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숨겨 주시며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공급하여 주셨는데, 그건 낭만적인 사건이 아니라 기근 속에서 얼마나 백성들이 고통당하고 있는지를 선지자가 몸으로 체득하는 처절한 과정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까마귀가 시냇물이 마르다 보니까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사르밧 과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시며 영적 현실을 직면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도 참 너무하신 것 같은게, 음식을 좀 줄 수 있는 집에 가서 어떻게 비비게 하시면 좋겠는데 굳이 가난하고 어려운 과부의 집에 가서 엘리야의 음식을 주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과부에게 가라는 것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 가혹한 일입니다. 그 가난하고 가련한 과부집에 가서 빌붙어서 과부에게 비빌 언덕을 제공하라고 얘기하는 것은 엘리야에게도 큰 부담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요. 과부집 말고 좀 비빌수 있는 집에 가면 안 됩니까? 제가 왜 굳이 과부집에 가서 그렇게 빌어먹어야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엘리야는 하나님께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종했고 그 사르밧 과부집에 가는 겁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 가난하고 힘든 과부집에 가서 음식을 먹으라고 명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과부집에 가게 하셨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과부가 살고 있었던 지역이 시돈에 속한 사르밧입니다. 시돈이 어떤 곳이냐면 이세벨 왕비의 고향이기도 한 곳으로 우상숭배가 가장 만연했던 극성 부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르밧 과부가 직면하는 기근과 피폐함은 단순히 물이 없고 음식이 없어 겪는 피폐함을 넘어 영적 피폐함으로 고통당하는 백성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죠. 풍요와 번영을 주는 우상이라고 바알에게 모든 것을 걸었는데 그들이 처한 영적 현실은 메마른 정도가 아니라 피폐해서 죽기 일보 직전인 상태까지 간 것을 이 사르밧 과부의 처절한 현실을 통해 부여주시는 것입니다. 까마귀를 통해 음식을 먹게 하신 것도 사르밧 과부를 통해 음식을 먹게 하신 것도 물론 엘리야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이고 은혜였지만 동시에 엘리야로 하여금 바알숭배가 극성한 그곳에 영적으로 피폐해서 죽기 일보직전인 과부의 모습을 직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 집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먹고 사는게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절대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한끼 먹을 것 밖에 없는 집, 이 마지막 식사를 만들어 먹고 아들과 죽으려고 기다리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벼룩에 간을 빼먹는 것도 아니고 그 집에 가서 물을 달라 그랬고 떡을 달라 요청합니다. 엘리야는 정말 한 끼 식사밖에 남은게 없는 절대 빈곤에 있는 그 과부에게 먼저 자신을 위해 떡을 만들라고 요청합니다. 정말 한 끼 먹을 것 밖에 없는데, 그거 먹고 나서 아들과 나는 죽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엘리야는 딴 집에 알아보는게 아니라 그 남은 한 줌 그 밀가루와 기름으로 먼저 나를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먼저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내 아들을 위해서 먹으라는 건데 그 후에 너와 내 아들을 위해 만들게 없는데, 그 말은 선지자 대접하고 죽으라는 말과 같이 여겨지는 그런 요청을 하는 겁니다. 왜 엘리야는 이렇게 무정하게 이기적으로 이 사르밧 과부를 시험하는 것일까요? 사실 이렇게 무리한 말도 안되는 요구하시는 건 이 과부의 집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과부는 지금 어차피 한 끼를 먹고 죽으나 한 끼 안 먹고 죽으나 죽을 예정이었어요. 어차피 남은 건 한 끼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르밧 과부가 사는 방법은 자신이 열심히 뛰고 발버둥 친다고 사는게 아니라 하늘의 축복이 임해야만 사는 집입니다. 그 하늘의 축복이 임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자가 누구냐면 바로 엘리야입니다. 이 엘리야의 요구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남아있는 그 한끼 식사를 먼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에게 가져오고 드리면, 집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약속입니다. 정말 비빌 거 하나도 없는 사르밧 과부에게 가서 한 끼 먹을 거 밖에 없는 그 집에 들어가 그 한 끼 남은 거를 나를 위해 먼저 대접하면 너에게 하늘의 복이 부어진다는 것이죠.