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사밧 왕은 좋은 시작과 출발을 보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그 비결을 알아 하나님에게 말씀을 구하고 은혜만을 구하고 바알신을 멀리하고 아세라를 찍어버리고, 북이스라엘의 변질된 문화 가치관에 젖지 않았기에 하나님이 견고하게 세워 주시며 강성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과 부와 영광이 극에 달할 정도로 풍성해지니까 안타깝게도 여호사밧이 곁길로 가고 변질과 타락하게 되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왜 여호사밧이 이렇게 인생의 정점에서 곁길로 가며 영적 하향곡선을 그리는 원인을 딱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합과 더불어 연혼 하였더라.” 아합왕이 누구입니까? 북 이스라엘의 왕 중에 영적으로 가장 타락한 왕 중의 하나 아니겠습니까? 그 아합과 더불어 연혼, 결혼을 통해 친인척 관계를 맺는 거에요. 결혼이 그냥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게 아니라, 상대방의 문화와 가치관을 다 수용하는 것이죠. 아합 집안이 가진 문화와 가치관과 더불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합이 가지고 있는 세상 가치관과 우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여호사밧은 물들고 변질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누구와 가까이 하는가가 여호사밧 왕이 변질과 타락으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정점에 부귀와 영화가 넘쳐날 때, 자신이 강성해지고 견고해진 원인이 오직 하나님임을 끝까지 붙들고 서 있어야 하는데, 아합이라는 자와 가까이하면서 곁길로 가고 변질하며 이탈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인척 관계를 맺은 아합 왕과 여호사밧 왕이 함께 힘을 모아서 길라못에 가서 전쟁을 할 것을 계획을 세웁니다. 여호사밧은 타락과 변질 중에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고 전쟁을 결정하자는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을 불러와 물어보는데, 무려 400명의 예언자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니까 지금 당장 올라가시라는 겁니다. 어떻게 4백 명이 한 목소리를 내며 이렇게 예언 하는가? 바로 이 예언자들은 겉으로는 예언자들 이었지만 사실 어용 예언자들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제대로 된 선지자가 아니라 한 목소리로 앵무새 같이 왕이 원하는 대답을 하는 겁니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종교가 타락하게 되면 항상 주변에는 이런 어용 예언자와 같은 사람들이 득세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 권력자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한결같이 앵무새와 같이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는 자들이 늘 포진되어 있는 거죠. 아합의 영적 타락의 본질은 결국 진리와 바른 길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고 내가 듣고 싶은 얘기를 예언자들을 통해 듣는 겁니다. 그런 예언자들이 한 두명 예외적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백 명이나 있었다는 것, 바로 그 당시 아합을 위시한 북 이스라엘의 영적 현실이었고요. 여호사밧 왕은 그런 타락하고 변질된 영적 현실에 지금 계속 물들면서 이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어두워질 때 암흑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로 선포 되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이야기를 이구동성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것을 성경은 영적인 타락의 증거로, 영적 암흑기의 증거로 선명히 지적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언자 400명이 지금 이구동성으로 아합왕 앞에 앵무새와 같이 말하는 이 모습을 보면서 여호사밧 왕이 뭔가 아직은 양심이 살아 있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라고 했냐면 이런 예언자들 말고 다른 예언자는 없냐고 물어봅니다. 아합이 대답하기를 미가야라는 예언자가 있기는 한데, 그는 늘 나에 대해 길한 것은 예언하지 않고 흉한 것만 예언하는 내 눈에 찍힌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아합 왕이 미가야 선지자를 미워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어둠이 빛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잡아 죽이려는 그 모습이 구약의 그대로 나타나는 거예요. 진리를 말할 때 빛이 비칠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진리를 말하는 자는 때로는 외롭고요 때로는 이렇게 미움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여호사밧왕이 그 미가야 선지자를 데려와 말씀 듣기를 촉구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아직 살아 있어서 400명의 예언자들 말고 들어야 될 진짜 말씀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그러면서 아합왕에게 듣기 싫어하고 그리고 나에게 좋은 얘길 안 한다고 그 예언자를 미워하고 저렇게 찍어 가지고 좌천 시키면 안된다....그 미가야에게 물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 내가 지도자의 위치에 선다는 것은 늘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없습니다. 나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되고요. 더 중요한 것은 나에게 그런 진리의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말 큰 자입니다 내가 듣기 좋은 얘기만 듣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 가까이 두는 자들은 결국 타락하고 변질될 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사밧 왕이 그 좋았던 신앙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동행의 은혜를 저버리고 타락과 변질되어 가는 것은 그에게 가까운 사람들이 누구였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 주변에 아합왕 같은 사람을 두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마십시오. 내가 가까이 두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변화되고 변질되고 타락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좋은 교회란 좋은 신앙 생활이란 내가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듣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을 진리로 들을 수 있는 곳이고 말씀이 나를 깨우치며 심령 골수를 쪼개며 변화시키는 곳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그 진리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며 나를 회복시키며 나를 깨우는 것이 진짜라는 것을 깨달아 하나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조율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풍성히 경험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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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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