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idiom에 Anger pays the price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노로 일하면 그 분노에 대한 대가를 심하게 치른다는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만명이 한마음이 되어 같은 동족이자 막둥이 지파였던 베냐민 지파를 원수로 싸워 전쟁에서 완전히 이겼습니다. 승리를 한 이후에도 그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주 처절하게 진멸하였습니다. 그들은 정의를 심판한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고 분노로 베냐민 지파를 모두 몰살시키는 화풀이었습니다. 그렇게 끔찍한 내부 총질이 끝난 후, 정신줄을 놓고 분노가 주도하여 자신의 동족을 그렇게 죽이고 나서 그 지파를 완전히 멸절시키고 나니까 그제서야 정신이 드는 겁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일 한 거지…라는 정신이 확 되는 겁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앞에 나서 대성 통곡을 하며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가로되”…베냐민 지파가 우리들의 형제였음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전쟁 중에 분노로 내부 총질을 할 때는 베냐민 지파가 형제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죠. 그냥 죽여야 할 원수로만 여겨졌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분노에서 깨고 나니까 알게 되는 거죠. 끔찍한 일이 지나간 후에야 정신이 돌아오는 거예요. 내 형제였고 한 핏줄이었는데 분노가 주도하며 눈이 가려져 버리는 거예요. 형제인지 모르고 자매인지 모르고 서로 가서 막 죽이는 겁니다. 이게 인간의 어리석음이요 분노로 일하는 자들의 처절한 대가 입니다. 두번째로는 베냐민 지파가 완전히 몰살되서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죠. 그들은 겉으로 봐서는 승리한 것 같은데 형제이고 한 핏줄인 것을 놓치고 잃어버린 댓가는 전쟁을 통해 한 지파가 끊어질 위기에 처해진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들이 한 전쟁의 결과, 내부 총질로 동족끼리 서로 피 흘리고 싸운 처절한 결과는 승리는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패배자일 뿐이었습니다. 승리가 승리가 아니라 둘다 패자인 것입니다. 항상 내부 총질의 결과는 이렇다는 것입니다. 한 몸인 가정에 싸움이 있을때, 한 배를 교회 안에 싸움이 있을 때 우리는 눈이 가려져서 서로가 서로에게 죽일듯이 적으로 생각하며 지금 칼질을 하고 서로 죽자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싸움에는 승자가 없다는 겁니다. 남편과 아내가 원수되어 싸웠을 때 결국 승자가 없이 모두 가정을 무너뜨리는 패자가 될 뿐입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가 성도끼리 서로 원수되어 싸울 때 결국 승자가 없이 모두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패자가 될 뿐입니다. 주적을 잃어버린 채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싸우며 형제 자매인 걸 잃어버리고 그렇게 피 터지고 싸우다가 승리한 줄 알았는데 정신차려 보니까 후애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팀에서, 한 몸에서 서로 피흘리며 싸우다 결국 모두 무너지는 결과를 사단이 제일 좋아하는데 이런 일들이 계속 역사적으로 벌어진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영적인 암흑기에 끝판왕이며 영적 타락의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신 차리고 나서 발견한 문제들을 가지고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본인들이 다 죽여놓고 지금 갑자기 남아있는 그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구해줘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분노로 베냐민을 적으로 원수로 만들어버리며 분노 가운데 그 누구도 베냐민 사람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입니다. 성급한 맹세였고 분노가 주도한 맹세였습니다. 그러니 원해도 이제는 베냐민 지파에게 아내를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보니 자신들이 형제 자매인 베냐민 지파를 결혼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몰살해 버린 것입니다. 더 어이 없는 것은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 원망하는 것입니다. 본인들이 다 그렇게 해 놓고, 분노로 서로에게 적인 줄 알고 착각하며 그렇게 싸우다가 베냐민 지파가 그렇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는데 갑자기 하나님에게 모든 탓을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내부 총질로 한 핏줄이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죽이며 원수로 죽도록 싸우더니, 결국 참담한 결과에 직면하고 나니까 회개하며 주님께 살려 달라고 오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겁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나왔습니까? 어찌해야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답은 분명하죠. 본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명확한 것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형적인 패턴은 하나님께 묻지 않음과 원망, 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는 것, 즉 답을 다 정해 놓고 하나님께 물어보는 시늉만 하는 것이 영적 타락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결과가 나왔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영적 타락입니다. 항상 죄악된 본성과 분노가 만나 주도하게 되면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일을 그르치게 되고 그 일로 항상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어두워지지 않기 위해 나의 일상에 길을 주님께 물어보며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겸손하게 따라가는 그 순종의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탓하지 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회개하며 돌이키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백성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혹시 내가 그렇게 미워하고 내가 분노하고 있는 그 사람이 나의 형제 이며 나의 자매 이며 나의 아내이며 나의 남편인 것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그들은 나의 적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고 사명으로 무장하여 주님 앞에 끝까지 쓰인 받으며 나아가는 주님의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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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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