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2장 말씀은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북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함께 연합군을 구성해서 아람 군대와 싸우려고 하는 이야기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은 그동안 계속 북 이스라엘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오늘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동시에 등장하게 됩니다. 왜 남유다 여호사밧 왕이 아합왕 이야기에 등장하게 되는가 하면 여호사밧 왕이 아합왕과 소위 말하는 결혼을 통해 친인척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남과 북이 하나되자는 어떤 좋은 구호로 맺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합왕은 북 이스라엘 왕 중에 가장 악하고 타락한 왕 중에 하나였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남유다 여호사밧왕은 바알신을 멀리하고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며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출발하였던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세워 주시며 남유다가 강성하게 되었는데 그런 여호사밧이 곁길로 가고 변질과 타락을 가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바로 아합의 집안 북 이스라엘과 연혼 관계를 맺어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가지고 있는 세상 가치관과 우상을 품고 살아가는 것에 남유다 여호사밧이 물들고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아합왕과 가까이 함으로 여호사밧 개인의 삶 뿐 아니라 남유다 전체가 변질과 타락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큰 승리를 주셨는데, 아합왕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아람왕을 죽였어야 하는데 죽이지 않고 살려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렇게 살려 보낸 아람왕이 은혜를 원수로 갚으며 다시 보복하러 온 것이 오늘 말씀에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연합군을 이루어 아람 군대와 싸우게 되는 배경입니다. 여호사밧 왕이 아합왕에게 내려가 함께 전쟁을 하겠냐고 얘기하니까 아합은 교만에 빠져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습니다 이처럼 아합왕은 여전히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아람군대와 싸워 이길 때도 자신의 힘으로 이긴 게 아니라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이기게 하신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10만 명의 아람 군대를 죽인 게 자기의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온통 자만과 교만에 빠져서 상황을 정확하게 읽지 못하니까 지금 아람 군대와 싸우는데 뭐든지 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호언장담하는 아합 왕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그나마 덜 타락하고 영적으덜 둔감한 남유다 여호사밧왕이 바른길을 제시하는 겁니다. 이렇게 호언장담으로 우리 생각으로 결정하기 전에 전쟁에 나가는 게 옳은 지 하나님께 먼저 좀 물어봐야 된다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아합왕, 당신 뜻대로 막 결정하지 말고, 호언장담으로 막 일을 추진하지 않고, 조금 결정을 미루고 먼저 하나님께 말씀으로 물어봅시다…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왕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합왕은 전쟁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합왕이 누구에게 물어봤는가 하면 400명 이상의 어용 선지자들을 모아두고 물어봤다는데 있습니다. 선지자 400명이 똑같이 전쟁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니까 지금 당장 올라가 싸우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이 400명이 제대로 된 선지자가 아니라 앵무새 같이 왕이 원하는 대답만을 하는, 왕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선지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가 타락하면 항상 왕 주변에는 이런 어용 예언자들이 득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왕이 듣기 좋아하는 말 권력자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앵무새 같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말하고, 그 가운데 자신의 이익을 취하면서 권력의 핵심에 포진되어 살아가는 자들만 가득한 것입니다. 한두 명이 아니라 400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이 진리와 바른길을 제시하지 않고 왕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서 하나같이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언자 400명이 이구 동성으로 아합왕 귀에 듣기 좋은 얘기만 앵무새 같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양심이 살아있고 덜 변질되어서 그런지, 하나님 말씀으로 주신 진리의 예언은 아님을 분별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왕이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아부이지,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이 아님을 감 잡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진짜 예언자들이 없냐며, 여호사밧 왕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는 것입니다. 여호사밧의 이런 영적 안목에 아합왕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미워하긴 하지만 진짜 예언자 중에 하나인 미가야 선지자를 소개합니다. 소개하면서 아합왕 자신이 미가야 선지자를 미워하는 이유를 말하는데 미가야는 말씀을 말씀 그대로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귀에 듣기 좋은 기분 좋은 이야기 대신 안 좋은 얘기만 하고 내 마음을 후벼 파는 거북한 이야기만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어둠의 백성들은 빛을 미워하고 충돌하고 부딛히는 말씀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빛이 찾아오니까 싫어하고 잡아 죽이려는 모습이 복음서에 그대로 증언되는데 아합 왕이 바로 그런 사람인 것입니다. 진리를 말할 때 생명이 빛을 비출 때 어둠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싫어하고 미워하고 충돌하고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미가야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대로 말하는 자는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미움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씀을 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들어야 되는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그 들어야 되는 말씀은 듣기 거북한 이야기이며 마음을 찌르는 이야기들이 때문입니다. 여호사밧 왕은 그 미가야 선지자를 데려와 말씀을 듣기를 촉구합니다. 400명의 어용 예언자들 말고 진짜 들어야 될 말씀을 전해주는 예언자를 데려와야 된다고 강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사밧을 통하여 미가야 선지자가 아합왕 앞에 오게 되는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내 영적 현주소의 본질은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하고 교제하고 가까이 하는가에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가까이 있는가에 따라 내 인생이 더 신실해질 수도 있고 내 인생이 변질되고 타락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아합이나 이세벨 같은 사람들과 교제하고 가까이하면 그 잘못된 가치관이 나를 물들게 하고 변질되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를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세워주고 민감하게 하고 바른 길로 인도할 사람들과 가까이 하십시오. 내가 좋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하며 선한 영향력을 주고 받는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좋은 성도가 된다는 것은 좋은 소리만 듣고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게 아니라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쓴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와 열린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그런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되며, 그 진리 앞에 엎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나를 깨우고 심령 골수를 쪼개는 그 은혜를 사모하며 그 진리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회복시키고 깨우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풍성이 경험되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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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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