰아내고 밀어내게 하든지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이 어려워지면 당연히 두려움과 염려가 기도를 밀어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잠수를 타고 교회도 안 나아오고 신앙생활을 다 접어버리고 그냥 하나님을 피해 숨어버립니다. 선포의 기도를 통하여 염려와 두려움을 밀어내는 이 놀라운 역사를 주님은 경험하기 원하시지, 우리가 염려와 두려움이 기도를 밀어내고 물러가게 하는 역사를 경험하게 원치 않으신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뭐냐면 선포 기도의 능력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깨우기 위해 선포하는 거예요. 염려와 두려움에 계속 밀려오는 상황 가운데 있으니까 내 염려와 두려움을 밀어내기 위해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선포기도의 능력은 상황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처한 상황을 바라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윗의 선포 기도에 항상 강조가 어디 있냐면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에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다… 여호와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상황에 압도당하고 상황 자체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다윗이 상황을 하나님 중심으로 바라보는 기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계속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인생을 바라보도록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인생이 어렵고 참담한 상황에는 바로 상황 중심으로 돌아가도록 모든 것을 바꾸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겁니다.그런데 선포의 기도는 이런 나를 깨워서 상황 중심에 매몰되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고 진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이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순종하며 여러분들이 기도하시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가진 특권은 어떤 상황에서 내 목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특권입니다. 부를 수 있는 여호와의 이름이 있고 부르짖을 수 있는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천만인이 나를 진치고 대적하는 것을 눈에 보이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현실은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그걸 넘어서서 두려움이 밀려가는 것이 영적 현실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게 이처럼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깊어진다는 것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게 많이 없다는 것을 절박하게 고백하며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여기까지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죠. 선포의 기도를 통해 내 마음에 정말 두려움이 밀려가는 경험, 천만인이 나를 지쳐도 내 삶에 두려움이 밀려가는 그 역사를 체험하기를 사모하기 원합니다. 믿음의 선포로 상황 중심으로 상황을 보는게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기적, 말씀을 붙들고 말씀을 내 자신에게 선포하는 기도로 강력한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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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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