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사단에게 충동질을 당해 크게 흔들렸습니다. 사단의 미혹에 빠져 버렸고 하지 말아야 된 인구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교만과 착각에 빠져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과 자기의 군대의 힘과 크기를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밧세바를 범한 사건과 함께 맞물려 차곡 차곡 쌓이다 폭발하는 것입니다. 측근들이 말리고 잘못됐다고 목숨 걸고 말해도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단의 충동에 빠져 한 인구 조사를 한 것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중의 하나 선택하라고 다윗에게 선택지를 내미셨습니다. 삼 년 기근이나, 세달동안 적군에게 쫓기거나, 사흘동안 전염병이 생기거나….이 가운데 다윗은 사람의 손에 징계받기를 않는 것을 원한다며 하나님이 치시는 전염병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윗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3일동안 7만 명이나 죽게 됩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왕이 사단의 충동질에 빠지면 그만큼 영적인 결과가 피폐하고 참담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그만큼 중요한 문제이자 큰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분명히 성경이 증언하는 듯이 사단의 미혹에 빠져 충돌질에 흔들려 영적으로 완전 자빠졌습니다. 한두명이 아니라 7만명의 사람들이 3일만에 다 죽게 되었습니다. 본인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이 압박감과 자책감을 어떻게 그가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실패와 좌절과 무너짐의 현장에서 다윗은 즉각적으로 엎드리며 즉각적으로 선 되고 회개하며 즉각적으로 주님의 은혜만을 구했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손 들고 나오는 이 즉각적인 엎드림과 회개가 다윗을 회복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사울왕도 다윗왕도 똑같이 잘못하고 넘어졌습니다. 다윗의 위대한 점은 실수하고 실패하지 않은 완벽한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실수하고 무너진 현장 가운데 즉시 엎드려 주님을 바라보고 다시 한번 은혜를 구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무너진 현장에서 금방 회개할 줄 알고 금방 엎드린 주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다시 한번 교정 되어 주님 앞에 손 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계속 핑계를 댔습니다. 계속 자기 합리화를 했죠. 회개를 통해 손들고 주님 앞에 나와 은혜를 구하는 대신 계속 자기의 길을 계속 가게 되며 그 무너짐의 대가를 결국 본인이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삼일 동안 전염병 가운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이 내릴 때 그치게 되라고 목숨걸고 간구하며 제단을 쌓는 장소가 어디냐 하면 여부스라는 곳이라는데 있습니다. 그곳은 나중에 예루살렘이 되는 곳이라는 것을 오늘 말씀은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 다윗이 사단의 충돌질에 빠져 7만명의 백성이 죽은 그 처참한 현장, 다윗의 처절하게 무너지고 주님의 은혜에 매달린 이 여부스에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역대상은 의도적으로 지금 다윗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엎드려 용서와 간구를 구하는 그곳이 나중에 장차 성전이 세워지게 될 예루살렘이라는 강조하는 것입니다. 승리의 현장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과 아픔 과 무너짐의 현장, 주님의 은혜 말고는 살 길이 없는 그 현장에 하나님은 나중에 성전을 세우시는 겁니다. 7만명의 백성들이 죽어가는 그 눈물과 아픔의 현장, 그곳에서 나를 죽여 달라고 부르짖으며 울부짓는 그 다윗의 통곡과 비통함 속에 두손들고 은혜를 구하는 현장위에 성전이 세워졌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질 때, 교만과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세우는 그런 자아도취의 성전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과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은혜로 세워주시는 게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세워질 성전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 등돌리고 늘 무너지며 죄에 헤매는 사람들 이었는지, 그런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사랑하시는 주님의 은혜는 얼마나 큰지 이것을 묵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다윗과 같은 사람도 이렇게 변질되고 넘어지는데 그 위대한 다윗도 이렇게 실패하고 자빠지며 사단의 충동질의 흔들리는데 저와 여러분들은 오죽하겠습니까? 매일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연약함의 틈 사이에 사단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을 우리는 엄중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넘어지고 무너지고 자빠지고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며 오늘도 그 진흙탕에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사단의 충동질에 빠져 무너졌을 때 선택은 내가 무너진 현장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일어날 것인가? 가 저와 여러분들을 살리는가 죽는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실패와 아픔에 현장에서 죄짓고 자빠진 그 현장에서 다시 회복하는 유일한 힘은 금방 엎드려 주님 앞에 내가 잘못했습니다… 날 살려주세요….나를 붙들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이 은혜를 간구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진흙탕과 실패와 좌절의 현장에서 다윗과 같이 이 시간 손들고 나와 주님의 은혜 만에 붙들고 살아가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성전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 성전을 바라보며 승리와 영광을 바라보는 것도 기쁘고 좋습니다만 동시에 우리 인생의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그 고난과 눈물의 현장, 죄와 자빠짐과 사단의 미혹에 무너진 현장 가운데 두 손 들고 주님을 붙들고 나왔던 그 회개의 고백이 우리 성전에 녹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약해서 쓰러지고 넘어져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죄가 점점 미워지는 힘, 죄와 싸울 수 있는 힘을 주님으로 공급받으며 살아가는 삶, 주님이 함께 하시며 주님께 드려지는 이것이 내 삶의 능력으로 나오게 될 줄 믿고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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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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