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각지에서 온 40만 명의 사람들이 지금 분노와 보복에 들끓어 레위인에게 어찌된 일인지 직접 사건 보고를 듣습니다. 그들은 큰 문제를 객관적으로 본다거나 그것을 지혜롭게 잘 해결하려는 논리가 있는 게 아니라 시체 조각을 보고 가슴에 흥분과 분노를 일으킨 거죠. 그리고 분노를 통해 지금 과장된 사실로 왜곡하며 사람들이 막 흥분하고 일치 단결하고 지금 모여들고 있는 겁니다. 그런 분노하는 대중들에게 레위인이 일어난 일들을 보고 하는데 반쪽 진리를 이야기하며 지금 감정과 분노를 자극하며 선동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첫번째로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이 이 사건을 저질렀는데 마치 베냐민 지파 모두가 그런 것처럼 프레임을 씌웁니다. 또 하나 마치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자신의 첩이 자신은 보호하고 싶었는데 저 원수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것처럼 포장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한 잘못은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첩이었다면 왜 본인이 그 첩을 밖에 내 주었습니까? 억지로 끌어내서 그렇게 욕 보이게 만들고 비참한 성폭행을 당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굽니까? 날이 새도록 밖에 한번 나와보지 않은 사람은이 누굽니까? 바로 레위인 자신인데 이렇게 대중의 분노와 흥분과 가운데 있을 때 자기는 100% 피해자 의식에 빠지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한 잘못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자기가 마치 전적인 피해자인양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나는 내 첩을 너무 너무 사랑했는데 어쩔 수 없이 죽는 것을 바라보며 가슴을 찢고 눈물을 흘린 것처럼 지금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내 아내가 저 원수들에 의해서 능욕을 당하며 죽게 되었다…감정만을 자극하며 본인의 잘못을 쏙 빼놓는 겁니다
심지어 이런 프레임 씌우기를 통해 사람들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지금 레위인은 무엇보다도 회개해야 할 사람입니다. 첩을 두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 영적 지도자의 수치를, 세상 기준으로 살아가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삶을 회개 했어야 합니다. 죄를 훈계하거나 돌이키지 않고 죄를 품고 쌓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았던 삶을 회개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협박과 어려움이 있을 때 자신의 첩을 물건과 같이 밖으로 내버리고 끌어내서 대신 성폭행을 당하게 만들었던 그 중죄를 회개 했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회개해야 될 자가 바로 레위인인데 이 모든 죄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없어요. 아무런 안타까움도 아무런 돌이킴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는 피해자고 그저 자기는 억울한 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100%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 잘못 없이 100% 억울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40만명의 사람들이 분노와 흥분에 기름을 부어버리는 것입니다. 얘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분노와 흥분에 사로 잡히며 두가지를 결론 내리죠. 동족이자 함께 영적 싸움을 벌여야 하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모두 죽여야 하는 원수들, 이 레위인은 아무 잘못이 없는 순수한 피해자 불쌍한 사람…많은 대중들에게 흥분하며 사람들을 자극하는 자들의 특징, 그래서 자기의 복수를 위해 사람들을 선동하는 자들의 특징은 항상 자신의 잘못을 쏙 빼놓고 반쪽 진리로 사건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 대중을 이용하고 자신을 과장하며 자신이 100% 피해자인 것처럼 성급한 일반화를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세상 사람들을 선동하는 원리이고, 세상 사람들을 분노로 자극하는 원리입니다. 분노로 나의 적을 일방적으로 프레임 씌워 버리는 원리….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내가 분노로 지나치게 자극되어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사람들이 지금 열을 내고 있다면 그 때가 조심해야 될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나를 선동하고 누군가 나의 분노를 자극하며 그 분노를 통해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무언가를 보지 못하면 영적 어둠의 길을 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분노가 이끄는 삶을 통해 쉽게 어떤 사람과 어떤 그룹을 우리는 프레임 화시키며 그 사람들을 원수로 죽여야 될 사람으로 몰아세우며 분노로 아우성치는 그 모습이 영적 타락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자기를 위해 대중을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호도하며 분노로 하나 되게 만드는 나쁜 방법을 쓰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도자들을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대중을 분노를 통해 선동하여 분노를 통해 하나되게 만들며 분노가 일하게 만드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악한 지도자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있음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 깊이 새겨야 합니다. 분노로 쉽게 프레임을 씌우며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이 시대에, 분노가 나를 이끌고 우리 공동체를 이끌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분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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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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