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버림 받고 있는 사울왕의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바뀐 게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현직 왕으로 사울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고 왕을 중심으로 모든 나라가 지금 아무 문제없는 것처럼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겉보기엔 그렇게 사울이 왕의 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사울에게서 이미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서서히 안에서부터 무너져 결국 껍데기가 다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죠. 더 이상 사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영광이 떠난 것이죠. 엔진 없이 달리는 차가 언젠가는 멈춰서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부터 영적 하향 곡선을 그리며 하나님 은혜가 떠난 껍데기 인생의 사울왕이 멈춰서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왕의 자리는 앉아 있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점점 침몰할 수 밖에 없는 영적 하향 곡선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지위와 자리와 능력 가지고 사람들을 평가하고 그런 사람들을 중요하다고 만납니다. 그런데 성도인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자리나 지위 뒤에 보이지 않는 기초와 뿌리를 볼 수 있는 눈,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가 함께 하지 않는가를 분별하며 교제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난 사울 왕에게 대신 악한 영, 여호와의 부리시는 악신이 번뇌하게 했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남으로써 사울 왕에게 생긴 현상은 악한 영, 악신에게 시달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번뇌했다”는 말의 히브리어의 의미는 “두렵게 하다 공포를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껍데기로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울왕은 텅빈 강정과 같이 악한 영의 시달려 두렵게 하고 공포를 느끼게 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사울을 그렇게 괴롭히라고 직접 명령하신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아니라 그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히도록 하나님이 놓아 두셨다는 것입니다. 주 은혜가 떠나가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기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떠나가면 이렇게 악한 영이 직접 거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도 사울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나게 되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게 되면 악한 영이 비집고 들어가 괴롭히며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 그러고 점점 편리해지고 모든 게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내면은 점점 텅 비고 메말라가며, 수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언제나 온전히 함께 하시며 떠나가지 않는 것이며, 주님의 은혜 꼭 붙들고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없이 무엇을 해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신경 가운데 놀라운 고백이 바로 성령 안에 거룩한 공회와, 성령 안에 성도가 서로가 교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통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교류하는 것이죠. 성령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따라 그 은혜를 들고 성도로서 우리가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울 왕에게 사라진 것이 뭡니까? 바로 영적인 교통이 없는 것이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영이 떠나 갔기 때문에 하나님과 영적인 교류가 없는 겁니다. 로마서 8장을 통해 우리는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정확하게 구별해서 배웠습니다. 육의 생각은 죄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입니다. 사울 왕이 악신에 시달리는 게 바로 악한 영이 던져 주는 생각을 붙들고 죄와 사망의 생각에 사로잡혀 두려움과 불안에 살아가는 겁니다. 죄와 사망의 생각, 어둠의 생각만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인생이 번뇌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단이 던져 주는 육의 생각을 붙들게 되면 우리에게 늘 마음에 걱정과 번민과 고통으로 이 죽음과 사망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붙들고 영적인 교통 가운데 살아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울왕이 이렇게 악한 영이 던져 주는 생각에 사로잡혀 번뇌하고 있는 것을 신하들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사울의 신하들은 다 알았습니다.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고 이제는 악한 영이 그의 생각을 지배하며 번뇌케 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처음에는 숨길 수 있지만 이렇게 주변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수금 잘 탈 줄 아는 사람을 왕 앞에 데려오자고 말합니다.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것은 단순히 악기를 잘 다루는 사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수금은 바로 찬양의 도구이지요. 수금을 통해 영적인 교류와 함께 하나님께 찬양하는 자를 사울 왕 앞에 데려오자 말하는 겁니다. 찬양하는 수금으로 사울왕의 번뇌 하는 마음, 사로잡혀 있는 어둠과 사망의 생각이 물러 가게 될 것 같다고 조언하는 것입니다. 이 신하들의 조언이 역사적인 만남, 사울왕과 다윗이 만나게 되는 접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번뇌하고 죄와 사망의 생각에 나를 누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하며 죄와 사망의 생각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찬양을 영적으로 하며 영적인 교통 가운데 찬양함을 통해, 번뇌와 두려움이 떠나가는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지위와 자리를 유지하기만 하면, 여전히 돈을 벌 수 있기만 하면, 내가 그것을 가질 수 있기만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영이 나와 떠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생각이 사단이 주는 미혹임을 분별하기 원합니다. 아무리 지위와 자리가 높아도, 아무리 재산과 권세가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자들의 끝은 결국 파멸과 무너짐의 허상이라는 것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 없이, 하나님 은혜 없이 붙드는 지위와 자리가 결국 우리를 파멸로 나아가게 하는 저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울왕의 비극은 하나님의 영이 떠났는데도 그 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사울 왕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또한 이렇게 십자가의 은혜 매이지 아니라면 주님의 영광을 붙들지 아니하면 내가 어떤 자리와 직을 유지하고 있건 어떤 일을 하던 이렇게 내 마음의 괴롭힘과 두려움 가운데 곧 멈춰서는 엔진 없는 차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직분과 지위를 유지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돈을 벌어야 내가 산다는 것을 분명히 믿고 살아가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떠난 나는 죽음이다…라는 것을 철저하게 고백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주님 십자가 앞에 단단히 매어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2월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