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모자라거나 부족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바로 자격지심입니다. 왕으로서 자기가 앞서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의지하며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을 앞서 싸우시는 영적 전쟁에 믿음으로 반응했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해서 사울왕 마음에 찾아온 게 바로 자격지심입니다. 반대로 그 아들 요나단은 아버지와 달리 블레셋 군대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의지하며 그 한사람이 전세를 뒤집어서 영적 전쟁이 승리하게 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케 하시며 역사를 목도하게 된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게 왕을 통해 이루어지는 믿음의 고백과 영적 승리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게 자신이 아닌 아들 요나단을 이루어 졌으니 왕으로서 체면이 서지 않고 부족함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이 되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큰 승리를 경험한 직후 사울왕은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자 맹세를 하게 됩니다. 큰 승리로 이끈 전쟁을 막 끝낸 군인들에게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어명을 내린 것입니다. 전쟁한 군인들이 얼마나 심신이 지치고 배가 고프며 힘이 들겠습니까? 잘 먹는 것이 전쟁에는 군기와 사기와 다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말씀에서 두번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하였다는 말을 강조할 정도로 블레셋 사람을 치느라고 힘이 들고 피곤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그 큰 전쟁의 승리 직후에, 군대의 군기와 사기를 다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큰 승리 직후 군인들에게 잘 먹이고 사기를 북돋았으면 더 나아가서 더 큰 승리로 이어질 수 있는데,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사울왕은 군인들과 백성들에게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군기와 사기를 다 떨어뜨리고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사울왕의 자격지심으로 나타나는 다른 과오는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고 구원하게 하신 전쟁 인데 자기가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는 시도입니다. “내가 내 원수에 대해 보복하는 때까지” 먹지 말라 명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영적 전쟁인 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사울왕 자신이 내 원수를 보복하는 전쟁으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자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긴 것이 아님을 본인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자격지심이 전쟁의 성격을 교묘히 바꿔 버린 것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승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신뢰한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일 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고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 사건인데 이것을 사울 자신이 자기 원수를 보복하는 사건으로 변질 시키며 이 전쟁의 주인공이 내가 되는 겁니다. 내가 내 원수를 죽이기 위해 하는 전쟁이 되는 것이고 여기에 하나님이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승리라는 게 빠진 것입니다. 그렇게 사울왕은 전쟁의 성격을 변질시키면서까지 자신이 승리에 숟가락을 얹으려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 하나 잘못 만나서 그의 자격 지심이 이끄는 헛발질하는 어명으로 고생하며 전쟁에서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파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겁니다. 이런 헛발질 하는 사울왕의 어명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말은 선명하게 대비 되고 있습니다. 사울의 명령을 듣지 못하고 요나단은 꿀을 찍어 먹었고 먹자마자 그의 눈이 밝아졌다고 증언합니다. 그 때 백성들이 지금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어명이 떨어 졌는데 먹으면 큰일난다고 얘기하면서 아버지의 어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요나단이 한 말이 중요한데, 아버지의 어명은 “백성들과 군사들을 곤란하게 하는 어명”이었다는 겁니다. 내가 꿀 조금 먹고도 이렇게 눈이 밝아지고 힘을 얻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과 군대가 힘이 없어서 배가 고파서 더 못 나아 가는 게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승리의 결과를 막는 장애물이 뭡니까? 사울왕의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어명이었다는 겁니다. 지금은 굶겨 가지고 군기와 사기를 저하 시킬 때가 아니라 그 피곤한 몸을 얼른 먹고 회복해서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 이 블레셋 사람들을 끝까지 더 쳐서 완전한 승리로 나아갈 수 있는데 아버지의 어명이 그걸 막는 장애물이 된 것임을 증언하는 겁니다. 나중에는 군인들과 백성들이 너무 배가 고파서 참다 못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전리품으로 가져온 동물들을 피째 먹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니까 사울왕이 놀라서 피 째 먹으면 큰일난다면서 동물들을 끌어다가 잡아 먹도록 장소를 지정합니다. 결국 원칙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렇게 피 째 먹는 백성들을 바라보며 백성들이 이 정도로 배가 고팠고 허기졌다는 것을 깨닫고 어명을 번복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본인이 먹지 말라고 어명으로 협박해 놓고 결국 백성들이 다 먹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모든 기회를 날린 후에…그리고 나서 더 안타까운 장면이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그게 사울왕이 처음으로 하나님의 제단을 세우는 장면입니다. 사울왕이 블레셋 군대와 큰 승 이후에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위해 단을 쌓았다…이런 믿음의 고백으로 쌓은 제단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처음 쌓은 여호와를 위한 단, 그 장소가 어디입니까? 수많은 동물들을 먹기 위해 그냥 잡은 그 현장, 모든 백성들이 배가 고파 못 참고 피 째 음식을 먹었던 그 부정한 곳에 그냥 돌을 쌓고 하나님께 제단이라고 만든 겁니다. 거룩하고 구별된 곳과는 전혀 거리가 먼 그 곳에 사울왕의 첫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제단과 제사를 얼마나 경히 여기고 하찮게 여겼는지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또한 그 제단을 쌓은 후 사울의 입술로 하는 고백, 예를 들면 사무엘이 고백했던 에벤에셀의 하나님과 같은마음을 담은 고백이 일체 없습니다. 마음을 담은 고백도 없이 거룩하고 구별되지 않는 장소에서 쌓은 제단은, 자기 마음대로 번제를 스스로 드렸던 사울왕의 모습의 부끄러운 연장 선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적 전쟁을 자기가 원수 갚는 전쟁으로 바꿔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의 타이밍을 놓쳐버린 채 군기와 사기를 다 무너뜨리는 어명이나 내리는 헛발질, 그게 사울의 영적 무너짐에 전조 증상들 이었습니다. 물론 15장에 가서 완전히 무너지게 되지만 그 때까지 이런 전조 증상 들이 계속 사울에게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한 일에 대해 스스로 모자라거나 부족하게 느끼는 자격지심이 있다면 이 시간 그것을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도구로 사용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적 승리를 내 원수를 갚는 일로 변질시키는 악한 행동, 하나님이 주신 기회과 타이밍을 놓친 채 군기와 사기를 다 떨어뜨리는 헛발질, 제단을 거룩하고 구별되게 쌓지 못한 실수로 이어지는 사울왕의 자격 지심이 이끄는 무너짐의 전조증상들이 우리 삶에 반복되지 않기 원합니다. 주님이 주신 승리에 숟가락 얹지 않고, 주님을 멸시하지 않으며 거룩하고 구별됨으로 주님 앞에 예배를 드리며 늘 주님을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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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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