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계속해서 다윗 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아들이 아버지의 등에 칼을 꽂고 반역함으로 지금 왕궁을 버리고 피난 길을 가고 있는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처한 다윗 왕을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허겁지겁 예루살렘을 피해 도망 길을 오르는 다윗 왕, 겉으로 봤을 때는 큰 위기와 어려움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영적 눈으로 봤을 때는 그동안 그가 왕궁에서 나태해지고 무뎌진 그의 영적인 감각을 깨게 하는 소위 말하는 찌르는 축복이 되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분명 위기이자 어려움이고 아들을 피해 피난을 가는 부끄러운 상황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예전 다윗의 광야 영성을 회복하는 정신이 확 들게 하는 축복이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왕궁에 있었던 영적인 나태함의 상황이었다면 그냥 얼씨구나 좋다… 그러면서 나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궤가 나와 당연히 같이 가야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영적으로 다시 깨어난 다윗왕이 하나님의 법궤가 같이 따라가는 것을 막고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는 영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며 나는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수단화하고 도구화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고백을 가진 채 그 하나님의 법궤를 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왕궁에서는 겉으로는 행복했고 평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영적으로 나태해졌고 둔감해졌습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가지 말아야 될 곳에 가면서 간음죄와 살인죄를 저지르게 되었고 결국 그걸로 말미암아 그의 집안에 큰 우환이 찾아오고 동일한 죄가 자녀들을 통하여 반복되는 끔찍한 역사가 지속되었고 아들이 자신을 배신하여 왕궁을 버리고 도망가는 피난 길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어려움이 닥치니까 그 예전 광야 영성이 회복되면서 정신이 확 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계속해서 그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처한 다윗 왕이 보이는 영적인 두 가지의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나의 어려움과 위기 속에 나를 찾아와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들을 향한 영적 반응이고, 또 하나는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 나를 모욕하고 저주하고 등 돌리는 사람들을 향한 영적 반응입니다. 이 두 사건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위기와 어려운 가운데 영적 반응을 보이며 살아야 할지를 깊게 말씀으로 새기기 원합니다. 첫 번째 사건은 나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도움의 손길을 주는 척하면서 이용하기 위해 오는 자들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피난 길을 가고 있는데 뜻밖의 사람이 찾아오는데 그가 바로 요나단의 아들이었던 절뚝발이 므비보셋의 종이었던 시바였습니다. 종 시바가 피난 길의 다윗 왕에게 음식을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맞이하는 겁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얼마나 그게 귀합니까? 지금 힘들고 어려운 피난 길에 상당히 많은 음식물을 가지고 와서 호의를 베풀고 선의를 베푸는 거 같으니까 얼른 그것을 받고 그것을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무리 자기가 힘들고 어려웠고 위기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넙죽 받지 않았다는 거예요.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정확하게 묻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왕의 모든 재산의 가로채려했던 시바를 므비보셋의 종으로 주었던 옛날 사건을 떠올리며 시바라는 종의 히스토리를 봤을 때 이 사람은 그냥 나를 순수하게 그냥 호의를 가지고 음식을 베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위기와 어려움 가운데서도 분별하는 것입니다. 위기 가운데 눈앞이 캄캄해지고 막히면 나에게 도움 주고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주는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덥석덥석 물게 되는게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어려울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많은 경우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오는 사람들일 수 있음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다윗은 그것을 분별한 겁니다 네가 무슨 뜻으로 이 많은 음식들을 가지고 왔는가…묻는 것입니다. 더 수상한 건 뭐냐면 종이 지금 왔는데 주인 므비보셋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안장을 해 가지고 온 것도 수상한 겁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 음식을 받기 전에 무슨 뜻으로이 많은 음식을 가져왔고 왜 주인은 오지 않았느냐…그 속마음과 의도를 묻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지금 예루살렘에 도망 오지 않은 이유가 뭐냐면 다윗이 그렇게 아들에게 배신당하여 피난 길을 가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의 나라 사울의 왕가를 다시 회복되고 므비보셋이 그 왕위에 올라갈 거라고 기대하며 안 왔다고 고발하는 겁니다. 사실 이것은 나중에 19장을 통해 배우겠지만 종 시바가 다윗왕과 므비보셋의 사이를 이간질하여 자기의 이득을 취하려는 악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자기 주인인 므비보셋을 깎아내리고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이간질을 하는 것을 통해 자기 이익을 얻으려는 흑심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위기 속에서 나에게는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고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음식이 정말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덥석 받지 않고 덥석 물지 않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위기와 어려움에 있으면 우리는 눈앞이 캄캄해져서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나에게 좀 도움 준다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붙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게 결국 나를 더 힘들게 만드는 많은 경우가 많이 있는 겁니다. 나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이렇게 나에게 도움을 주는 척하면서 나를 이용하려고 나를 혼란하게 만들고 나를 흔드는 것이 나를 더 어렵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옛날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었고 교회 안에도 있고 교회 밖에도 있다라는 것을 잊지 않고 분별하며 살아가는 것이 영적으로 민감하고 깨어있는 자의 특징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다윗의 위기 상황 가운데 이 놀라운 영적 분별력과 영적인 반응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피난 길과 광야길 가운데 환경과 상황은 어렵고 위기 상황이었지만 영적으로는 그에게 축복이고 영적으로 광야 영성을 회복하는 축복의 길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중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우리 인생의 광야로 나아가는 것이 겉으로 봐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영적으로는 우리를 깨워주며 우리를 다시 한번 살리는 영적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예전에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구체적으로 체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광야의 길로 들어가는 다윗왕은 예전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현재화하며 영적으로 민감해지며 내면이 든든해지고 단단해지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그 어려움과 위기 가운데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의 어려움 가운데 도움을 주는 척 하면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렵고 힘들고 외통수에 걸려있는데 그 사람을 도와주기는 커녕 그 사람의 눈물과 위기와 어려움을 이득으로 취하려는 이런 사람들이 나에게 찾아올 수 있다라는 것을 분별하는게 바로 영적 능력입니다. 그 가운데 뜻이 무엇이고 이렇게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분별하여 내가 휘말리지 않는 지혜를 갖는 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분별해야 될 영적 지혜인 줄 믿습니다.도움을 무조건 받는 것이 아니라 덥석 무는 것이 아니라 이 도움과 호의 뒤에 숨겨진 뜻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분별하여 그것에 이용당하지 않고 더 큰 상처받지 않는 것이 영적 분별력임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죄인이고 타락했으며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존재임을 잊지 말고 그들을 사랑하되 지나치게 신뢰하지 말고,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라는 것 잊지 마음에 새기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들의 도움과 호의에 지나치게 기대지 말고, 하나님의 도움과 호의에만 기대며, 하나님의 음성에만 충실하며 하나님만 믿고 신뢰하며 영적으로 분별하여 나아가십시오. 위기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고 바른 영적인 분별력과 결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나를 살리는 도구로, 바른 영적 반응을 통해 도약으로 나아가고 승리로 나아가는 삶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
아카이브
April 2025
카테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