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말이 있죠. 종로에 가서는 뺨 맞아도 아무 얘기도 못하다가 괜히 만만한 데 가서 화풀이하는 것을 우스갯소리로 표현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만만한 사람에게 자신의 분노를 폭발하고 희생양을 찾아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인간의 악한 본성을 보게 됩니다. 어제 말씀을 통해 삼손의 장인이 삼손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딸을 그냥 시집보내서 결혼이 파경에 이르게 되었음을, 그리고 나서 삼손은 화가 나서 여우 300마리를 맨손으로 그 꼬리들을 다 묶어서 불을 질렀음을 배웠습니다. 그 불붙은 여우들이 밭에 있는 블레셋 사람들의 일년 양식이 있는 다 태워 버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불타고 있는 일년 양식을 바라보며 망연자실 했을 것입니다. 자기들 1년 양식이 불붙은 여우 300마리로 다 타버리는 그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라보며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겁니다. 그리고 삼손이라는 사람이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뭐냐면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을 향하여 지금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삼손을 대적해야 분노를 터뜨려야 되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분노를 터뜨리고 복수한 사람, 분풀이한 사람들은 삼손이 아니었습니다. 삼손 대신 그 장인과 결혼하려 했던 여인에게 분풀이를 하는 겁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데 삼손과 싸울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삼손은 싸우기에 너무 큰 존재가 되 버린 겁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분노가 지금 폭발하고 홧김에 싸워도 싸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거에요.
그러니까 그들이 취한 방법 뭐냐면 만만한 사람을 희생양을 찾은 겁니다. 모든 원인을 누구에게 돌리냐 하면 그 처갓집으로 돌리는 겁니다. 그 장인과 딸이 잘못해서 이런 일을 한 거니까, 너희가 나의 분노를 대신해 죽어 줘야 된다는 희생양을 찾은 거예요. 그래서 이 두 사람을 끔찍하게 태워 죽입니다. 그 장인과 여인을 불에 태워 화형식을 거행한 것입니다. 마치 북한의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희생양으로 삼아 끔찍하게 로켓포로 죽인 거나 마찬가지이지요. 블레셋으로 대표되는 세상 문화가 얼마나 이중적이며, 얼마나 끔찍한지 모릅니다. 정작 싸울 대상인 삼손에게는 싸우지도 못하고 찍소리도 못하고, 약한 두 사람을 잡아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우며 끔직하게 죽여버리는 이 모습이 바로 인간의 이중성이며 블레셋의 문화와 가치관입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유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중성을 가지고 희생양을 찾는 비겁함을 보입니다. 유다인 3000명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협조하려고 삼손을 지금 붙잡으려고 왔습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원수이자 압제자입니다. 싸워야 할 대상인데, 유다 사람들은 주적인 블레셋과 싸울 생각은 안하고 삼손을 희생양으로 잡아 넘기려고 하는 것이지요. 블레셋은 자신들이 싸워 이기기에는 너무 크다고 생각되니….싸우는게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삼손 한 명을 잡으려고 3000명이 지금 내려 온 거예요. 이 블레셋 사람들의 이중성이나 유다 사람들의 이중성이나 모두 인간의 이 부끄러운 민낯, 죄악된 모습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 문화와 가치관에 길들여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손해가 나고 내가 화가 나면 우리는 누구든지 희생양을 찾는 거예요. 내 분풀이를 위해서 만만하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희생양을 찾아 내 화를 다 쏟아붓고 화풀이하며, 희생양에게 모든 이유를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늘 약한 사람 만만한 사람들에게 화를 붓고 그들에게 희생양을 살며 그들을 이렇게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면서 정당화하는 거예요. 희생양에게 나의 화풀이를 정당화시키는 이 모습, 이게 죄악된 인간의 모습이고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안 좋은 방법이고 길들어진 방법이에요. 오늘도 내 마음의 분풀이할 대상을 삼아 끔찍한 보복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약한 사람들에게 만만한 사람들에게 화풀이와 희생의 대상으로 삼는 이 방법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 안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 특별히 약하고 만만한 사람들을 희생양을 삼아 그들에게 화풀이의 도구로 삼고, 모든 것을 뒤집어 씌워 불태워 죽이는 이런 일들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종로에서 뺨을 맞고 한강에서 눈흘기고 분풀이할 대상을 찾고 계십니까? 그것이 우리의 악한 습성이며 영적 타락의 모습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분노가 나를 지배하고 분노가 나를 행동하게 만들며 분노에 끌려다니며 결정하는, 홧김에 하는 충동적인 결정이 얼마나 영적으로 해로운지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블레셋의 문화에 철저히 길들여지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너뜨리고 있어서 그들의 우상과 그들의 가치관과 가까이하지도 말라고 그렇게 경고한 것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세상은 항상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어 자신이 손해가 나게 되면, 항상 희생양을 찾으며 약하고 만만한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분풀이의 도구로 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며 이런 문화를 성도로서 과감히 거절해야 합니다. 나보다 만만한 사람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그들에게 분노를 쏟아 버리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 악한 패턴을 끊어 버리십시오. 대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강한 자에게 더 강하고 약한 자에게 한없이 약한 이 영적인 담대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서 주님만 붙들고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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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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