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아합왕의 마지막 일생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사실 열왕기상에서 가장 길게 등장하는 왕 중 하나가 바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를 벌이는 것도,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일도, 질 수 밖에 없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두번이나 승리하게 되는 것도 다 아합 왕이 등장합니다. 불순종하고 악한왕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합왕에게 여러 번 돌아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의 인생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뜻대로 막 나가게 되고 전쟁터에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게 오늘 말씀입니다. 분명히 선지자 미가야는 아합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경고했습니다. 이번 아람과의 전쟁에 올라가는 것은 이기러 올라가는 전쟁이 아니라 죽으러 가는 전쟁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왕 옆에 있는 400명 가까이의 예언자들은 거짓의 영에 사로잡혀 미혹된 자들로서 듣지 말아야 되는 이야기라는 것도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미가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이 주시는 진실의 말을 듣고 화가 나서 그 선지자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주신 말씀을 무시하고 지금 길르앗 라못에 전쟁하러 올라간 것입니다. 말씀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합왕은 자신 마음대로 내 뜻대로 전쟁하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는 내 기분에는 지금 전쟁에 가서 싸우면 이길 거 같거든요. 옆에서 주변에 소위 말하는 아첨꾼들은 지금 올라가면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막 분위기를 부추키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고 무시하고 불순종하며 아람과의 전쟁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아합왕 본인이 전쟁에 올라가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왕이 전쟁에서 최전선에 나가서 나를 따르라….소리치며 앞서 싸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합왕의 이중성과 교활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바로 호언장담한 아합왕이 왕복을 안 입고 변장하고 남유다의 왕이자 사돈인 여호사밧 왕에게 전쟁터에서 왕의 복장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전쟁은 그 당시에 누구를 찾아 죽이는 전쟁이냐하면 왕을 찾아 죽이는 전쟁입니다. 그럼 결국 모든 아람 군대가 누구를 죽이려 하겠습니까? 여호사밧 왕을 죽이려고 하겠죠. 본인은 왕복을 입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변장하고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으라는 거예요. 왕이 전쟁에서 맨 앞에 백성을 이끌고 나가서 싸워도 이길까 말까 인데 이렇게 왕이 뒤에서 숨어버리고 변장하고 있는 모습, 이게 아합왕의 교활한 이중성이고 안타까운 이 세상의 많은 지도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가 미가야가 예언한 거 같이 아합왕과 같은 이런 지도자는 있으면 있을수록 백성들의 근심거리가 되고 없으면 없을수록 오히려 백성들에게 평안이 되는 그런 함양 미달의 지도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이런 제안이 여호사밧 왕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이가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해서 올라와 전쟁하는 것도 모자라 전쟁하러 올라와서는 자기는 혼자 살려고 변장하고 나만 왕복을 입어서 죽으라 그러니까 이게 말문이 막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혼자 왕복을 입고 있으니 적군들이 이스라엘 왕인 줄 알고 여호사밧 왕에게 몰려들었고, 그 때 여호사밧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고 증언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어떻게 소리를 질렀을 것 같다 생각하십니까? 죽이려는 적군들을 향하여 아마도 “나는 이스라엘 왕이 아니야…번지 수 잘못 찾았어…” 이렇게 소리를 질렀을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성경을 부분적으로만 아는 상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여호사밧이 소리를 질렀다는 것을 평행 본문인 역대하 18장을 보게 되면 여호사밧이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이스라엘 왕이 아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른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외침이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니까 남유다 여호사밧왕은 전쟁터에 가서야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전쟁이라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전쟁 전에 미가야의 예언을 통해 여호사밧 왕은 이게 잘못된 전쟁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멈추지 못하고 같이 전쟁터에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자기와 함께 온 아합왕이 자기만 살겠다고 변장하고 자신에게만 왕복을 입고 모든 적군이 자기를 향하여 죽이려고 오는 것을 보면서 그때서야 드디어 정신 차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른 내용입니다. 그제서야 하나님께 두 손 들고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구하고 매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하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호사밧 왕에게서 적군이 떠나가게 도와주시고 목숨을 건져 주셨습니다. 죽기 바로 직전에 전쟁터에 가서야 정신차리고 하나님께 두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여호사밧의 전쟁터에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기적적으로 보호하시고 목숨을 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듣지 않고 불순종한 북 이스라엘의 아합왕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중요한 단어는 무심코…인데, 적군이 왕인지 모르고 조준한 화살에, 그것도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빗맞은 화살을 맞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합왕이 바로 죽는 게 아니라 빗맞아서 피를 계속 흘려 낮부터 계속 고통 속에 신음하다가 밤이 되서야 결국 죽게 됩니다. 변장해서 스스로 살려고 발버둥 쳤지만, 왕인지 모르고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서 죽은 비참한 죽음, 그게 바로 아합왕의 비참한 최후입니다. 변장하면 살 수 있을 것 같고 머리를 쓰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미가야가 말한 예언대로 하나님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며 그 전쟁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합왕의 죽은 피는 개들이 핥아 먹는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말씀이 성취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들을 향해 돌아올 기회를 주시고 여러 번 참으시고 인내하시지만 영원히 돌아올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합의 비극적 죽음을 통해 깨닫기 원합니다. 아합왕에게 하나님께서는 돌아올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마음의 찔림과 부담감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고 돌아서기를 거절하고 마지막까지 말씀과 충돌하고 부딪고 불순종한 처절한 결과를 직면하게 되는 아합왕을 우리는 반면 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여러 채널을 통하여 다양한 방법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중하게 여기며 그 말씀은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며 순종하는 은혜가 있을 때 아합과 같은 비참한 결론을 맺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합왕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계속 날려버리며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게 되면 어느 선에 가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잊지 않고 그 말씀을 붙들고 말씀의 기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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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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