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4장 말씀은 남유다 요아스 왕이 가까운 신복들에게 살해당하고 그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는 것을 증언합니다. 아버지의 과오를 뒤로하고 라도 가장 가까웠던 신하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봤으니, 아마샤의 마음 상태는 얼마나 불안했을 지 상상해봅니다. 아버지가 살해 당한 후 그렇게 불안함과 두려움 가운데서 왕의 자리에 올라간 아마샤는 감사하게도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으로 평가됩니다. 마치 그의 아버지 요아스가 전반기에는 한결같이 하나님에게 순종하며 나아갔던 것과 똑같이 하나님께 신실하고 정직한 왕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 보시게 정직하게 행하기는 했는데 온전한 마음으로 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긴 했는데, 조상 다윗과 같지는 않았다고 평가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나, 전심으로, 온전하게 다윗과 같이 순전하지는 못했다는 것이지요. 전심으로 나아오지 못하고, 온전히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예 악한 왕이면 기대도 안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데 완전히 전심으로 온전히 나아가지 못하는 그 안타까운 모습이 아마샤왕, '분명히 하나님 앞에 괜찮은 거 같은데 뭔가 2% 부족했다는 진한 아쉬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다윗과 같이 정직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 말은 다윗과 같이 완벽하고 흠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증언하는 다윗의 인생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게 오답이라는 것을 분명합니다. 다윗과 같이 전심으로 온전히 주님을 사랑하며 가는 삶이란 승리해도 하나님만 바라고 나아오고, 실수해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삶입니다. 우리는 다윗이 흠 없고 문제 하나도 일으키지 않으며 완벽한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시각에서는 그런 눈에 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밑에 감추어진 뿌리, 마음의 중심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다윗은 언제나 그의 중심이 하나님에게 합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인식하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잘 나가며 성공할 때나, 실패하고 넘어질 때나 하나님에게 나아가서 문제를 풀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완벽하고 흠이 없는 삶을 넘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은 다윗과 같이 정직한 인생입니다. 승리해도 실수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오고, 자빠지고 실수해도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겁니다. 나의 승리도 나의 실수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것이 바로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 신앙생활이 자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생활을 한다거나 껍데기를 가지고 신앙의 모든 것을 재단하려고 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보기에 좋은 신앙 생활을 넘어 하나님 바라보시기 좋은 신앙 생활을 끊임없이 인식하고 중심을 하나님께 두며 살아가는 삶, 바로 다윗의 순전함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아마샤 왕이 그의 인생 전반기에 하나님에게 정직한 왕으로 평가 받았는가에 대한 중요한 사건 하나를 증언합니다. 그게 바로 왕으로서 감정대로 보복하지 않고 말씀을 따라 순종한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 요아스왕이 측근에게 살해 돼서 왕 위에 올랐습니다. 자신도 언제나 살해될 수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 마침내 나라가 그의 손에 안정적으로 모든 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왕으로서 자신의 위치가 확고해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과 권한이 생겼습니다. 그 때 감정을 실어서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모든 인간의 마음입니다. 저 사람이 나에게 한대 쳤으면 한 대로 갚아주는 게 아니라 열 대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반역한 사람들에게 삼족을 멸한다….즉 삼대를 죽이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아마샤 왕은 자기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 가장 가까이에서 아버지를 섬기다가 배반하여 죽인 그 배신자들만 법에 따라 죽였습니다. 가족들에게 연좌죄를 물어 삼대를 멸한다거나, 감정으로 보복하지 않고 당사자만 죽이고 나머지는 살려줬다는 겁니다. 이유는 단 하나, 모세의 율법이 그렇게 명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으로서 드는 감정에 따라 보복하는 게 아니라 모세의 율법에 따라 법이 정한만큼만 처단한 겁니다. 내 감정대로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을 지켜낸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아마샤 왕은 분명히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힘과 권한이 있었고 아무도 뭐라 그럴 수 없는 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버지가 그렇게 살해당한 것이 아들인 본인에게 얼마나 큰 충격과 멍이 되었겠습니까? 억울하게 살해당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보복의 감정이 확 올라오고, 이 배반자들의 씨를 진멸하고 다 말려야 된다는 좋은 명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하나님 말씀 아래 내려놓고 그 당사자들만 딱 처단한 겁니다. 되로 준 것을 말로 갚아야 한다는 나의 보복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감정에 따라 보복하지 않고 말씀이 멈추라 하신 곳에서 순종하며 딱 멈춰선 것을 하나님께서는 높이 평가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삶이란 내 감정대로 내 마음대로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삶이고 말씀이 허락한 데까지만 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다윗과 같이 더 전심으로 온전히 나아가기 원하시는 마음이 녹아 있다는 것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신앙 생활이 사람들 앞에서의 보여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중심을 붙드는 삶을 살아가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나의 인생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인식하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나의 삶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오는 도구가 되기 원합니다. 내 신앙 생활이 하나님을 의식하고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 보시기에 다윗과 같이 순전하고 정직한 인생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내 마음대로 내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내 힘을 마음대로 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기까지만 가서 내 복수의 칼을 내려놓고 정확하게 기준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나에게는 영적인 일임을 잊지 마십시오. 심지어 그게 내 감정이 폭발하는 보복 일지라도 말씀이 멈추라 하신 지점에서 멈추고 내려놓는 순종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성도의 삶입니다. 말씀으로 나를 되새겨보며, 말씀의 기준으로 내 인생을 묶으며,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나아가며 온전히 나아가는 그 열망이 우리 가운데 선명히 회복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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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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