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지만 머리로는 믿을 수 없는 약속이고 이해되지 않는 약속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입장에 한번 서보셨습니까 뭐 저런 선지자가 다 있어…이러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야는 과부에게 믿음의 반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축복으로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 그 하늘의 축복이 이 집에 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될게 뭐냐면 믿음의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넘버원인 집에 하나님의 말씀이 넘버원인 집에 하늘의 축복이 임하기 때문에 지금 그 믿음의 순종으로 반응하도록 엘리야가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늘의 축복과 은혜를 기도하고 간구하는 제목들은 대부분 그 기도 제목이 내 힘으로 스스로 풀 수 없는 것을 놓고 기도하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뛰고 발버둥쳐도 되지 않는 나를 넘어서는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처한 상황을 뛰어넘는 것과 같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 내가 열심히 뛰었고 노력했고 발버둥 쳤는데 내가 스스로 상황을 풀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놓고 우리는 하늘의 축복과 은혜를 구해야 되는 기도 제목이 되는 거죠. 그래서 기도할 때 믿음의 반응이란 두 가지를 포함합니다. 내가 이것을 풀 수 없으니까 주님께서 이 불가능한 일을 해결해 주시기를 전심으로 간구하는 것이고 동시에 기도하면서 내 안에 걱정과 근심과 염려를 내려놓는게 믿음의 반응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기도 제목은 근심 걱정으로 해결되지 않고, 내 노력과 힘으로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이 하늘의 축복과 개입하심이 없으면 어차피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근심 걱정을 통해 염려를 통해 전혀 문제를 풀 수 없음에도 내 마음에 가득채우고 기도하려 하니 기도가 막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쌓인 근심 걱정은 언제나 내 삶에서 기도를 밀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이 기도제목을 풀어 주시리란 믿음과 함께 기도를 통해 내 근심과 걱정을 밀어내는 것이 내려놓는게 믿음의 반응이라는 것이죠. 기도를 붙들고 내 염려와 근심을 내려놓는 것이고 기도를 통해 내 염려와 근심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사르밧 과부는 믿음의 반응으로 순종합니다. 한끼 식사밖에 남지 않는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께 넘버원으로 드리며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전적으로 믿어 머리를 굴리지 않고 올인합니다. 엘리야의 믿음도 크지만 사르밧 과부의 믿음이 훨씬 더 클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듣기라도 했지…사르밧 과부는 엘리야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말씀을 듣는데, 그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겁니다. 머리를 굴리거나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이것을 내려놓고 엘리야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해서 한끼 남은 식사를 먼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기의 간절한 필요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먼저 드렸는데 실제로 이것은 자기의 생명을 드린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거 전부를 드리며 하나님은 제 삶에 넘버 원임을 온맘다해 순명으로 고백했습니다. 그 믿음의 반응 가운데 사르밧 과부의 집이 놀라운 하늘의 기적이 부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기근 중에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기적이 그 사르밧 과부 집을 살린 겁니다. 하늘의 축복이 임하며 그 가족이 죽음 가운데 건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결핍과 기근은 본질적으로 영적 결핍과 영적 기근입니다. 우리의 삶은 매일 매일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필요한 자이고 부어주시는 것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사르밧 과부와 같이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늘의 축복과 개입하심이 나에게 임하기를 사모하십시오. 주님의 말씀과 명령이 순종하며 자기는 주님을 위해 죽겠습니다…고백하며 말씀에 인생을 걸고 드린 믿음의 반응에 하늘의 축복으로 임하여 그 가족을 살려 주신 것입니다.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순종의 결단을 통하여 그 집이 오히려 건짐을 받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도 할 수 없는 나의 상황 가운데 어차피 안 되는 나의 삶에 기도를 통해 근심과 걱정을 주님께 맡기는 여러분들의 믿음의 반응이 있기를 원합니다. 바라기는 나의 마음 쏟는 기도가 근심을 밀어내고 염려를 밀어내는 기적을 체험하며 주님께 순종하며 응답받는 놀라운 삶이 우리 인생에 펼쳐지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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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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