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요게벳의 기도에 대해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요게벳을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요게벳은 출애굽의 영웅이자 하나님께 쓰임받은 놀라운 지도자 모세의 친모, 어머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였으며 아이에게 이름도 지어줄 수 없었던 눈물의 어머니였습니다. 이 요게벳의 기도를 기초로 유명한 찬양 하나가 알려졌는데 바로 요게벳의 노래라는 찬양입니다. 이 찬양이 제가 알기로는 유튜브에 한글로 된 찬양 중에 가장 조회수가 많은 찬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 M, 즉 1500만 명 이상 유투브에서 시청을 찬양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찬양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요게벳과 같은 사람들 때문일 것입니다. 그 동영상 밑에 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요게벳과 같은 엄마와 아빠의 절박한 눈물의 기도 제목들이 댓글로 달려 있는데 읽어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뭉클한 지 모릅니다. 얼굴을 보지 못하고 누군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이 시대에 요게벳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눈물과 아픔이 그 찬양과 함께 깊이 녹아 있어 요게벳의 노래라는 찬양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기도를 통하여 도전하는 세 가지의 믿음의 기도 특징을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 요게벳의 기도 특징은 왕명을 거절하면서도 목숨 걸고 아기 모세를 지켜내려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애굽 전역에 바로의 명이 떨어졌는데, 히브리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다 나일강에 던져 죽게 하는 명령입니다. 그 당시에 바로왕의 명은 왕의 명령이자 동시에 신의 명령입니다. 신의 명령을 거절한다는 것은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그 어느 누구도 왕명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명령과 같은 왕명을 목숨 걸고 거절하고 저항하여 이 아이를 지키려는 몸부림이 바로 요게벳의 기도였습니다. 왕명을 거절하는 대가는 목숨이었고,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놔야 되는 그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세 달 동안 그 왕명을 목숨을 걸고 거절하는 겁니다 세 달 동안이 이 아이를 숨기며 목숨걸고 지켜내려는 어머니의 눈물이 요게벳의 기도입니다.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달 동안 그를 숨겼다고 증언하는데, 잘 생겼다는 것은 신생아의 외모가 잘 생겼다는 말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를 하신 후에 이 세상이 보기 좋았다 말씀하시는 그 말씀과 동의어입니다. 왕명에 따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아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그 창조의 섭리를 그 가족은 보았기에 목숨 걸고 대가를 치르며 지켜내려 하는 겁니다. 바로 왕으로 대표되는 이 세상의 명령이라는 것, 이 세상의 흐름이라는 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흐름 속에서 자녀들을 지켜내는 것,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세상의 명령을 거역하면서도 우리 아이를 지켜내는 것은 목숨 거는 대가를 치르고 지켜내는 큰 일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저항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그게 바른 길이 아니고 망하는 길이고,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고 선포하며 저항하는 것, 그것이 요게벳의 기도의 특징입니다. 두 번째 요게벳의 기도의 특징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기도입니다. 세 달이 지나자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시점이 그들에게 찾아왔습니다. 더 이상은 숨길 수도, 더 이상은 내 힘으로 지켜낼 수도 없는 상황이 찾아왔을 때, 요게벳은 믿음으로 결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죽음과 동일한 그 나일강의 물에 이 어린 아이를 떠나 보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요게벳은 떠나 보낼 때 아기 모세를 위해 갈대 상자를 만들고 역청으로 칠합니다. 역청으로 칠하는 것은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칠했던 것과 동일한 것으로, 역청이란 세상으로부터의 죽음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갈대상자에 아무리 역청을 잘 칠했다고 뭐가 분가 되겠습니까? 그 어머니의 마음은 더 이상 숨길 수 없기에 신생아를 거의 죽음의 현장에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겉으로 봐서는 갈대상자에 역청을 칠해 그 아이를 나일강에 떠나 보내는 것은 마치 아이를 포기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겁니다. 그러나 요게벳의 단장의 마음으로 고백하는 기도는 이 아이를 포기하는 게 아니고 강에 떠나 보내면서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 주인이고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는 눈물의 고백으로 떠나 보내는 것입니다. 내가 부모로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절박한 상황, 더 이상 숨길 수 없고 더 이상 해 줄 수 없는 그 벼랑 끝에서, 요게벳의 기도는 포기의 기도가 아니라 나의 할 수 없음을 철저히 인정하며, 갈대 상자 안에 아기를 떠나 보내면서 하나님의 손에 이 아이를 맡기는 것입니다. 세번째, 요게벳의 기도의 특징은 내 한계와 소원을 넘어서는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 맡긴 요게벳의 간절한 기도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아이가 죽지 않고 사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요게벳의 기도를 들어 사용하셨고 죽음의 강 나일에 어린아이를 보내는 그 어머니의 눈물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아이를 기적과 같이 건져 주셨습니다. 이 아이는 바로왕의 공주의 손에 건짐을 받게 됩니다. 율법의 기준과 애굽의 기준으로는 이 아이는 당연히 죽어야만 되는 아기입니다. 바로왕의 공주는 이 아기가 죽어야 하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인 것을 알았습니다.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서 이 아이는 죽는 것밖에 선택지가 없는 아들입니다. 그런데 애굽의 기준과 율법의 기준이 아닌 불쌍히 여김으로, 은혜의 기준으로 그가 죽음에서 건짐을 받게 되는 겁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아이가 오직 은혜로, 오직 불쌍히 여김으로 건짐을 받게 되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다 물에서 건짐 받은 모세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기준으로는 예외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으로, 죽음에서 건짐은 받은 자들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요게벳의 상상을 뛰어 넘는 일로 역사하셨는데, 그게 바로 모세의 유모가 되게 하시는 것이죠. 갈대상자를 떠나 보내면서 이 아들 맡겨 드리니 목숨만 살려주세요…그게 그 어머니의 유일한 기도였지 이것을 놓고 요게벳은 한 번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친 엄마가 유모가 되어 그 아이를 위해 계속 기도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부모로서 우리가 자녀가 장성해서 갈대 상자에 보내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자녀들을 보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모양으로 자녀들은 우리의 손을 떠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 우리 모두는 요게벳의 심정으로 그 아이를 떠나 보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우리 자녀들을, 손자 손녀들을 내손으로 어찌할 수 없어 떠나 보내야 하는 요게벳의 심정으로 주님 앞에 서 있습니다. 그들을 갈대상자에 만들어 나일 강에 떠나 보내는 요게벳의 마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심정이라 믿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고 내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그 상황 가운데 이 아이를 참 부모이시고 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심정으로 요게벳과 같이 눈물로 기도하며 떠나 보내는 것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그 상황 속에서, 눈물 뿌리며 주님 앞에 기도로 아기를 보내며, 참 주인이시고 참 부모이신 주님의 손에 맡기는 그 요게벳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요게벳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들어 사용하셨듯이 저와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죽음의 강에 어린아이를 보내는 그 어머니의 눈물을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아이를 기적과 같이 건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그 어둠과 죽음의 나일 강 한 복판에서 은혜로 불쌍히 여김을 받아 죽음에서 건짐을 받고 주님의 놀라운 손에 맡겨지는 그 역사를 간절히 사모하며 주님께 기도하며 나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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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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