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여러번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근데 그는 내미신 하나님의 손을 붙들지 않고 돌아오지 않았고 새 출발하는 기회를 다 날려버렸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자신의 손이 마르는 것을 경험하고 제단이 갈라지고 재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목도하면서도 지금 내가 잘못 가고 있구나… 하나님께서 돌아오라는 회개의 사인이구나… 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로보암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증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아들이 아픈 것입니다. 아무리 왕이고 모든 것을 가졌어도 아들이 아픈데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는 한계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아들이 병들어 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 가운데 자신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으면서, 그 어려운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기억했으면 여로보암에게 회복의 문이 열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마지막 은혜로 주신 기회를 붙들고 돌아올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여로보암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안타까운 결말로 끝나는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여로보암을 통해 가짜들의 이중성과 모순을 세 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번째 이중성은 정작 자기 아들이 아프니 유다로 내려가는 이중성입니다. 지금 아들이 심히 아픕니다. 왕으로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했던 행동이 뭐냐면 유다에 선지자를 찾아 내려가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는 유다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금송아지를 세워서 그들을 편하고 싶고 부담 없는 신앙으로 변질되고 왜곡되게 만들었습니다. 근데 정작 왕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고 자기 아들이 아프니까 유다에 있는 선지자를 것입니다. 이게 가짜들의 모순이고 이중성이라는 것이죠. 자기 자식이 아플 때 그냥 세워진 금송아지한테 절하고 기도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자식이 아프면 본인은 진짜를 찾아가는 겁니다. 금송아지가 가짜인 걸 아니까, 금송아지는 아무런 고칠 수 있는 힘이 없고 변화시킬 힘이 없다라는 걸 아니까 자신은 본인 문제를 풀기 위해서 남유다 선지자를 찾아가는 겁니다. 이것이 가짜의 이중성이고 모순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이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하는 미혹이라는 것이 바로 쉽고 편하고 부담없는 신앙 생활을 통해 가짜의 이중성에 빠지게 만듭니다. 신앙생활 뭐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 없다고…얼굴도장 찍고 쉽고 편하고 부담 없이 드리면 되지…그렇게 계속 기준을 낮추면서 우리에게 신앙을 하나의 악세사리 같이 만들어 버립니다. 동시에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고 결정적으로 내 인생의 전환점이 필요할 땐 그런 신앙이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내가 지금까지 믿었던 것은 가짜구나… 우리는 이 가짜의 이중성에 속으면 안 됩니다. 두번째 가짜의 이중성은 뭐냐면 선지자에게 변장해서 찾아가는 이중성입니다. 아들 문제로 다급하니까 선지자를 만나러 유다로 찾아가는데 자기 부인을 보내지 않습니까? 예전에 이 선지자가 여로보암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해 준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찾아가 자기 아들 문제를 얘기하면 분명 좋은 얘기를 해 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보내는 것입니다. 근데 자기 부인을 어떻게 보내냐면 변장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변장해서 보낸다는 말은 본인이 사람들한테 한 말이 있으니까 너무 부끄럽다는 의미도 되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변장해서 나아가는 것이죠. 하나님의 음성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고 그 멀리 남유다까지 가는데 변장을 하고 가는 그 행위 자체가 바로 가짜의 이중성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날 예배에 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배에 진짜 나다움을 숨긴 채 변장하고 가짜로 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늘 사람들을 속이는 이중성에 익숙했기 때문이죠. 늘 사람들 앞에 가짜의 모습을 보이는게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내가 변장하고 있으면 하나님은 모르실 거라는 착각하고 나오고, 그러고도 나는 예배 잘 드렸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변장하고 나온다는 자체가 하나님을 속일 수 있고 하나님에게 눈가림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가짜의 이중성이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자들의 불법적인 행동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번 째 가짜의 이중성은 사명을 잊은 채 내 문제와 필요에만 몰두하는 이중성입니다. 하나님이 내 자리를 세워 주신 이유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에게 돌아와 회개해서 북이스라엘을 회복할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 마지막 기회에 하나님이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목적을 망각하고 그는 여전히 자기 문제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의 손이 마비되었을 때도 여로보암은 자기 손을 고쳐 달라는 문제만 매몰되고 지금도 자기 아들 문제에만 매몰되어 있습니다. 왕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왕으로 세우신 이유를 묵상하고 하나님 뜻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회로 삼았어야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전혀 살지 않고 있으니까 눈에 보이는 문제 외에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도전과 어려움이 지금 내가 영적으로 풀어가야 될 문제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겁니다. 여로보암의 아내는 왕의 명령을 받아 변장해서 선지자를 찾아가 바로 들통나고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 하느냐…책망을 듣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이 체하느냐… 왜 가짜로 가면 쓰고 변장해서 오느냐…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진정성 있게 서지 않고 가면 쓰고 변장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가짜로 가면 쓰고 찾아온 여로보암의 아내는 원하는 좋은 소식 대신 하나님이 주시는 나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이유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을 특별히 뽑아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임명하여 다윗 왕국을 쪼개서 주셨는데, 솔로몬과 그의 아들 로보암과 달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순종해서 하나님을 따르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라를 주어 왕을 세웠는데, 여로보암은 너무나 짧은 시간 내에 변질되었고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아들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이고 당장 하나님 앞에서 풀어야 할 문제임을 선지자는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회개해서 돌아오지 않으니, 본인도 망하고 본인이 다스리는 백성들도 망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경고를 하십니다. 하나님께 등돌리고 죄를 지은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왕으로서 여로보암이 한 불순종과 반역, 우상숭배에 대한 결과는 여로보암의 집을 완전히 쓸어버린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이 아픈 아들은 곧 죽을 텐데 이 아이가 오히려 복되게 죽는 것임을 예언합니다. 남은 아들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어 시신을 개가 먹고 공중의 새들이 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신앙은 가짜입니까 아니면 진짜입니까? 가짜 이중성에 우리의 눈과 마음이 홀리면 안 됩니다. 여로보암을 통해 드러나는 가짜의 이중성이 나를 깨우로 찌르시는 말씀이 되어 진정으로 진짜로 돌아야 될 이유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벽하게 원하시는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진짜로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 신앙은 진짜가 되어야 하고 진심과 진정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신앙이 진짜 신앙, 진실된 신앙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신앙이 되기 원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들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충성 다하는 귀하고 복된 백성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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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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