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 말씀은 모두 남유다 왕들에 대해서, 왕들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했는가를 통해 모든 왕들을 평가하고 있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는 우리 인생이 동일하게 하나님께 평가 받고 있다는 것을 늘 놓치지 않고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평가가 아니라 내 자신이 나를 보는 평가가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내 인생의 평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하루 하루 살기에 바쁘기 때문에 내 인생의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분주해서 하나님이 내 인생을 바라보고 평가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린 채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며, 그렇게 살아도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이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엄중히 평가하고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은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지혜 중의 하나 입니다. 그래서 이 역대기 말씀을 통해 왕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이 정확하게 평가하고 계신다는 진리 앞에서,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서 평가 받아야 되는 인생을 분명히 알 때 엄중한 현실이라는 것을 붙들고 살 때 내 인생의 가치가 새롭게 재 구성되며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죠.
그럼 오늘 말씀에서 아마샤 왕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가를 함께 보면 좋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정직히 행하기는 했는데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이 평가가 어떻게 보면 많은 성도들의 현재 영적 상태일 수도 있는 듯 합니다. 신앙 생활은 잘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려고 하긴 하는데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 않는 겁니다. 전심으로 하지 않는 것이죠. 아마샤 왕에게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생의 전반부에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정직하게 행했는데 인생 후반부에는 그 정직한 마음이 다 사라지고 변질되고 탈락했다 라는 것이 엄중한 평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삶의 증거를 두 가지로 들고 있습니다. 첫번째 하나님 앞에서 아마샤 왕이 바로 선 것은 자기 감정대로 보복하지 않고 말씀을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부왕, 즉 아버지 왕인 요아스가 전쟁터에서 중상을 입었는데 해봤는데 신복들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왕이 된 후 아버지를 죽인 심복들은 처단합니다. 당연한 일인데, 그 사람들만 죽이고 나머지 가족들은 죽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왕에게 죄를 짓는 자는 삼족을 멸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게 너무한 게 아니라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왕이 조금 혈기가 많고 감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씨를 말린다는 명목으로 배반한 자 주변에 수십 명, 수백 명을 한 번에 죽이는 것도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천 년 전에 아마샤왕, 아버지를 죽인 자들은 원수인데, 그들에게 감정대로 보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말씀이 허락하는 한해서만, 자녀들도 아내들도 그 외에 어떤 사람도 연좌죄를 적용하지 않고 당사자들만 딱 처단하는 겁니다. 되로 준 것을 말로 갚아야 하는 나의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감정에 따라 보복한 게 아니라 말씀이 멈추라 하시는 곳에서 멈춘 것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한 자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힘이 주어질 때 권한이 주어진 데 우리의 그 힘과 권한을 다른 사람을 보복하고 억누르는데 사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영적인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두번째, 아마샤 왕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한 건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아마샤 왕이 전쟁 준비를 하는데 남유다 군사력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것 같지 않은 겁니다. 군사력이 너무 작아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북 이스라엘에서 용병을 은 백달란트 돈을 주고 십만명의 용병을 사오는 겁니다. 한 달란트, 다섯 달란트도 엄청난 돈임을 기억하면 은 일백 달란트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큰돈 들여 사온 10만 용병의 힘을 빌려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데 하나님의 사람이 지금 얘기하는 겁니다. 그 용병들 데리고 가면 안됩니다…그 용병들을 앞세우는 전쟁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미 큰 돈을 다 냈어요. 십만 용병은 이미 다 와 있습니다. 이 용병이 없이 전쟁에 나가면 질 거 같은 겁니다. 첫 단추가 잘못 껴진 걸 알아도 되돌리기에는 손해가 너무 크니까 그냥 전쟁에 나가려고 할 겁니다. 그런데 아마샤 왕이 고민 가운데 어떤 결정을 하는가 하면 용병들을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는 겁니다. 은 백달란트를 날리며 큰 손해를 감수하는 겁니다. 달란트를 포기하는 걸 넘어 자기의 군사력이 확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기로 결정 한 거예요. 이것을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고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기로 결정하고 나에게 손해가 없을 때는 따라가는 것이 그래도 좀 쉬울 수도 있고 그게 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고 말씀을 붙드는 것에 대가가 필요하다면 많은 사람들은 주저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따르기 위해 내가 재정적인, 시간적인, 감정적인 손실을 크게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은 물어보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큰 손해를 보고 욕을 먹으면서도 결정을 번복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아마샤 왕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바른 왕으로서 평가를 받게 되는 가장 중요한 계기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귀하게 보신 결과 11절 말씀 보면 아마샤 왕이 그 10만 용병이 돌아갔는데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담력을 얻습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담력이었고, 그 하나님의 힘을 붙들고 아마샤의 군대가 큰 승리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율 받아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로 살아가기에, 하나님께 다른 기준과 우선 순위로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가 말씀에 반응하기 위해 이렇게 손해를 보고 포기하면서 내려 놓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포기와 손해를 절대 지나치는 법이 없다 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해 포기하는 손해, 포기한 시간, 그 어떤 것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게 하신다는 거예요.우리 인생은 하나님 앞에 평가를 받는 인생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인생길 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내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따라가기 위해 내가 손해 보는 물질과 시간,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와 놀라운 축복을 부어 주심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아마샤 왕과 같이 순종함으로 주시는 놀라운 담력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승리를 경험하시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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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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