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사울 왕의 비참한 모습과 다윗의 쓰임 받는 모습이 선명히 대비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현상금도 걸고, 자기 딸과 결혼할 수 있는 특권도 걸었지만 그 어떤 사람도 거인 골리앗 앞에 나가 싸우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진 카드는 미덥지 못하고 싸워서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소년 다윗 밖에 없었습니다. 사울 왕에게는 다른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다윗에게 골리앗과 나가 싸우는 것을 허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울은 자신의 갑옷을 다윗에게 입힙니다. 다윗에게 자신의 갑옷을 입혀 골리앗과의 전쟁을 내보내는 사울왕의 모습, 이게 얼마나 안타깝고 비참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서 가장 앞서 싸워야 할 사람은 누구냐 하면 사울왕 자신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는 왕으로서 블레셋과의 영적 전쟁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따르라…명령하며 앞서 나가서 싸워야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왕은 골리앗에게 압도 당하여 두려워하고 벌벌 떨며 이 전쟁에서 내가 앞서 싸워야 된다는 것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사울왕이 나가 싸워야 되는 자리에 다윗이 나가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갑옷을 입고 싸워야 되는 전쟁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문제의 본질이 뭔지 모르는 사울왕은 이 어린 다윗에게 왕의 갑옷을 입히고 대신 나가 싸워 달라고 부탁하는 비참한 왕이 되었습니다. 사울왕과 대비되는 한 사람이 떠오르는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전쟁이 시작됬을 때 많은 뉴스들은 수도 키이우가 3일 만에 함락 될거라고 대부분 예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가족에게 피신을 권하고 망명의 길로 마련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망명을 거절하고 3일만에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쟁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대통령 하나가 바로 서 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승패가 결정 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무너지지 않고 계속 전쟁을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겉으로 봐서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고 3일만에 무너지는 100% 승산이 없는 전쟁이라 그랬는데 대통령 한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앞서 싸우기로 작정하고 나아가니까 그 백성들이 함께 지금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보게 됩니다. 왕으로서 자리는 유지하고 있고 아무런 영향력과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비참하고 불쌍한 사울왕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왕의 갑옷을 다윗에게 입히고 대신 나가 싸우라고 하는 사울왕의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은 하나님의 영이 떠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고, 더 나아가 앞으로 다윗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복선이기도 합니다. 사울은 다른 사람보다 키가 월등히 컸기 때문에 당연히 사울의 갑옷이 다윗에게 맞을 리가 없습니다. 다윗은 맞지 않는 사울왕의 갑옷을 입고는 나가 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맞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사울왕의 갑옷과 무기를 벗어 버립니다. 대신 자신에게 익숙한 옷을 입고 익숙한 무기를 가지고 나아가는데 그게 돌 다섯 개와 막대기입니다. 다윗 자신이 사자와 곰과 싸워 이길 때 썼던 익숙한 것들이지요. 영적 전쟁을 싸우러 나갈 때 세상 것 들고 나가지 말고 다른 사람 갑옷 입고 나가지 말고 나에게 익숙한 도구와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영적 전쟁의 도구, 세상에서 위기와 어려움을 당할 때 여러분들이 들고 나가 싸워 이겨본 익숙한 도구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과 기도에 익숙해서 기도로 싸워 이겨본 경험과 말씀으로 싸워 이겨본 경험이 있기 원하십니다. 말씀과 기도가 익숙한 도구가 되어야 문제가 탁 터졌을 때, 일이 딱 생겼을 때 제일 먼저 붙들 수 있는 것이 말씀과 기도가 되며, 이 세상에 전쟁에서 나가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내면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골리앗에게 말씀과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 나에게 익숙한 도구 되기 원하십니다. 다윗이 그렇게 돌 다섯 개와 막대기를 들고 나오니까 골리앗이 보인 반응은 무엇입니까? 어의 없어 하고 욕하고 저주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나에게 익숙한 영적 도구를 가지고 나가 싸우는 것을 보고 것을 보고 업신여기고 비웃고 저주합니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 가 영적 전쟁을 벌였던 방법은 칼과 활이 아니라 항아리와 불이었습니다. 전쟁의 도구로는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것이지요. 말도 안되는 것을 가지고 나와 싸운다고 멸시합니다. 영적 전쟁은 말도 안되는 전쟁입니다. 영적 전쟁은 나의 힘과 눈에 보이는 무기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나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싸우시는 전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아무런 전쟁 도구도 없이 목숨 걸고 나아가는 겁니다. 정말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나아가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씀을 붙들고 기도를 붙들고 나아가는 다윗을 멸시하고 비웃고, 저와 여러분들을 멸시하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이 영적 전쟁임을 믿기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붙드는 다윗과 같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 시간 사울과 같이 내가 나가 싸워야 되는 전쟁인 것을 모른 채 벌벌 떠는 비참한 인생 되기 않기 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영적 전쟁을 나가 싸우지 못하며 싸우기를 포기하고 벌벌 떨고 있는 이 세상에 다윗과 같이 주님의 이름을 붙들고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나아가기 원합니다. 그 하나님만을 철저히 신뢰하고 그 이름을 붙들며 이 세상을 향하여 다윗과 같이 기도와 말씀의 돌을 골라 나갈 수 있는 영적 담대함이 있기 원합니다. 영적 군사로 부름받았음을 잊지 않고 그러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말씀과 기도로 공급받아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익숙한 일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인생을 풀고 기도로 인생을 푸는 것이 익숙한 도구가 되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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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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