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드디어 엘리야와 아합왕이 대면하는 역사적인 장면입니다. 엘리야를 만나는 아합왕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합왕은 엘리야를 만나자 마자 그런 기회를 다 날리고 악한 왕의 진면목과 적반하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왕이라는 자리는 하나님께서 백성을 섬기라고 세워 주신 거룩하고 구별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바알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무너졌고, 백성들을 생각하고 섬기는 마음이 다 사라진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기근으로 온 나라가 고통 가운데 빠져 있고 백성들의 신음 소리와 고통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그 기근 가운데 고통당하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나 탄식을 들을 귀가 없었고,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릴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백성들의 신음 소리나 고통보다는 자기 집안에서 기르고 있는 말과 나귀들이 더 중요했던 왕이 아합왕이었습니다. 3년 기근의 모든 원인을 제공한 악한 왕, 백성들이 죽어 나가도 꿈쩍하지 않았던 악한 왕, 아합이 엘리야 앞에 와서 그 모든 문제 원인을 엘리야에게 돌리는 겁니다. 그 모든 원인을 제공한 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바로 너라는 겁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기가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숭배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일어났고, 백성들에게 마음이 떠나 있는 악한 왕이라는 것을 전혀 바라보지 못한 채 엘리야에게 모든 탓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핑계 논리고 책임 회피하는 악한 왕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죠
이것은 영적 지도자뿐 아니라 비단 세상의 지도자에게도 정말 자격 미달의 모습입니다. 영적 지도자도, 세상의 지도자도, 리더가 된다는 것은 책임을지는 자리입니다. 책임을 지고 백성들을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잘 인도해 나가는 것이 리더의 자격이고 책임 있는 지도자의 자격이고 왕의 자격인데 지금 아합왕은 적반하장으로 모든 책임을 엘리야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민족적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자기는 잘못 없다는 것이고, 남 탓으로 일관하는 악한 지도자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아합 왕의 이런 모습이 우리와는 전혀 무관하고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죄에 뒹굴고 헤맬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살았을 때 우리 또한 이런 책임회피와 핑계 논리로 살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탓하고 사람 탓하고 환경 탓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려 하는 이 악한 아합의 특성 습성을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 솔직히 직면해야 합니다. 그렇게 책임 회피와 핑계 논리에 빠져 자기 방어에 급급한 아합왕을 향하여 엘리야는 빙 돌리지 않고 정확하게 찌르고 깨우는 직언을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기 때문이니 지금 정신 차리라는 겁니다. 잠언이란 말이깨우고 찌르는 말인 것처럼 지금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아합을 찌르고 깨우는 겁니다. 3년 동안 전 나라에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은 것은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에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결과라는 것을 왜 모르라며 정신차리라고 깨우는 겁니다. 이 기근은 당신 책임이고, 당신의 죄 때문이고, 당신의 우상숭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의 풍요와 번영을 약속하는 우상에게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영적 문제로 인한 결과라는 것을 정확하게 찔러 줍니다. 왜 당신은 그것을 보지 못하느냐라고 정확하게 아합왕을 향하여 직언하는 것입니다. 이 3년의 기근과 고통은 물의 기근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말씀의 기근임을 바라보는 영적 시작, 그 기근의 본질 문제는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기는 아합왕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임을 바라보는 영적 시각이 있어야, 이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하고 하나님과의 막히고 꼬인 관계를 푸는 것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생기는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합왕에게 이 엘리야의 직언과 찌르는 말이 안 들렸다는 것이죠. 마음을 닫고 귀를 닫고 있으니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탓을 엘리야에게로 돌리며 책임회피와 핑계 논리로 발버둥 치는 안타까운 왕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아합 왕에게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산에서 그 유명한 영적 전투를 신청합니다.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아세라를 섬기는 400명 그리고 바알을 섬기는 450명을 다 데려와서 영적 전투를 한번 해보자는 것이죠. 참 하나님이 누구시고 참 믿고 의지할 신이 누구인가를 만천하의 정확하게 드러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엘리야가의 영적 전투를 신청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선 이미 엘리야에게 이 3년의 기근을 끝내고 비를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비는 그냥 내리게 되는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선포하며,이 바알과 아세라가 얼마나 무능한 허상이자 우상인지를 드러내시면서 북 이스라엘의 그 가뭄을 해갈 하실 것을 다 보여주시는 겁니다. 동시에 엘리야는 백성들을 향하여도 정확하게 깨우며 찌르는 말로 경고를 합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극은 3년 동안 기근과 고통 가운데 죽을 만큼 힘들었음에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는 신앙으로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바알 신앙을 붙들고 겸하여 섬기고 있었다는 겁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이 아합왕과 차이 없이 머뭇거리고 주저하며 회색 지대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이거는 바알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과 바알을 겸하여 섬기며 주저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백성들을 향하여 엘리야는 어정쩡하게 믿지 말고 회색 지대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은 결단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하나님과 바알 우상 사이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이 세상이 약속하는 허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중적인 삶을 청산해야 될 때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한마디도 못했다는 것은 그 엘리야의 말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것이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보이지 않는 영적인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회개하기 나오는 것을 통해 모든 문제를 풀기 시작하는 그 은혜가 있다는 것이죠. 삶에 찾아오는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 앞에 나의 책임을 절감하고 회개하는 도구가 되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은혜의 도구가 되는 것임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땅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는 시각과 하늘에서 보이는 것, 즉 뒤에 보이지 않는 것을 동시에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 앞에 늘 영적으로 깨어 은혜를 바라보고 살기를 사모하며 구하기 원합니다. 회색지대에 머뭇거리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신앙이 아니라 기근과 고통을 3년 동안 당했으면 이것은 영적인 문제이며 영적인 말씀의 결핍이며, 이 기근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돌아가기 원하신다는 그 영적 뜻을 발견하고 이 시간 결단하고 청산하기 원합니다. 이 시간 신앙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분명히 믿고 바알을 포기하는 분명한 결단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회색지대에서 나와 분명하고 선명하게 주님을 믿고 따르는 고백과 결단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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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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