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왕은 두 가지의 똑같은 범죄를 반복적으로 범하고 있습니다. 13장 말씀인 인생의 가장 어려운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고, 그 불순종의 자리에서 즉시 회개하는 대신에 핑계를 대며 남을 탓하고 자신을 포장하며 무너졌는데 15장 말씀에서도 그 동일한 패턴으로 무너졌습니다. 아말렉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고, 아말렉과의 전쟁은 영적 전쟁이자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큰 승리 가운데 하나님 말씀을 반쪽 순종했고 그 불순종의 자리에서 사무엘이 직언하며 이 들려오는 소리가 뭐냐고 하고 얘기했을 때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신 못 차렸습니다.” 바로 엎드리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대신에 백성들 핑계를 대며 하나님 핑계를 대며 자기를 포장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얘기를 듣다 못해 사무엘이 “stop! 제발 그만 하세요! 정신차리세요!” 딱 잘라 말합니다. Small, humble, faithful…스스로 작게 여기던 올챙이 시절, 그 초심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상기 시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 하나님은 높아지시고 나는 낮아지고, 늘 엎드리는 겸손한 영적 겸손의 태도를 가지고 살았던 자, 그 사울왕을 하나님을 들어 쓰시고 높이셔서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게 하신 것을 잊었느냐고 직언합니다. 사울왕의 자리는 스스로 탁월해서 올라간 자리가 아니라, 노력해서 성취한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였음을 왜 잊어버리고 망각했느냐고 안타깝게 직언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 때 나타나는 놀라운 삶의 태도는 스스로 작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여기고 내 스스로는 작은 자로 여깁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기도 시간을 통해 조율 되는 진리, 내가 있는 자리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사업들이 내가 일군 노력과 땀의 결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분명한 의식입니다. 물론 노력과 땀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중요했지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 하나님이 주신 재물, 하나님이 주신 사업과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믿고 스스로 작게 여길 때 하나님이 더 크게 맡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계속 사용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붙들고 계속 갔으면 사울왕은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쓰임 받는 인생이 됐을텐데,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 작게 여기는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 높이신 왕의 자리를 내가 올라간 자리라고 착각하고 있고, 하나님이 주신 승리는 내가 싸워 이긴 승리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는 게 아니라, 내 흔적을 남기며 내 기념비를 세우는 자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은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악하시게 여기시는 것을 행한 것입니다. 사무엘의 직언이 벌써 두번째입니다. 한번 자신이 그렇게 핑계 댔는데 선지자 사무엘에 저렇게 강하게 말하면 “아 내가 뭔가 잘 못했구나….제가 지금 뭔가 착각하고 망각하고 있구나…” 깨닫게 돌아왔으면 마지막 기회를 잡고 회복되는 인생이 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의 상황 파악 못하는 어리석은 태도는 또 다시 자기를 포장하고 핑계를 대면서 기회를 완전히 날려버립니다. 자기는 하나님 말씀 순종했다는 것입니다…잘못한 것 없다는 것입니다…대화가 안되는 사람들은 상대편 얘기를 듣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얘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말렉 왕을 진멸하지 않고 사로잡아왔으면서도 순종했다고 착각하고, 동물을 끌고 왔으면서 제사를 위해 남겨둔 것이라며 순종했다 착각하고, 지도자인 왕이 책임 인데도 백성들에게 탓을 하면 이 동물들을 끌어온 것을 백성이라며 책임회피 하면서도 순종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기를 거절하며 마지막 남은 기회, 버림받음에서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닫아버립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목소리이며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태도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태도이며 하나님을 멸시하는 태도라는 것을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예배 드리러 왔는데 제사 드리러 왔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태도 없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할 태도 없이 오는 예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왕의 회복 불가능한 영적 교만과 영적 어두움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지 않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 작아지지 않는 영적 교만, 더 이상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려 하지 않고 자신이 높아지는 영적 교만을 바라봅니다. 그의 영적 어두움은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이 진리의 빛을 비추고 계신데, 그 빛을 깨닫지 못하고 그 빛을 거절하며 그 빛을 싫어하고 있는 사울왕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불순종과 교만이 죄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데 어느 정도 큰 죄인가를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 죄의 무게는 우상숭배의 죄의 무게와 똑같은 그만큼 심각한 중죄라는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그 불순종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만들었으며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든 중범죄인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무엇을 책망 하시는지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지 들으려고 하지 아니하고 탓하고 자기합리화로 포장하며 변명을 일삼는 사울왕의 영적 교만과 영적 어두움은 결국 더 이상 돌아올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비극의 왕, 하나님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건너가는 왕이 되어버립니다. 신앙 생활이란 내가 내 힘으로 내 열심으로 내가 헌신하는 삶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급받으며 하나님께 기대며 의지하며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가운데 머물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주님 앞에 엎드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주님 앞에 순종하며 내가 주님 앞에서 스스로 작은 자가 되어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 영적 기본을 완전히 잃어버리며 영적 교만과 영적 어두움으로 무너진 사울왕, 그 무너짐의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대신에 그는 계속 변명하고 합리화하며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했다고 착각하며 하나님께 버림받는 사울왕, 이 비극이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에 반복되지 않기 원합니다. 이 비극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경고의 말씀으로 마음에 새겨, 불순종의 길에서 교만의 길에서 돌아서서 주님 앞에서의 삶을 살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주님의 사랑만 붙들고 끝까지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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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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