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적국인 블레셋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면서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이끌려 사람을 의지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게 되니까 블레셋 적진에 가서 미친 사람과 같이 연기하며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고 결국 그곳을 떠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 방법을 의지하며 적진에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했던 다윗은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 수치와 부끄러움의 장소를 떠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지만 동시에 다윗에게는 아둘람 굴은 더 이상 갈 데 없는 마지막 배수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이 저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곳이 바로 굴입니다. 다윗과 함께 다윗의 온 가족들도 함께 아둘람 굴로 도망하게 됩니다. 이새의 집안에 여러 형제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형제들과 아버지를 포함한 모든 가족들이 다 도망자 신세가 되어 다윗과 함께 아둘람 굴에 도망하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선 시대도 마찬가지지만 나라의 역적은 삼족을 멸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만 죽는 게 아니라 그 집안의 삼족을 다 멸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지금 사울 왕에게 지명수배를 받았다는 것은 그 집안도 나라 반란죄로서 모두 지명 수배자로 올라간 것이죠. 그래서 다윗으로 말미암아 온 가족들도 모두 함께 도망자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 속에 다윗에게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배수진을 치며, 더 이상은 물러설 곳이 없는 배수진을 치며 아둘람 굴로 도망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둘람 굴에서 장차 왕이 될 다윗을 철저하게 밑바닥부터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왕궁에서 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광야에서 밑바닥에서 철저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는 훈련,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을 시키는 곳이 바로 다윗에게는 아둘람 굴의 광야였습니다. 사실 다윗에게만 이런 훈련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사람 모두에게는 광야의 여정이 있었다는 것을 성경은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셉에게도 큰 총리 대신으로 나라를 살리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기 전, 긴 광야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형들에게 배신당하고 노예로 팔리고 주인의 부인에게 모함 당하고 나갈 수 없는 감옥에 갇히고 그 수많은 어려움의 광야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웠던 것이 요셉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던 모세 또한 놀랍게 쓰임 받기 전 40년의 미디안 광야 시절이 있었습니다. 애굽의 왕궁에서 모든 것을 다 훈련 받은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내 모셔서 미디안 광야에서 철저히 낮아지게 하셨고 작아지게 하셨고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 40년, 그의 어깨 힘을 빼는 40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윗에게 이 아둘람 굴에서의 시간은 어깨에 힘을 빼는 훈련 시간이었고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고 의지하는 철저한 밑바닥의 인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훈련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철저히 잊혀지는 훈련, 하나님만을 철저하게 바라보는 훈련을 다윗에게 아둘람 굴을 통하여 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다윗에게는 그 아둘람 굴에서 자기 하나 인생 건사하기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때문에 자기 가족들 모두가 도망자 신세가 되어 함께 도피하고 있는 것도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둘람 동굴에 숨어 들어온 다윗에게 함께 따라 들어오는 무리들이 생긴 것입니다. 그 쫓기는 사람인 다윗에게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 두 명이 모여든 게 아니라 오늘 말씀을 보면 400명 정도나 모였다고 증언합니다.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닌 400명이 지금 도망자 다윗이 숨어있는 아둘람 굴에 함께 모여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대부분은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습니다. 세상이 받아주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 다윗과 같이 막다른 골목에서 있는 인생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찾아온 겁니다. 사람들이 밟으면 잡초와 같이 밟히는 인생, 세상에서 너무나 힘든 일을 많이 당해서 생명을 쥐어 짜는 듯한 어려움을 당한 자들이 지금 다윗에게 찾아와 아둘람 굴에 함께 피한 것입니다. 그들은 겉보기에는 다윗을 찾아온 것이지만 결국 다윗과 함께하는 하나님을 찾아온 백성들이며 세상에서 거절 당하고 상한 마음을 하나님은 받아 주실 거로 생각하며 찾아온 백성들인 것입니다. 도망자로서 다윗은 자기 인생도 하나 건사하기 힘들고 자기 때문에 부모들이 어려움을 당하고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 조차도 너무나 힘든 상황입니다. 자신의 문제로도 이미 머리 끝까지 꽉 찬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환란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원통한 자들을 계속 보내주시는 거죠. 다윗이 막다른 골목과 같은 아둘람 굴에서 배수진을 치고 하나님 만을 의지하고 피할 때 400명이나 되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그들의 원통함과 수치스러운 마음과 빚진 마음을 고백하며 그들이 다윗을 그 삶의 대장으로 모시게 되며 다윗을 충실하게 섬기는 일꾼들이 된 것입니다. 이 아둘람 굴에 모인 400명의 사람들이 나중에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때까지 함께하는 동료들이자 목숨 걸고 함께하는 충신들이 되는 것입니다. 공포의 외인 구단 같이 다윗에게 철저하게 순종하고 충성하며 다윗과 함께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문제로도 꽉차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품고 막다른 골목에 함께 서서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부르짖는 아둘람 공동체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또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가 등장합니다. 다윗이 아둘람 굴에 피신한 부모님들을 어디로 모시고 가냐면 모압땅의 왕에게 나아갑니다. 왜 다윗은 그 부모를 이방 땅인 모압 왕에게 맡겼을까요? 아버지 이새의 증조할머니가 누구냐 하면 바로 보아스와 결혼한 모압 여인인 룻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다윗이 지금 모압 땅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연이 있었기 때문에 모압 왕은 기쁨으로 다윗의 부모를 받아 주고 보호해준 것입니다. 룻과 보아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희미한 것이나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 이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보고 나니,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다 퍼즐이 맞춰지는 것입니다. 왕에게 지명수배 당해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 아둘람 굴에까지 쫓겨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이 죽음의 위협 가운데서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은 여전히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은 그를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셨음을 말씀을 통해 깨닫기 원합니다. 인생의 길이 막히고 사람이 날 버리고 거절할 때, 언제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아둘람 굴의 훈련 시간을 지나가기 원합니다.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큰 섭리와 인도하심이 나중에는 퍼즐이 맞추어지듯이 알게 될 것을 믿으며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순종하는 훈련을 하셨던 곳임을,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하나님에게만 선명히 기억되는 자가 되기를 원하셨던 주님의 훈련 장소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펼쳐져 있는 아둘람 굴의 광야 가운데 사람들에게 잊혀질지라도 오직 하나님에게 기억되는 성도로 이 시간 훈련 잘 받아 주님이 원하시는 때 주님이 원하신 방법으로 선명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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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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