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엘리사 선지자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가장 유명한 선지자들로 이 두 선지자만큼 이렇게 굵직한 인생을 산 하나님의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엘리사와 엘리야가 위대하고 유명했다는 말은 반대로 그 시대는 참으로 어두운 시절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 시대에 놀랍게 쓰임 받던 엘리야도 하늘로 올라가고, 그의 제자였던 엘리사도 이제 죽을 병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렸고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며 말씀을 놀랍게 대언하며 살았던 광야의 예언자 엘리사, 영원히 생명력 있게 쓰임 받으며 함께할 것 같았는데 때가 되니까 엘리사도 죽을 병에 걸려 결국 이 세상을 떠나야 되는 때가 찾아온 것입니다. 이 놀랍고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하듯 잠시 쓰임 받고 떠나는 겁니다. 엘리사와 같이 이렇게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한때 쓰임 받고 그 다음 사람에게 바통을 연결해 주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지혜입니다. 이 세상에 잠시 살아가며 내가 잠시 쓰임 받으며 잠시 하나님의 손에 놀라운 역사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쓰임 받을 그 때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쓰임 받는 것이 복입니다.
세상을 떠날 때가 된 엘리사, 죽을 병에 걸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는 엘리사에게 그 당시 북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요아스가 찾아옵니다. 찾아와서는 왕이 엘리사 선지자의 임박한 죽음을 보며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여 아버지여 내 이스라엘의 병과 마병이여…통곡했다는 겁니다. 이 부분은 참 요아스 왕에게는 특별한 반응인 게, 만일 하나님께 정직하고 신실한 왕이었다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선지자 엘리사와 가까이했던 왕이라면, 엘리사 선지자의 임박한 죽음이 그에게는 큰 슬픔으로 다가왔고 이렇게 통곡하는 게 당연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아스 왕은 분명히 하나님 보시기 악한 왕이었다고 정확하게 평가받았던 왕이라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다는 것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곁길로 간 왕이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는 과거 스승이었던 엘리야 선지자가 하늘로 바람 타고 승천할 때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는 겁니다. 그런 악한 왕인 요아스가 왜 엘리사 선지자가 죽을 때 그렇게 찾아서 눈을 흘리면서 그렇게 특별히 애통해하는가…굉장히 특별한 의외의 반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악한 요아스 왕은 엘리사 선자가 죽는 앞에서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며, 병거와 마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요아스가 갑자기 하나님께 돌아서서 회개하고 주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인가? 아니라는 겁니다. 단지 요아스 왕이 지금 너무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아스 왕이 통치하고 있을 때 북 이스라엘은 거의 군사력이 바닥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때로부터 요아스때까지 아람이 거의 동네북과 같이 북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입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동네북처럼 공격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중에 몽고가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듯, 그렇게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의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 번을 공격하고 나서 아예 조정을 쥐락펴락하는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게 주변 나라로부터 내정간섭을 당하니까 요아스는 왕으로서 얼마나 자존심이 상합니까? 그런데 싸워야 되는데 요아스는 지금 너무 힘이 약한 겁니다. 군사력이 너무 바닥이고 싸워야 이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나마 그에게 소망으로 가지고 있었던 건 엘리사 선지자가 하늘로부터 마병과 병거로 자기 나라 북이스라엘을 지켜준다고 생각했는데 그 엘리사 선지자마저 지금 떠나려고 하니까, 두렵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슬퍼서 눈물을 흘린 겁니다. 그러니까 엘리사 선지자가 죽어가서 슬퍼하는 게 아니라 엘리사가 죽은 후에 직면할 자신의 처지와 북 이스라엘의 처지가 너무 한심하니까 이 악한 왕도 그렇게 찾아와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이렇게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악한 왕 요아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불쌍히 여기며 은혜로 회복할 기회를 한번 더 주십니다. 지금 엘리사는 죽을 병에 걸려 자기 몸을 건사하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힘들었을지 모르는데 정말 모든 힘을 모아 마지막으로 왕에게 유언과 같이 얘기하는 겁니다. 그 몸을 일으켜서 왕에게 나를 잡으라 말하고, 화살을 보여주며 이 화살은 여호와의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임을 알려줍니다. 악한 왕임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있는 왕임 불구하고 너와 북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셔서 하나님의 능력 구원의 화살이 되어 너를 다시 한번 도와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놀라운 약속을 엘리사가 죽기 직전에 요아스 왕에게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돌보시고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그렇게 악한 왕이지만 요아스가 엘리사에게 찾아와 은혜를 구할 때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외면하지 아니하시며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고 전적인 하나님의 긍휼하심 입니다. 그 화살을 붙들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해서 아람과 싸워 이기게 하실 것을 약속의 말씀으로 주신 겁니다. 그러면 요아스 왕이 말씀 앞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까? 주님 말씀하시면 나는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주님만 믿고 나아가겠습니다… 이런 수용하는 마음과 간절한 순종이 그의 반응 이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아스가 그 믿음의 온전한 순종과 간절한 반응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거기서 땅을 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가 얼마나 믿고 신뢰하며 그것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갈까 대한 하나님의 테스트였습니다. 그런데 땅을 치라 그랬는데 몇 번 안 친 겁니다. 힘이 닿는 만큼 쳐야 되는데 죽을 힘을 다해 쳐야 되는데 그냥 몇 번 하다 만 겁니다. 그랬더니 죽을 병에 걸려 임종을 앞에 두고 있는 이 엘리사 선지자가 말할 힘도 없는데 버럭 화를 내는 겁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죽음을 앞에 두고 이렇게 화를 젖먹던 힘을 다 짜내어 화를 내는 겁니다.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라 그리하면 왕이 아람을 멸하기까지 힘을 주셨을텐데…왜 반만 치고 끝납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의탁하지 못해서 딱 반만 가니까 거기서 멈춰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 악한왕 요아스 앞에서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망하는 것을 끝으로 엘리사는 죽게 됩니다. 그게 엘리사가 했던 사역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죽을 병에 벌려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로서 끝까지 잘못된 지도자들을 통하며 화를 내며 그들을 교정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겁니다. 결론은 엘리사가 말한 그대로 아람 군대를 요시아왕은 딱 세번만 이기게 된다는 것으로 말씀이 끝납니다. 그 막강한 아람 군대에 요아스는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기적과 같이 그들을 세 번이나 쳐서 찌르는 역사가 있었던 것이죠.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인생을 던졌다면 그는 여섯 번 일곱 번 계속해서 진멸할 때까지 승리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을 향한 반쪽 믿음으로 말미암아, 딱 거기 까지가 승리의 전부였다는 것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이 말씀대로 펼쳐지는 것을 위해 하나님은 어두운 시대에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시어 이스라엘 왕들을 책망하며 바른 길로 그들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에게 놀랍게 쓰임 받았던 엘리사도 때가 되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 됐던 것처럼 우리 또한 잠시 이 세상을 살고 잠시 쓰임 받다 떠날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나는 떠나가고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존재하며 그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영원히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진리임을 믿으며 살아가십시오.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나의 인생을 던지며 쓰임받는 잠시의 시간에 온전히 순 종하여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 지는데 진정한 갈망과 열망으로 선명히 쓰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mments are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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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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