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압살롬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아버지 다윗의 왕권을 빼앗고 말도 안 되는 끔찍한 일과 극단적인 일을 통하여 멸망과 파멸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여정을 증언합니다. 압살롬은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는 육의 사람으로, 아버지 다윗은 눈에 보이는 현실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고 붙드는 하나님의 사람, 영의 사람으로 대조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인 현실에 압도당하는 육의 사람 압살롬과 그의 군대가 어떻게 파멸과 멸망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지를 말씀은 계속해서 증언합니다. 세상 사람이라는 것이 꼭 나쁜 사람, 타락한 사람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실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 봐서 착하고 좋을 수 있지만 그들이 바라보고 붙들고 결정 내리는 모든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입니다. 우리가 영의 사람이 된다는 것,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운 사람이 된다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바라보는 눈과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더 중요하게 바라봐야 될 것은 보이는 현실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고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보이는 현실 넘어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예가 세 가지 이상 등장합니다. 압살롬이 갑자기 후세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눈에 보이는 현실은 그냥 즉흥적으로 압살롬의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거기다가 분명히 각주를 달아놨는데, 하나님이 압살롬에게 그 생각을 하도록 이끄셨다라는 것을 정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후새가 다윗왕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령을 보내는데 그 전령이 들키지 않고 다윗왕에게 소식을 전하게 되는 과정이,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 전령을 돕고 인도하셨음을 선명히 증언합니다. 다윗왕에게 이 소식을 전하기에 몰래 출발한 전령이 있다는 것을 압살롬의 종이 눈치 챕니다. 그래서 이 두 사람을 빨리 잡으려고 막 추격을 하는데 의외의 사람을 만나서 이 두 전령을 우물 속에 숨겨주고 곡식으로 덮어서 목숨을 건져 줍니다. 그 과정이 마치 뭐와 비슷한가 하면 여리고성에 들어간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기생 라합의 모습과 너무 비슷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그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전령이 다윗왕에게 소식을 전하러 가는 길에 목숨을 잃을 위기 가운데 우물 안에 숨김을 받고 보호함을 받아 목숨을 건지고 다윗왕에게 소식을 전하게 되는 모든 과정이 바로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 봐서는 운이 좋았다…이걸로 끝납니다. 그런데 영적 현실은 뭐냐면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게 손길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것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부분에 또 하나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이 등장하는데, 다윗왕이 너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전혀 의외의 사람들을 통해 보호함을 받고, 음식을 제공해주는 것을 증언합니다. 저보다 다 오래 사신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여러분들 다 경험하셨을 겁니다. 내 삶의 고난과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내가 기대하고 내가 예상한 사람들은 대부분 떠나가고 안 도와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 내가 어려울 때 저 사람은 나를 도와주겠지…나를 건져주겠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대부분 다 떠나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실망하는데, 반면에 전혀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하여 도움의 손길을 받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는 사람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먹이여주심을 고백하게 하시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때로는 기다리게 하시며 인내하고 웅크리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때를 민감하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가 바로 다윗이었고 광야로 쫓겨가서 그동안 무뎌졌던 이 영적인 감각과 영적인 시야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는데 사단 마귀 또한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증언합니다. 아히도벨은 압살롬이 그렇게 극단적인 결정을 하도록 이끈 아주 악한 신하인데, 압살롬이 지금 자기의 모략 대신에 후세의 모략을 선택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목을 매 인생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아히도벨이 악한 자이며 사단의 심부름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것을 우리에게 증언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의 계획이 실행되지 못한 것은 그냥 단순히 계획이 실행되지 않은 것 뿐만이 아니라 사단 마귀의 궤계가 실행되지 않는 거라는 것을 발견했고 그 끝에 가면 악인인 압살롬이 죽게 된다는 그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이 미리 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보게 되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제일 먼저 발견한 자는 사단 마귀입니다.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데 사단 마귀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고 사단 마귀도 속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깨어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붙들지 아니하면 눈에 보이는 현실에 매몰되며 눈에 보이는 현실만 붙들고 살다 육의 사람과 같이 세상 사람과 같이 살다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매몰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눈에 보인 현실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보호하심을 체험하고 붙드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만 바라보고 이것의 압도당하여 살아가는 삶을 넘어서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은 나를 떠나지 않으셨구나..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는구나…이 보이지 않는 영적 현실을 바라보는 기적이 임하기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들며 살아가는 삶, 언제 어디서나 보이지 않는 천국과 영적 현실을 실체로 바라보고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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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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