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죽지만 사실 죽는다는 것을 나에게 찾아오는 분명한 현실로 아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인생의 진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언젠가는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순간에 주님이 부르시면 누구도 예외 없이 떠나야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인 것이죠. 사무엘이라는 굵직한 영적 거장이 하나님께 쓰임 받고 하나님의 때가 되어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사건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언젠가는 죽어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 즉 우리가 쓰임 받고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시한부라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귀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저희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사무엘이 단순히 하나님의 때가 되어 죽었다는 이 사실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사무엘이 생각보다 굉장히 오래 살다가 죽었다는 것을 주목하여 보기 원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이 훨씬 일찍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너무 나이가 많아 늙었기에 곧 죽을것 같이 보였고 백성의 장로들은 당장 왕이 있어야 될 것처럼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했던 것이 사무엘상 8장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왕이신 것을 망각하고 다른 나라와 똑같이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야 우리를 잘 다스리고 우리를 잘 보호하고 우리를 잘 세워줄 것으로 여겨서 눈에 보이는 왕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이 많아 사무엘상 8장에서 곧 천국 갈 줄 알았던 사무엘이 이렇게 오래 살아 사무엘상 25장이 되서야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무엘서가 우리에게 강조하는 것은 그렇게 조급하게 백성들이 자신의 왕을 세워 달라고 그렇게 요구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조급증이었으며 그들의 원함을 관철하기 위한 그들의 핑계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을 진득히 기다렸 어야 되는데 그들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거절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눈에 보이는 왕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같이 세워 달라는 요청 자체도 불신앙 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계획에는 사무엘이 이렇게 살 날이 많이 있었는데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당장 왕을 세우면 안 된다고 요구한 그들의 조급증 또한 그들의 불신앙이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백성들이 요구한 다른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운 결과가 뭡니까?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고 악한 영이 그를 사로잡아 지금 백성을 돌보는 데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왕의 현주소를 보고 있습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자신이 설정한 원수인 다윗을 죽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왕, 자기 스스로도 통제를 못하는 왕, 이스라엘 백성을 다른 나라로부터 보호하지도 못하는 왕, 자신의 주적이 블레셋이나 아말렉 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는 그런 왕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결국 그들의 요구, 다른 나라와 같은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 달라는 그들의 요구가 결국 처절한 결과로 사울왕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지 못한 그들의 불신앙은 사울왕이라는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움으로써 그의 영적 하향 곡선과 타락과 변질이 그 백성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나의 때와 방법을 붙들고 관철하려 하지 말고, 내가 원하는 그림을 하나님께 협박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심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자 영적인 삶의 본질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생각에는 자기가 아들 없이 자녀 없이 무지하게 있는 것이 너무나 조급했고 불안했습니다. 당장이라도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그는 조바심을 냈으며 그리고 결국 그가 원하는 plan b를 만들어서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약속의 이삭을 완벽히 허락하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뒤에도 아브라함은 후처를 통하여 훨씬 더 많은 자녀들을 낳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나중에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흔 살 때에 아브라함의 조급증은 하나님의 큰 그림으로 봤을 때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의 계획은 훨씬 길었고 하나님의 계획은 훨씬 컸던 것입니다. 이삭의 축복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이 눈이 어두워 곧 죽을 거 같았는지 갑자기 에서를 불러 장자의 축복을 하려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리브가가 듣고 야곱을 변장 시켜 대신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그렇게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이후에도 한참 후에 있어서야 죽게 된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그렇게 사무엘이 죽은 후에 그 다음 다윗의 신변에 대해서 짧게 증언합니다. 사무엘이 죽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다윗의 신변은 더욱 위험해 졌다는 것을 그대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나마 사울 왕이 마음껏 다윗을 죽이지 못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뭐냐면 사무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이 죽었으니까 사울왕 에게는 확실히 이제 모든 걸림돌이 제거되었고 다윗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돼 버린 것입니다. 마치 에서가 아버지 이삭이 죽기를 기다리며 그 후에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벼르며 칼을 갈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죠. 다윗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보호하고 함께 했던 보호막인 사무엘이 없어진 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더욱 사울에게서 멀리 도피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죽자 분명히 다윗은 바로 바란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사무엘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다윗, 그렇게 도망자가 된 다윗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그를 사울왕의 손에서 보호하시고 건지시며 끝까지 주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야기를 우리는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계획되어 우리의 선택이 아닌 주님의 선택으로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살다 하나님의 때가 차면 하나님이 부르실 때 우리는 모두 순종하며 이 세상을 떠나야 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훨씬 중요하며 어떻게 사는 것만큼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느냐…입니다. 삶과 죽음은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으며 우리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것 만큼 살다 떠난다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꾹꾹 눌러 살며 하나님에게 모든 주권을 맡기며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다가올 죽음이 우리에게 피부에 느껴지는 지혜가 됨을 잊지 말고, 꼭 죽지 않을 것처럼 살지 마시고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여 내 죽음이 하나님 앞에 잘 준비되어 하늘을 바라보며 다가올 세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분명히 믿으며 살아가십시오. 나의 중심과 우선순위를 보이지 않는 천국에 두고, 보이지 않는 영적 가치에 두고 주님과 동행하며 그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며 주님과 함께 오늘도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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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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