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배우고 있는데 그 역사가 과거에 그냥 흘러갔던 역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시간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임하기 위해서는 그 역사가 오늘 이 시대에 나의 삶의 현장에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로 인하여 우리는 영적 아브라함 자손이 된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영적으로 봤을 때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죠. 역대기의 역사, 그들의 하나님께 바로섬과 무너짐의 역사가 우리의 현재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남유다의 역사는 바로 아사라는 왕인데, 그 왕에 대한 평가는 평화를 가져온 왕입니다. 역대기에서는 북 이스라엘의 역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사실 북이스라엘 왕조들은 계속 왕들이 바뀝니다. 암투가 있고 내부적인 분쟁이 있고 쿠데타가 있고 왕들이 계속 바뀌는 혼란이 반복되면서 그 역사가 진행됩니다. 반면에 남 유다는 크기가 작았지만 북 이스라엘과 대비되게 평탄하고 평안한 역사가 지속되어 갑니다. 겉으로 봤을 땐 북이스라엘이 훨씬 땅도 사람들도 많고 군사력도 크고 가진 것도 많아 보였지만, 영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머무른 곳은 평안한 남유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 그 평안함이 누려 지게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아사 왕이 남유다를 평안하게 다스린 비결이 무엇인가?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왕의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들 보기에” 민감한 삶을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민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게 대부분의 왕들이고 이 시대의 지도자들입니다. 민심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이 보기에 어떠한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의 평가에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의미 없다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다는 것도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방점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한가?”라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를 늘 인지하고 살아가는 영의 눈이 떠 있어야 되는 것이죠. 아사왕은 하나님이 보시는 선과 정의를 붙들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것, 하나님만을 순전히 바라보고 붙들고 살아가는 게 선이고 정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는 선과 정의를 위해 아사왕이 했던 게 바로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태양상을 없애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붙드는 삶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다 부셔 버리고 찍어 버리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었고 정의임을 인식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선명하게 쓰임 받는 영적 지도자들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두번째 아사왕이 한 것은 온 유다 사람을 명하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했습니다. 여호와를 구한다는 것은 추구하는 거죠. 내 열망과 간절함이 주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만을 구하며 붙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을 행한다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만 붙들고 하나님 안에 거하고 살아가는 게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죠. 하나님에게 한눈팔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 바로 선이고 정의이자, 율법을 따르는 삶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의 눈이 닫혀 “사람들이 보기에 어떠한가?” 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바라보시는가?”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붙들어야 하는 겁니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바라보는 선과 정의를 생각하고 따집니다. 내 생각에 내가 납득할만한 선과 정의가 늘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정적 편향이 있고 치우침이 있고 착각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 내가 보기에 좋은 선과 정의를 추구하며 그것을 진리라고 착각하고 살아가죠. 그래서 어느 시대나 사람들이 자기 눈에 보기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기 같은 영적 암흑기가 반복되는 것입니다. 아사왕 시대의 평안은 정치 리더십에 의한 평안도 아니고 군사력에 의한 평안도 아니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부어 주신 평안함이었습니다. 우상들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만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행하고 붙들고 지키며 살아가는 삶을 통해 이 평안을 선물로 부어 주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만큼 큰 복이 없습니다. 아사왕과 같이 내가 감으로써 그 곳이 평안한 곳이 되는 게 하나님의 복인 것입니다. 화해와 회복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인 것입니다. 우리 개인적인 삶도 가족의 삶도 우리 교회 공동체의 삶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을 누리며 오늘 하루를 살기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그 평안함을 누리며 내 마음 속에, 가정 안에, 우리 교회 안에 그 놀라운 평안함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사 왕과 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선과 정의를 행하는 기준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사왕과 같이 사람들이 보기에 옳은 선과 정의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선과 정의를 붙들고 그것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그것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두는 삶을 사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주님이 부어 주시는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며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가를 늘 민감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가에 대해 늘 민감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눈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맞춰 나의 인생을 하나님이 보시는 그 눈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십시오. 주님 앞에 주님만을 구하며 그 율법과 말씀을 행하며 지키는 자 로 살아가십시오. 이 혼란하고 분란이 많은 시대에, 하나님 앞에서의 평안함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는 놀라운 삶을 구체적으로 체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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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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