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사무엘상의 마지막 결론으로, 사울왕과 그 가문에 비극과 파멸입니다. 어느정도 끔찍한 비극으로 비참하게 끝났냐 하면 사울 왕과 그 세 아들이 모두 전쟁터에서 한 날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다 성읍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사울왕의 머리가 베어졌습니다. 그의 갑옷이 다 벗겨졌습니다. 그의 갑옷은 그 당시 블레셋의 신전인 아스다롯에 전시품이 되었고, 사울왕의 시체를 성벽에 못박아 모든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능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울 왕과 그 가문의 비참한 멸망이 아니라 거의 이스라엘 백성과 공동체의 비참한 비극임을, 그 원인은 본질적으로 불신앙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에게 철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 선지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와 똑같이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 달라고 그렇게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불충분하고 눈에 보이는 하나님만 붙들고는 못 살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 같이 든든한 눈에 보이는 왕이 있어야 살겠습니다…라고 그렇게 강력하게 요구했고 결국 사울왕을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원한 눈에 보이는 왕을 세운 결과가 바로 비극과 파멸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정한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절하고 눈에 보이는 사람을 왕으로 세운 처참한 결과가 이렇다는 것을 무섭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우리는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동일한 불순종을 합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붙들고 예수님만 왕으로 모시고는 못살겠습니다. 그걸로 나는 불충분합니다. 예수님 말고 눈에 보이는 내가 붙을 수 있는 무언가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나에게 왕으로 세워 달라…요구하고 조릅니다. 말씀이 불순종이라고 경고하고 성령 하나님이 탄식하심으로 경고해도, 끊임없이 우리는 예수님 외에 다른 왕들을 계속 세우려고 합니다.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것을 붙들고, 그것이 나에게 마치 왕인 양 나의 전부인 양 붙들고 올인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 인생의 끝은 비극과 파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적 싸움이라는 것은 결국 눈에 보이는 것을 내 중심에 두고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한 약속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중심에 모시고 왕으로 붙들고 살아가는가에 싸움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울왕과 그 가문,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극적인 이야기로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맨 끝에, 사울왕의 비극과 파멸의 이야기 맨 마지막에 길르앗 야베스 백성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꼭 부록과 같이 등장하는데 이 길르앗 야베스 백성의 이야기가 주는 중요한 영적 지혜가 있습니다. 이들은 사울이 왕 됐을 때 암몬 족속으로부터 소위 말하는 협박을 당하게 됩니다. 암몬과 싸울 능력이 없는 지라 길르앗 야베스는 처음부터 우리는 항복하겠다고… 우리가 종 되겠다고 두 손 들었습니다. 그런데 항복을 선언했으면 싸우지 말아야 되는데 항복했는데도 밀고 내려오는 겁니다. 항복해도 너희들 내가 다 죽이겠다는 것이고 멸절 하겠다는 겁니다. 그때 사울왕이 거룩한 의분을 가지고 부하들을 설득해서 불의한 백성과 싸워 길르앗 야베스 백성을 구원시켜 주었습니다. 그게 사울왕 초기에 하나님의 기쁨 되는 일을 한 몇 가지 업적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많이 지났고 사울왕은 영적으로 타락하고 무너져서 이렇게 비극적으로 파멸하고 끝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길르앗 야베스 백성들이 듣게 된 겁니다. 그 비극적 파멸의 소식을 듣고 길르앗 야베스 백성들은 사울왕에게 진 은혜와 빚을 갚은 놀라운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울왕의 비극을 듣고 그들이 한 행동이 뭐냐면 먼저 일어나서 밤새도록 블레셋 적진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 벽에 걸려 못 박혀 있던 사울왕의 시체를 수습해 돌아와서 불태워서 장사하고 7일을 슬퍼하며 금식 했다는 거죠. 블레셋 적진의 땅에 들어가서 시신을 수습해서 훔쳐 온다는 게 목숨을 걸어도 하기 힘든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울 왕에게 입었던 은혜를 기억하며 목숨 걸고 성벽에 못 박혀 전시된 사울왕의 시신을 수습해 오고 장례 치른다는 것으로 사무엘상이 끝나는 겁니다. 사울왕의 그 비극적 이야기에 조그만 희망의 불씨를 심겨 두시고 사무엘 하로 들어가게 하신 겁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만나고 바라보는 몇 가지를 보고 나면 그냥 쉽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그냥 책을 덮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가지의 상황이 스캔되면 이거 끝났다…다 망했다…나는 다 죽었다…우리 집은 끝났다 내 사업은 끝났다… 쉽게 결정 내리고 쉽게 다 포기하고 끝내 버리고 싶어 합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우리 마음은 항상 문제와 어려움을 과장하고 부풀리어 낙심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기 쉽습니다. 객관적이라고 스스로 착각하지만 사실 우리의 눈과 마음은 늘 주관적입니다. 늘 절망적이고 안 되는 쪽을 더 강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을 붙들며 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전부라고 바라보면서, 절망과 낙심을 마음 속에 가득 채운 채 살아가기 쉽습니다. 내 눈에 소망이 보이지 않으면 나타나는 현상이 뭐냐면 눈에 보이는 현실에 내 마음을 다 빼앗기게 되는 겁니다. 소망의 눈이 가려지면 우리의 마음은 현실에만 지배 받게 됩니다. 물론 눈에 보이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실은 중요하고 직면해야 되지만 현실 밖에 보이지 않는 인생은 비참한 인생입니다. 나의 눈이 소망이 없이 현실에만 매몰되게 되면 당연히 내 삶이 땅의 문제에 목숨을 걸고 매몰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내 삶이 끌려 다니며 이리저리 치이며 살게 됩니다. 그 실패와 낙담만이 가득한 그 상황 속에서 내 눈을 들어 보게 되면 절망과 탄식만이 가득하고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끝난 게 아니라 그 끝난 절망 가운데 하나님의 희망의 불씨가 여전히 남겨져 있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선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절망을 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붙들기 원하시는 은혜가 뭐냐면 내 눈에 보기에 다 끝난 거 같은데 내 눈에 보기에 전혀 소망이 없는 것 같은데 하나님은 작은 소망의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도록 초대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사라진 그 절망의 상황 가운데 항상 소망의 불씨를 살려 두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절망 가운데 우리 눈이 집중돼야 되는 것은 바로 그 작은 소망의 불씨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사울왕의 죽음의 현장에서 꺼지지 않는 소망의 불씨가 그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 현실을 넘어 주님이 주시는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가 되기 원하십니다. 이 세상만 바라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매몰되지 않고 다가올 세상이 있음을 믿으며 천국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지배당하지 않게 하시며 주님이 심겨 주신 소망을 바라보고 붙드는 성도가 되시기를 사모하십시오. 땅에 속박과 땅의 현실을 뛰어넘어 하늘의 현실을 소망으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하늘로부터 공급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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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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