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드디어 압살롬과 반란군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스스로 왕이 되는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자마자 마치 새로운 왕을 기다렸다는 듯이 추켜 세우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마져 듭니다. 압살롬이 그렇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차지할 때, 다윗의 친구였던 후세가 압살롬에게 나아와 고개를 숙입니다.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들어간 압살롬과 군대를 향하여 후새가 만세 왕이요 만세… 아부를 하였습니다.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압살롬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로 아부를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다윗을 배신하고 새로운 왕인 압살롬에게 충성하기 위해 나아온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였습니다. 다윗왕은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자기에게 선대하는 사람을 그냥 받지 않고 그 도움을 받지 않으며 그 깊은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광야에서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반면에 압살롬은 다윗의 친구였던 후세가 압살롬에게 나왔을 때, 마음 속에 숨겨진 뜻을 분별하지 못한 채 그를 그냥 받아들이는 영적 둔감함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아부하고 고개를 숙이고 온 후새가 그 가슴에는 칼을 품고 위장으로 전향했다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한 채 압살롬은 귀에 듣기 좋은 소리에 마음이 넘어가고 후새를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결국 그가 망하게 되는 비결이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둔감하게 되면 인생이 잘 될 때는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분별력을 상실하고, 인생이 어려울 때 눈 앞이 캄캄해져서 분별력을 상실하면서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이익을 위해 찾아오고 떠나는 존재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한 채,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 하는 사람들도 나의 주변을 채우면 결국 그 인생은 망하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말씀은 선명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가 결국 내가 얼마나 그 자리에 오래 있을 수 있는가를 판가름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영향력이 있는 자리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 칭찬하는 소리만 듣게 아니라 바른 소리, 분명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한쪽 소리만 듣게 되면 결국 그 자리는 위태하고 곧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v이런 후새의 위장 잠입과 전향은 결국 다윗왕을 돌아오게 하지만 압살롬의 입장에서는 결국 칭찬과 눈에 마음이 가려져서 영적 분별력을 상실한 채 무너지게 되는 시발점을 만든 것입니다. 압살롬에게는 이런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에게만 쌓여있는 것이 결국 압살롬을 그렇게 빠르게 무너지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분별하고 깨어있다는 것, 영적으로 민감하다는 것은 이렇게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 듣기 원하시는 말씀을 순종하며 듣는 것입니다. 내 귀에 듣기 좋던 듣기 싫던 상관 없이 들어야 할 진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내 마음에 새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귀가 듣기 좋은 소리에 가려지지 않으며, 상황이나 환경에 가려지지 않으며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것, 그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성도로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비결입니다. 더 나아가 압살롬 주변에는 단순히 압살롬의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들만 가득한게 아니라 압살롬의 마음의 상처에 불을 질러 극단적인 일을 서슴치 않게 하는 간신배들이 가득했다는 것이 더 큰 비극입니다. 압살롬이 가지고 있던 치명적인 약점, 극단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하는 그 마음에 불을 질러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도록 부추기는 것입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왕이 되었다고 대관식을 하든지 파티를 하든지, 긍정적으로 자신이 왕 되었음을 표현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반대로 끔찍하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아버지 다윗보다 더 힘이 있는 왕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간신배들인 측근들이 압살롬의 마음에 불을 지르며 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아버지 후궁들을 백주 대낮에 겁탈하는 것으로 끔찍하게 증명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후궁들을 대놓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강제로 겁탈하는 겁니다. 자식으로 아버지의 여인을 백주 대낮에 사람들 앞에서 건드리는 것을 통하여 이제 더 이상 이 나라는 아버지 다윗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다… 나는 아버지보다 힘이 더 세다… 아버지에게 이렇게 미운 일을 해도 아버지는 나에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또 한번의 극단적 초강수를 보이는 것이죠. 자식으로서도 할 수 없고,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대역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것입니다. 측근들을 통하여 압살롬이 계속 휘둘리고 말도 안 되는 패륜의 일을 하면서 선을 넘는 것을 넘어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짐승과 같은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하는 그 압살롬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의 모습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분노를 일으키는 죄라는 것을 망각한 채, 이게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짐승과 같은 일이라는 것 망각한 채 압살롬은 그런 끔찍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 힘을 잡게 되고 권력을 잡게 되면 이렇게 끔찍한 일 극단적인 일 말도 안 되는 폐륜과 같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들이 내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한다면 나를 무너지게 할 수 있음을 분별하는 영적으로 깨어있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내 귀가 듣기 좋은 얘기로만 가득하고 녹아져 있으면 결국 그것이 나를 무너뜨리는 독이 됨을 잊지 마십시오. 내 마음이 깨지고 마음에 불이 있으면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마음의 불이 있는 자들은 힘이 있고 권력이 생길 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극단적인 초강수를 두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내 마음의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어두워지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힘을 얻는 것을 열망하기 전, 내가 먼저 하나님께 겸손하게 쓰임 받으며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영적으로 민감해지는 것이 최우선임을 깨달으며 늘 주님 앞에 순전하게 쓰임 받는 거룩하고 복된 주님의 종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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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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