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올해 2024년에 우리에게 주신 표어의 뿌리가 오늘 예레미야 33장 말씀에 근거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말씀하시는 것을 통하여 우리 삶이 하늘로부터, 하나님을 통하여 공급받아야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내 스스로 힘을 내는 존재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공급받아야만 사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새해를 출발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 소원이나, 필요, 내 원함을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단편적인 얘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께 부르짖음으로 숨쉬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조그맣게 부르짖을 수도 있고 큰 소리로 부르짖을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나의 부르짖음의 간절함이고, 부르짖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철저히 바라보고 붙들고 살아가는 삶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을 유일한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부르짖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 두 가지입니다. 내가 너에게 응답하시겠다는 약속과 알지 못하는 고 은밀한 일을 보이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유일한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겁니다. 물론 그 응답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응답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게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 지나보니 아니었던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내 말대로 내 생각대로 다 이루어 졌으면 큰일났을 일들이 벌써 여러 개들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 원하는 대로 안돼서 내가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신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철저히 믿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또 하나의 약속은 내가 알지 못하는 알지 못하는, 그러나 은밀한 일을 보이겠다는 약속입니다. 그게 내 눈에는 보이지 않고 내 뜻에는 담기지 않을 수 있으나, 분명히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은밀한 그 놀라운 일들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눈에 펼쳐진 현실과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을 넘어 큰 영적 그림 아래 보이지 않지만 알지 못하지만 이런 크고 놀라운 일들이 조용히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취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지금의 눈으로는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이자, 그리고 그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담은 경고의 예언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0장 말씀을 보면 선지자 예례미야는 장차 눈 앞에 펼쳐질 현실인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 눈물로 예언합니다. 그런데 예례미야의 경고 메시지와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기 원하는 응답도 아니었고, 그들이 바라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었기에 계속해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하게 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좋은 말씀은 망하기 전에, 정신차리고 회개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반응은 무관심과 냉소를 넘어 조롱과 비웃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데, 왜 저 선지자는 맨날 와가지고 망한다 멸망한다 이런 듣기 싫은 얘기만 계속 하는가? 눈 앞에 펼쳐진 현실로 봐서는 망하지 않을 거 같은데 왜 저렇게 망한다고 눈물로 징징대며 예언을 하는가? 그래서 눈물로 예언하는 예례미야를 향해 사람들은 종일 조롱했고, 온종일 욕을 퍼부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예언을 들을 귀도 없었고, 들을 마음도 없었으며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임을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말씀으로 깨워 주시는데, 정작 본인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듣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는 담기지 않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조만간 눈 앞에 펼쳐지게 될 현실을 말씀으로 이렇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 예언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선포하는 예레미야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욕과 조롱을 당하며 돌아올 때마다 예레미야의 마음에 절망감이 너무 컸습니다.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 모욕과 치욕을 당해?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늘 욕 먹고 다녀?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다짐할 정도로 말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대가로 사람들에게 당하는 모욕과 수치심이 너무 컸던 거죠. 그럴 때마다 예례미야의 마음에 찾아온 게 뭐냐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을 향한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는 거 같아 선포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을 주시는 겁니다. 오늘도 나의 본성을 거슬러서 사명자로서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마음으로 나오도록 인도하시는 겁니다. 그게 바로 크고 은밀한 일을 예례미야를 통해 보이시는 하나님의 역사이자 인도하심입니다. 예례미야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선포할 때, 전도 할 때 바로바로 변화가 있거나 열매가 있으면 힘들고 어려워도 신바람이 납니다. 그런데 어떤 때가 있냐하면 아무리 전해도 외면과 무관심과 충돌과 부딪침과 있을 때가 있어요. 아무리 복음을 전하고 도해도 변하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은 그냥 울림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전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고 그냥 나 혼자 조용히 신앙 생활하려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 본성을 거스르며 그 불신자들을 향한, 어두운 세상을 향한 마음에 불붙는 것과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나를 이끄실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뭐냐면 그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로 사람들에게 칭찬과 영광이 아니라 조롱과 무시를 당하더라도 순종하는 너의 모습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례미야와 같이 사명자로서 오늘도 살아가지 아니하면 안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초대교회때부터 지금까지 늘 성도들을 향하여 호의적이지 않았고 복음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것, 너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들으려 하지 않아 왔습니다. 복음의 심각한 메시지를 농담 정도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사명자로 살다 낙심하고 절망할 때, 복음을 전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의 문제를 넘어서 내 주변에 주님을 모르는 자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 건지고 싶은 그 마음이 하늘로부터 회복되기 원합니다. 한해 시작을 나의 인생으로부터 시작하지 마시고 나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지 마시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한해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명자의 삶으로 시작하는 한 해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하시고 주실 그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실 그 알지 못한 크고 은밀한 일들이 무엇일까? 기대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오지기 믿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살아갈 때에 나의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귀한 도구로 저와 여러분들을 사용하실 것이고, 우리 교회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올 한해가 주님을 바라보고 들며 주님께 부르짖으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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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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