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장은 답답하고 절망 가득한 이야기가 가득했습니다. 나오미와 룻은 그 남편과 아들들을 다 잃어버리고 이민 생활에서 모든 것을 날린 채 그 모압 땅에 이민 생활을 접고 쓸쓸히 고향 땅으로 돌아와 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이제 기쁨이 다 사라진 쓴 물만 올라오는 마라 같은 인생임을 탄식하며 주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려 쓴물에서 단물로 인도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인생을 의탁하고 맡기는 이야기가 1장이었습니다. 그리고 2장 말씀에서 드디어 또 다른 주인공인 보아스가 등장하게 됩니다. 보아스는 남편 가문의 친족이자 유력한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력한 자라는 것은 단순히 돈이 많고 부자란 의미를 넘어 그 집안에 하나님의 경륜을 세울 유력한 자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목숨 걸고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고, 붉은 줄을 매달아 하나님의 은혜로 멸망을 당하지 않은 유일한 이방 가정입니다. 라합은 여리고 성이 멸망할 때 유일하게 구원받은 가정으로, 모든 과거를 단절하고 오직 주님의 은혜 만을 붙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속한다는 구원이 무엇인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붙드는 신앙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믿고 고백하는 여인 이었습니다. 그런 라합을 어머니로 둔 자가 바로 보아스였기에 그는 유력한 자였던 것입니다. 또한 라합은 이방 여인이었기에, 보아스 집안은 이중 문화 가정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순혈 주의가 중요하다는 그 이스라엘의 문화 가운데서 특별히 이방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 안에 시선에 갇힌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온 세계와 인류를 구원하시는 큰 영적 그림을 가지고 있고 자기의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는 그 영적인 타락과 어둠의 사사 시대에 새 시대를 준비하는 데 쓰임 받는 자가 바로 유력한 자 보아스 였습니다. 그 유력한 자 보아스와 룻의 운명적인 만남을 오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오미와 룻은 이민 생활을 접고 돌아왔지만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직장을 다닐 수도 없고, 나오미는 나이가 많아서 봉양을 받아야 될 입장입니다. 녹녹치 않은 그 상황에서 이방 여인이자 과부인 룻이 선택한 것은 절망하고 포기하고 좌절하는 대신 죽기 살기로 매달리며 나아가는 겁니다. 살아 보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나아가는 것이죠.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이삭을 주워서 라도 살아보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죽기 살기로 매달릴 때 “우연히 보아스 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간 룻이 우연히 도착한 곳이 보아스에게 속한 밭이었다는 겁니다. 겉에 보이는 상황만 봤을 때는, 룻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우연히, 정말 우연히 그 밭에 도착한 것입니다. 보아스라는 사람을 알지도 못했고, 만날 것을 기대하고 간 것도 아니고 그냥 간절한 마음에 이삭이 있는 곳을 찾다 보니까 그 밭에 도착한 겁니다. 우연히 그 밭에 가게 됐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우연히 간 게 아니라,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과 인도하심으로 그 곳에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내온 건 모두 주님의 은혜라 고백하는 게 뭡니까? 내가 봤을 때 모든 게 다 보여지지 않고 희미하고 흐릿하고 어떨 때는 우연히 일어난 많은 사건들의 연속인데, 인생을 돌아보고 인생을 정리 하다 보니까 그게 다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지금 까지 지내온 모든 게 주님의 은혜였다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성도의 특권인 겁니다. 내가 결정한 것 같고 내가 움직인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어쩌다가 우연히 된 거 같은데 그 모든 것이 바로 우연히 된 게 아니고 어쩌다가 된 게 아니고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하시는 일이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성도의 고백인 거죠. 내 눈에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믿음 만을 붙들고 걸을 때, 우연히 일어나고 어쩌다 일어난 것 같은 모든 사건들이 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롭게 인도하시고 일하시고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을 믿는 게 신앙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우연을 가장한 섭리가 룻에게 임하게 된 것은 이해 관계와 손익 관계를 넘어 바른 관계를 선택한 믿음의 선택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게 모두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비결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최우선에 두는 성도의 특권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우연을 가장한 섭리는 이해관계와 손익관계로만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경험되지 못하는 신비입니다. 이런 섭리적 사관을 가지지 못하기에 우리의 만남이 그냥 이해관계와 손익 관계를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욕심이 이끄는 만남, 사망과 어둠을 경험하게 하는 만남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는 그 말씀과 같이 우리가 모든 선택과 만남이 이해 중심과 손익 중심을 통해 결정된다면, 모든 것이 욕심을 중심으로, 내 필요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나아가게 되고, 그런 결정과 만남은 결국 무너지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우연히 일어난 만남,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통로로 이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오미와 룻의 절망스러운 상황, 정말 모든 것이 깨지고 무너지고 붙들 게 하나 없는 인생, 쓴물을 맛보고 계속 쓴 물이 올라오는 마라 같은 인생을 건지시기 위해서만 보아스를 사용하신 게 아니라 그런 쓴물이 올라오는 영적 암흑기를 지나가고 있는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시고 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 내세운 사람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준비 받은 유력한 자 보아스였습니다. 우연히 룻이 보아스의 밭에 도착한 사건을 통해 보아스와의 운명적 만남을 계획하신 것과 같이, 내 인생의 우연하게 보이는 만남과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시는 통로로 사용될 수 있음을 믿으며 나아가십시오.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우연히 만나는 사건들이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음을 믿으며, 그것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신 통로가 됨을 믿으며 오늘 하루 은혜 가운데 승리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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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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