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장 말씀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소망 없는 인생의 쓴맛과 쓴 뿌리가 올라오는 마라의 삶, 절망의 삶의 자리였습니다. 2장 말씀은 그 절망과 쓴물이 올라오는 인생을 하나님이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우연히 우연을 가장한 섭리와 같이 보아스를 통해 기대하지 않은 놀라운 은혜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보아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빛이 이 두 여인들에게 비춰주고 있는 것이죠. 3장 말씀은 그 은혜의 통로인 보아스를 붙드는 믿음입니다. 그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 해주시는 사건이지만 동시에 그 은혜를 붙드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함을 3장 전체에서 보게 됩니다.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오늘 말씀에서 나오미에게 처음으로 시어머니라는 호칭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룻기 1-2장에서 이민 생활을 접고 돌아와서는 거의 나오미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로 계속됩니다. 그러다가 3장 부터 시어머니라는 호칭이 등장하면서부터 나오미가 아주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되죠. 룻의 시어머니로서 룻을 중매 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전면에 등장하는 말씀이 바로 3장 말씀입니다.
나오미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딸과 같은 내 며느리 룻에게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고 너를 복되게 하여야겠다.”는 말을 깊이 묵상하기 원합니다. 그동안은 룻이 나오미의 든든한 버팀목과 안식한 곳을 제공하며 소위 말하는 봉양을 잘한 거죠. 정말 딸 이상으로 과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정말 잘 하며 룻이 나오미의 안식할 곳과 기댈 곳이 되어 준 거에요. 룻에게 이제는 안식처와 기댈 곳을 찾아주고 너를 복되게 하는데 내가 앞장서겠다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룻을 복되게 하는 삶이란 룻을 위하여 안식할 곳을 찾아주는 것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복 되게 되는 삶이란 안식할 곳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품 안에서, 그 날개 아래서 쉼과 안식을 분명히 누릴 때 복 된 것입니다. 이 세상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넘어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분명히 믿으며 나그네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복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 때 복 없는 인생으로 살아가는 이유, 복을 누리지 못하는 본질의 이유는 우리가 안식할 곳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할 곳은 목자의 그 울타리 아래,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인데, 그 품을 떠나서 안식과 쉼을 잃어버린 영혼들이 그렇게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복되지 않고 방황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보았을 때 지금 룻에게 안식할 곳이 어디냐 바로 보아스의 품 안에 거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지금 중매 하는 겁니다. 과부인 룻은 직장을 가질 수도 없고 땅을 가지고 있어도 소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그 안식을 되찾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아들을 얻어서 그 아들의 이름으로 이 모든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보아스가 그 기업을 물려줄 수 있는 친족이자 안식 할 곳을 줄 수 있는 은혜의 통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 무를 자 보아스를 통하여 룻이 잃어버렸던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되찾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안식을 누리며 복을 누릴 수 있는 통로가 열려가고 있다는 것을 나오미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날씨가 너무 더운 이스라엘 땅에는 보리 타작을 해가 지고 나서 합니다. 그럴 때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마치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와 같이 준비하고 있으라고 조언합니다. 신랑을 간절히 기다리는 신부와 같이, 은혜를 간구하고 간절히 기다리는 성도들은 은혜를 이렇게 붙드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신랑 되신 예수님의 그림자로, 은혜를 베푸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등장하며, 그 은혜를 붙들기 위한 간절한 태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붙들어야만 마라 같은 인생에서 건짐을 받아 살고, 그 은혜 안에 머물러야만 나에게 참 안식과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붙들어야 된 이스라엘의 회복,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원의 은혜를 붙드는 믿음의 모습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기대고 쉴 품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엄마 품을 잃어버리고, 기댈 아빠 품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고, 안식한 하나님 날개 품을 잃어버린 채 쉼과 안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복되지 않은 이유는 가진 게 적어서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것을 덜 쌓아서도 아니라, 이 시간 내 삶의 안식할 곳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쓴 물이 올라오는 마라 같은 우리 인생에 나를 위해 안식할 곳을 구하며 복되게 하기 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나의 인생의 진정한 안식할 곳은 아버지의 날개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품 안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고 우리의 몸이 기억하는 엄마와 아빠 품, 하나님 품이 있음을 분명히 믿을 때 그 인생이 복 된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하며 그 분 가운데 안식함으로 내 인생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 진정한 복된 삶이 시작됨을 믿으며, 그 은혜를 믿음으로 취하며 붙들고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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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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