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내 믿음이 말씀과 조율되어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내 마음과 삶에 새기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 성경적이지 않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두 가지 개념을 말씀으로 재정의 하기 원합니다. 첫번째는 솔로몬은 초창기에는 하나님께 온전히 합한 왕이었는가? 에 대한 질문이고, 두번째는 일천번제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둘 다 우리 나름의 생각으로 정의가 되어 믿고 있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 성경적으로 분명한 재정의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하는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굉장히 사랑하신 왕이자 하나님께 합한 왕이라 여깁니다. 마지막에 가서 정신을 못 차리고 좀 어려워진건 분명하지만 적어도 초창기에는 굉장히 좋았고 신실했다고 믿습니다. 솔로몬이 굉장히 초기에는 하나님께 합한 좋은 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것과, 성전을 지었기 때문에 굉장히 좋게 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솔로몬을 초창기부터 분명한 문제가 있는 왕이었음을 분명히 증언하며 가감없이 그의 심각한 영적 변질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심각하게 지적하는 문제는 솔로몬의 결혼 문제입니다. 솔로몬은 지금 왕이 된지 얼마 안 되는 초창기입니다. 그런데 이집트의 왕 바로의 공주와 결혼한 겁니다. 바로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오늘 말씀 맨 처음에 증언하는 것은 이 부분을 성경은 매우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집트, 애굽은 바벨론과 함께 항상 하나님을 대항하는 나라로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굽은 돌아가면 안 되는 나라로 떠나야 하는 나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 기근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피신 간 것이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는 것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바로 왕의 딸을 사랑해서 연애 결혼했다 이런게 아니라 분명히 이것은 정치적인 관계로 그 정치적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 결혼한 정략 결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강대국이었던 이집트와 친족이 되어 이스라엘의 관계성을 쌓으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큰 도움을 받겠죠. 그래서 정치적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안정적으로 강력한 나라가 될 수 있는가를 그 당시 강대국과 결혼하는 것을 통해 이어가려고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바라보고 의지하며, 동시에 머리를 굴리며 정세를 살피며 강대국을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심각하게 증언하고 있는 겁니다.결국 솔로몬은 이것을 처음으로 시작해서 앞으로 수백 명의 부인과 후궁들을 데려오는데 그런게 대부분 사랑과는 거리가 먼 정략적인 결혼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나라의 안정와 정치를 위해서 그렇게 했지만 그게 결국 이스라엘 나라를 분열되게 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다 변질시키는 큰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맡기신 자리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왕, 하나님 지혜와 은혜를 구하는 왕이 되었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 처럼 보였지만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았던 겁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하나님이 맡기시고 세우신 왕의 자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되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사는 나라인데 강대국의 나라를 의지하며 강대국의 힘을 통한 안정을 추구하는 그 생각이 솔로몬을 망하게 하는 비결이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변질시키고 무너뜨리는 지름길이 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말씀은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은 초기부터 하나님 앞에서는 심각한 영적 변질과 왜곡이 있는 왕,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믿고 의지하는 데서 이미 돌아선 안타까운 왕이라는 것을 성경은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솔로몬에게 분명히 잘한 일과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기부터 하나님만 붙들고 의지하는데 실패한 왕으로 시작하게 되는 겁니다. 강대국을 통해 보험을 들고 강대국을 의지하며 나아가면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신앙을 버리게 되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인 거룩하고 구별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이 세워 주시고 맡기신 왕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실패한다, 이것이 솔로몬의 초기부터의 평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 좀 바뀌어져야 되는게 바로 일천번제 입니다. 솔로몬이 제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어떻게 잘못 읽냐 하면1000번의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이 그 정성에 감동 하셨고 그로인해 솔로몬이 원하는 복을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천 번제가 아니라 일천번 제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간절한 기도 제목이 있을 때 하나님께 헌금을 천번 드리는 정성과 간절함으로 기도하는게 일천번제로 이해하는 겁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천번의 간절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그 정성의 감동하셔서 마음이 열려서 내가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신다…믿는 것입니다. 그 간절함과 정성으로 하나님께 천 번 드리는게 나쁘고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그게 오늘 말씀에 증언하는 일천번제의 헌금은 아니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는 1000번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 아니라 천 마리를 한꺼번에 태워 드린 제사였습니다. 그러니까 1천 번을 드린 게 아니라 1천 마리의 재물을 한꺼번에 드렸다는 것이죠. 그만큼 솔로몬은 모든 것을 드려 전심을 다하여 한 번에 그 모든 것을 드리는 일천 번제로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렇기에 일천 번제를 내가 천번 헌금 드리니까 천번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내 정성을 가륵히 보시고 은혜를 특별히 부어 주신다는 거는 내 개인적인 간증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오늘 말씀에서 의미하는 성경적 의미의 일천 번째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천이라는 숫자는 그 당시 동물을 셀 수 있는 가장 큰 단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꺼번에 천마리를 태워 하나님께 드린다는 일천 번제는 왕으로서도 내 전부 왕으로서 나의 최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드린다는 고백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과 같이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제사가 바로 일천번제입니다. 일천 번제의 정신은 가장 큰 숫자의 동물을 드리면서 내 귀한 것을 모두 주님께 드리는 순전한 마음 주님을 향한 마음을을 주님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드리는 고백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간절한 기도와 소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드린 제사가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온전한 감사와 찬양의 제사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드려진 일천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 그 자체로 드린 일천 번제에 하나님께서는 반응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천 번제를 드릴 때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온전한 주님을 향한 마음 주님을 향한 전심이라는 것이죠. 그 솔로몬의 주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과 전심에 하나님이 반응하신 것이지 그 많은 횟수를 통해 정성을 보고 하신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에 대해서 환상을 갖지 말고 정확하게 초창기부터 드러난 그의 영적 문제가 뭐였는지를 지적하는 말씀을 마음에 담기 원합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데 늘 도전되는 삶을 매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솔로몬과 같이 자꾸 하나님만 사랑하는게 아니라 하나님도 사랑하며 강대국을 겸하여 사랑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게 아니라, 하나님도 의지하며 강대국을 겸하여 의지하려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한다 말하며서, 강대국에 자꾸 보험을 들려하고, 세상도 사랑하면서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만 의지하는데 결국 어려움이 된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머리 굴리고 계산하는 신앙,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이렇게 주시겠다는 그림과 계산을 내려 놓고, 순전히 하나님이 좋아서 하나님께 감사해서 나의 중심을 드리는 예배, 나의 전심과 온전함을 드리는 일천번제의 정신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회복되기 원합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 최상의 것 온전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게 바로 일천 번제의 정신임을 잊지 말고 내가 드리는 오늘의 예배, 내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 나의 중심을 드리는 온전한 헌신이 되어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보험 들려고 하는 이런 두 마음이 우리에게 있음을 경계하며, 일천 번제의 정신으로 늘 주님 앞에 순전하고 온전하게 내 마음을 드리며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성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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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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